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피스톨 저스티스

인사가 만사라지만 현실은 정석대로 흘러가지 못하는 법. 참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있으려하는데, 능력이 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용케 중요한 자리를 꿰어차고 앉아 입으로만 일하려 든다.

그런 위인을 현실에서 부딪히다 못해 영화에서까지 만나게되면 스릴러 보는 것 못지 않게 아슬아슬하다. 저 인간이 언제 제 무덤에 빠져 파멸하는가를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과 달리 악당은 물론 무능력한 자도 응징하므로.

사회에 대한 봉사 의욕은 강했는지 모르나 개인 감정을 극복하지 못해 판단을 그르친 사나이가 여기 있다. 1978년 미국 최초의 게이 출신 시정 감독관이었던 LA 시의원 하비 밀크를 암살한 댄 화이트가 그다.

댄은 경찰과 소방대원 등을 전전하다 주제 넘게 지역사회 봉사를 꿈꾸며 시의원에 입후보하여 당선된다. 그러나 뜻에 비해 능력이, 특히 감정 조절과 판단 능력이 떨어져 이권을 가진 자들에게 휘둘렸던 소신 없는 위인. 소심한 사내들이 갖기 마련인 의심, 자기 비하, 망상이 극에 달해 결국 살인에까지 이르고 만다.

레온 이카쇼 감독의 1999년 작 <피스톨 저스티스 Execution of Justice>(15세, CIC)는 댄의 하비 암살 사건을 재현하면서 1970년대 LA의 분위기를 전하는 실존 인물의 인터뷰를 곁들이고 있다. 모든 사건이 그러하듯 댄의 암살 행위는 개인의 복수 차원이 아닌, 시대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터뷰에 의하면 1970년대의 LA는 소수 민족, 여성, 동성애자 등의 권리와 참여가 부각되던 때인데 댄은 이러한 흐름을 읽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던 위인이라고 한다.

댄은 오직 “급진주의 단체나 사회 이탈자에게 이 도시를 내주고 도망가지 않겠다”는 보수적 주장과 “나는 오직 시를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이라는 그릇된 정직성만을 강조할 뿐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없었던 인물로 그려진다.

즉, LA와 같은 거대 도시의 시정을 꿰뚫고 결정을 내리기에는 터무니 없이 그릇이 작은 소시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댄 화이트(팀 데일리)는 하비 밀크(피터 코요테)가 자신의 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던 약속을 어기자 이후 하비가 주장하는 모든 의안에 반대한다. 정책 판단보다는 개인 감정을 앞세운 것이다.

논리성이 결여된 막무가내 주장과 행동은 동료 의원은 물론 그를 뽑아준 지역 주민, 시장의 신뢰를 잃게 한다. 왕따를 견디다 못한 댄은 홧김에 의원직 사퇴서를 발송하고 사퇴서가 그대로 처리될 조짐을 보이자 사퇴를 번복하는 등 비이성적인 행동을 계속한다.

궁지에 몰린 소심한 사나이의 이상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던 영화는 암살범 댄의 재판을 통해 사회 역시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 와 있음을 고발한다. 하비가 유언처럼 남긴 말은 이 사회가 더불어 살아가는 문제에 얼마나 인색한가를 반증한다. “호모가 아닌 인간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 편견을 던져버리자.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버려라.”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9/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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