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27)] 소바(蕎麥)

'소바'(蕎麥)는 원래 메밀을 뜻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소바키리'(蕎麥切り), 즉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2~3개월로 짧은데다 고랭지에서 잘 자라는 대표적 구황작물이다.

바이칼호 주변에서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건랭 지역이 원산지로서 당대(唐代)에 중국에 전해졌으니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는 빨라야 7세기 중반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 메밀을 면으로 가공한 것은 16세기말~17세기초에 이르러서였다. 그때까지는 껍질을 벗긴 메밀을 조나 수수 등 다른 잡곡과 함께 섞어 지은 잡곡밥, 메밀 가루를 반죽해 끓여먹는 메밀 수제비, 메밀떡 등에 주로 쓰였다.

문헌에는 `소바키리'가 `시나노쿠니'(信濃國), 즉 현재의 나가노(長野)현에서 나와 전국에 퍼진 것으로 돼 있다. 또 승려들이 즐겼던 절 음식, 즉 `쇼진료리'(精進料理)의 하나였다가 점차 일반 가정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소바'라면 `신슈(信州:시나노쿠니의 별칭) 소바'가 첫 손가락에 꼽히고 `소바야'(蕎麥屋:·메밀국수집)의 상호로 `시나노'나 `○○안(庵)'이 즐겨 쓰인다.

처음에 만들어진 소바는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메밀가루 100%의 `기소바'(生蕎麥), 또는 `쥬와리소바'(十割蕎麥)였다. 마땅한 첨가물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보리, 조, 수수의 가루로 만든 국수도 아무것도 섞지 않았다. 밀가루를 섞어 면에 끈기와 탄력을 주는 방법은 17세기초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에 머물렀던 조선 승려 원진(元珍)이 전했다는 설도 있지만 일반에 널리 퍼진 것은 17세기말~18세기초에 이르러서였다.

그후 메밀가루와 밀가루의 배합 비율에 따른 다양한 소바가 등장했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10대1로 섞은 `소토이치'(外一)를 비롯해 9대1로 섞은 `잇큐'(一九)로부터 5대5로 섞은 `도와리'(同割)까지 나타났다.

이중 메밀가루 8에 밀가루 2를 섞은 `니하치'(二八)가 부드러움과 씹는 맛을 겸한 가장 이상적인 배합으로 여겨졌다.

에도(江戶)에는 간단한 식탁과 의자만을 제공하고 `니하치소바'를 파는 대중 소바야가 크게 늘어났다. 고급점은 다타미방을 갖추고 `기소바'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또 공장에서 받아온 면을 삶아주던 니하치소바집과 달리 손으로 밀어만든 `데우치(手打)소바'를 내세워 격조를 강조했다.

그러나 니하치소바집도 곧 따라왔기 때문에 데우치소바로는 차별성을 갖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런 경쟁 속에서 소바집은 번성, 메이지유신 직전인 1860년에는 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파는 `요타카(夜鷹:쏙독새) 소바'를 빼고도 3,760여 점포에 이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은 라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소바야가 공장에서 만든 생면을 사서 쓴다. 또 메밀가루가 밀가루보다 비싸기 때문에 도와리소바가 주종이다. 데우치소바나 기소바를 내놓는 집은 어느 정도 고급에 속한다.

오랫동안 일본의 면류를 대표해 온 소바는 2차대전 이후 라멘의 급격한 인기에 밀려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윤택한 생활로 저칼로리 건강식품인 메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인기를 만회했고 앞으로도 안정적 지위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코시(年越し)소바'나 `힛코시(引越し)소바' 등 민간풍습으로 보아서도 소바의 장래는 밝다.

섣달 그믐날 밤에 먹는 도시코시소바는 가늘고 긴 소바처럼 자신과 가족이 편안하게 장수하기를 빌려는 것이라든가, 비교적 쉽게 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 한해를 잊고 새출발을 다짐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의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는 나중에 덧붙여진 의미일 뿐 원래는 에도시대 귀금속 세공업자들이 메밀가루를 이용해 금가루를 회수했던 데서 메밀이 금, 즉 재물을 묻혀들인다는 연상에 따른 풍습이었다.

새로 이사를 하면 소바를 만들어 먹고 이웃집에도 돌렸던 힛코시소바는 소바의 음이 `옆', `곁'을 뜻하는 `소바'(側, 傍)와 같은 데서 나온 풍습이다. `소바'에 `가깝게', `친하게'를 뜻하는 `치카쿠'(近く)를 붙인 `소바치카쿠'가 바짝 붙은 모습을 가리키듯 이웃과 격의없이 지내고 싶다는 뜻이다.

이런 풍습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바를 한 그릇이라도 더 팔려는 장삿속에서 퍼뜨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인의 타고난 상술을 엿볼 수 있다. 성 발렌타인 제일(祭日)의 연인 선발 풍습에 착안,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초콜렛을 선물하는 엉뚱한 발렌타인데이 풍습을 만들어 낸 것도 일본의 백화점이었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0/10/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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