[한반도를 보는 세계] 미국- 강온 양면기류 속 남북 물밑거래에 촉각

총론은 '지지' 각론은 '경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지난 6월15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향한 첫 걸음으로서 본인은 두 지도자가 이룩한 합의를 환영하며 양측이 이 유망한 길을 계속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NMD 체제 구축 예정대로”

정상회담 1주일만인 6월22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7월로 예정됐던 일정을 앞당겨 방한,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가진 데 이어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정상회담이 종료되자마자 우리 정부가 황원탁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을 미국에 급파해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했는데도 올브라이트 장관이 서둘러 한국에 달려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전폭 지지한다”고 전제하고 “전쟁억지력이나 지역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고있는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지위변경에 대한 고려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어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을 재확인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이 추진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의 구축계획은 예정대로 시행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언급은 혹시나 남북 정상간에 ‘미국을 제외한 물밑거래’가 있지않나하는 미국 정부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클린턴 대통령의 환영성명과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한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체제 갈등현장인 한반도에 남북 정상회담이후 남북한간의 화해무드가 순항을 거듭하는데 대해 미국 내부에 엄존하는 양면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상징적 움직임이라 해석할 만하다.

미국은 현재 남북화해 움직임이 동북아지역에 미치는 파장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미국의 입장은 남북 화해기조에 대해 ‘총론적 지지’와 ‘각론적 경계’로 크게 대별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정상회담 나흘후인 6월19일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를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북미 베를린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조치이긴 하지만 미국의 발빠른 조치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이어 국무부는 그간 북한등 7개 테러지원국가에 대해 ‘불량국가’(Rouge State)라는 표현 대신 ‘우려 대상국’(State of concern)이라고 지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하원 동아태소위는 6월25일 남북 정상회담 지지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총론적 지지흐름을 대변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에 변화없다” 쐐기

이에 반해 국방부는 클린턴 대통령의 환영성명이 나온 바로 그 시각에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모든 조짐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조치가 결여돼 있다”고 지적하고 “통일이후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할 계획”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또한 정상회담 이후 대책을 논의하기위해 6월29일부터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3자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웬디 셔먼 국무부자문관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한다”면서도 “한미일 3국의 한층 강화된 정책조율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셔먼 자문관은 또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북한의 개발의욕도 명백히 포기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미사일 등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벌기’로 악용돼서는 안된다는 일각의 강경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른바 ‘각론적 경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강온 양면으로 나뉜 미국의 이같은 분위기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워싱턴에 산재한 각종 씽크탱크가 잇달아 주최한 한반도 관련 세미나와 여름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민주·공화양당의 정강 등에서도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의 외교안보정책자문을 맡고 있으면서 대북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폴 월포위츠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해리티지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모습만 보고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며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지속적 의욕을 완전히 포기했는지 면밀히 주시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진보적 씽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아미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는 남북한 이산가족 상호방문이 실현되면 대북 포용정책을 더욱 확대 시행해야하며 한미일 3국이 북한에 경제원조를 제시해 군축협정을 이끌어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책 달라질 듯

공화당은 8월1일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에서 한반도 안보공약준수를 재차 확인한 뒤 “우리는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포함한 적의 공격을 억지하고 미국과 우방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국지적 공격 등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LA 전당대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는 미국이 펴온 대북 포용정책의 외교적 성과로서 지속적인 남북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이러한 입장은 선거를 앞둔 다분히 정략적 강경카드이긴 하지만 북한 핵개발 및 미사일에 대한 견해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대동소이하다. 양당 모두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이후 열린 콸라룸푸르 북미 미사일협상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점을 중시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측은 집권할 경우 북한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NMD체제 구축사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공언한데 이어 한걸음 더 나아가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 구축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앨 고어 후보가 당선될 경우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해온 ‘페리 프로세스’로 집약되는 포용정책을 지속할 것이 분명하지만 부시 후보가 집권할 경우는 상황이 다소 복잡해질 우려가 크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결국 올 대선결과에 따라 노선이 정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윤승용 워싱턴 특파원

입력시간 2000/09/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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