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열풍] '하늘의 별따기' 골프장 부킹

골프 인구,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부킹전쟁'

외국계 증권사 펀드매니저인 서재원(33) 팀장은 지난달 미국 유학 때 사귄 친구들과 경기도의 한 퍼블릭 골프장을 찾았다가 큰 실망을 했다.

9홀 퍼블릭 골프장인데다 평일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는데 골프장측은 아무런 양해도 없이 무려 3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했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티업을 하게 된 서 팀장은 라이트를 켠 채 라운드를 돌면서 매홀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고국의 골프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런 와중에도 대다수 손님은 `으레 그러려니'하는 식으로 골프장에 항의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귀국 한달여가 지난 지금 서 팀장은 이것이 엄청난 골프 열기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알고는 당분간 국내에서는 골프를 자체키로 마음먹었다.

시즌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골프장 부킹은 가히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정회원권을 발행하는 회원제 골프장이 대부분이다.

이들 골프장의 회원권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4억원이 넘는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수억원대의 회원권을 보유한 정회원조차 요즘 주말에븛m?? 부킹이 잘 안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몇억대 회원권 갖고도 푸대접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시가 2억원대의 모 골프장 회원권을 보유하고 중견회사 정모(49) 사장은 10월 첫째주 주말에 친구들과 운동을 하려고 3주전부터 부킹을 시도했다.

그런데 하루에 십여통씩 골프장에 전화를 해도 연결 자체가 안되는 것이었다. 화가 난 정 사장은 항의를 하기 위해 이 골프장의 서울사무소를 찾아갔다가 그만 한풀 꺾였다. 정 사장이 찾아간 사무실은 마치 전화교환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부킹 민원과 항의 전화가 폭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정 사장은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킹을 신청했으나 한달전 경고를 받은 적이 있어 곤란하다는 대답을 들어야했다. 골프장 직원에 따르면 정 사장이 지난달 부킹을 신청해놓고서도 본인은 오지 않고 다른 사람만 보내는 바람에 골프장 운영규칙에 따라 벌점을 받아 한달간 부킹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 사장은 웬만한 아파트 한채 값에 달하는 거액을 넣고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골프장 부킹이 이처럼 힘든 것은 당연히 만성적 초과수요 탓이다. 현재 국내에는 회원제 골프장112개와 대중 골프장 38개 등 총 150개의 골프장이 있다. 이에 반해 골프 인구는 무려 3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18홀 기준의 한 골프장이 하루 최대 70~80팀에 약300명 정도를 수용한다고 볼 때 국내의 모든 골프장이 하루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대략 4만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시즌에는 그야말로 치열한 부킹전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55개의 골프장(회원제 33개, 대중골프장 22개)이 건설중에 있지만 워낙 골픸??장 건설 기간이 긴데다 이 정도의 증설로는 현재의 초과수요 상태를 해소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골프장 150개에 골프인구는 300만

수억원대의 정규 회원권을 가진 회원이 할 수 있는 주말 부킹수는 많아야 한달에 2번 정도에 불과하다. 몇몇 골프장은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우대회원이라는 초고가 회원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 IMF위기 때 골프장이 회원권 판매가 부진하자 대안으로 내놓은 주중회원권이라는 제도도 요즘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고 있다. 주중회원권은 정규 회원권의 10분의1 정도인 1,500만~3,000만원에 분양한 평일회원권으로 주중에만 부킹이 가능하다.

주중회원권은 대개 토요일 오전 부킹은 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토요일 오전은 고사하고 평일에도 부킹이 쉽지 않다.

따라서 골프장 부킹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꺼번에 여러 시간대를 빼내야 하는 단체 중에는 회원끼리 추렴해 정기적으로 골프장 부킹 담당자에게 수십만원씩의 돈을 용돈조로 주고 있다.

또 일부 부킹 담당자들은 개인적으로 부킹권을 빼돌려 암거래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이것이 점차 문제가 되자 최근 들어서는 부킹 담당자를 수시로 교체하거나 아예 일반사원에게 맡기지 않고 골프장 상무나 전무 같은 고위 간부들이 직접 관리 감독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골프장 부킹이 힘들자 주말 부킹권을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골프 부킹 중개 사이트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는 2년전부터 `강남 김여사'라는 한 여성이 골프 부킹 중개사업을 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을 알렸?¤지고 있다.

30대 중반인 이 여성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골프장 회원권과 골프장 부킹 담당 간부들과의 인맥을 이용해 주말 부킹권을 확보한 뒤 일정한 프리미엄을 붙여 일반에 팔고 있다. 주고객은 업무상 급히 골프 접대를 해야 하는 중소업체 간부나 대표 이사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킹 중개업' 새로운 사업으로 부상

프리미엄은 날짜와 시간, 그리고 골프장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외곽에 위치한 골프장은 30만~40만원 수준이고 명문 골프장의 황금시간대는 60만~7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하루 이틀 전에 급박하게 부킹해야 할 경우에는 100만원대까지 치솟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남 골프업계에서는 이 김여사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름아름 알려져 있다.

SBS골프닷컴(www.sbsgolf.com)은 부킹 중개업이 높은 부가가치를 낳는 사업이라 판단하고 최근 인터넷 부킹 전문 사이트인 골프토피아(www.golftopia.com)를 전격 인수했다. SBS는 단계적으로 두 회사를 통합해 부킹에 관련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골프장 부킹이 힘든 또하나의 이유는 소위 `빽' 있는 사람의 `끼어들기' 행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주로 골프장 사주나 간부들과 특별한 관계에 있거나 정계 고위 인사, 검찰과 경찰 국세청 관계자, 관할 지방 공무원, 언론사 등에서 오는 부탁이다.

이런 끼어들기는 서울 근교에 있는 명문 퍼블릭 골프장일수록 더욱 심하다. 한 비공개 조사에 따르면 모 골프장의 경우 주말 20% 이상이 외압에 의한 끼어들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로 수도권 일원에 있는 L골프장의 경우 이런 끼어들기 민원이 너무 폭주하자 부킹을 아예 서면으로 받앸?? 근거를 남기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끼어들기 관행이 '부킹대란' 부채질

경기도 J골프장의 관계자는 “하계 시즌에는 하루 123팀까지 받았던 것이 요즘에는 해가 짧아져 100팀 정도밖에 소화할 수 없어 솔직히 정규 회원도 한달에 한두번 배정을 받기가 힘들다”며 “평일에도 거의 로스율(결손율)이 거의 없어 회원들로부터 항의받기 일쑤지만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골프장사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내 골프장의 수급 불균형은 무엇보다 호화사치의 대명사로 되어있는 골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도 골프의 대중화를 인정하고 퍼블릭 골프장 등의 건설을 촉진할 수 있는 세제나 지원 대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04 17:46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