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안개 속 미국대선

고어·부시 대접전, 막간 지지율 높이기에 안간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날이 갈수록 안개속이다. 노동절 연휴가 끝나면 대선 판도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는 게 보통이었으나 이번에는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간에 '시소게임'이 거듭되고 있다.

새로운 백악관 주인을 거의 굳힌 것처럼 보였던 부시 주지사가 8월 중순에 열린 상대 후보의 민주당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지지율을 까먹더니 고어 부통령에게 선두자리를 내준 게 9월초.

그러나 그는 무려 10%포인트이상 뒤지는 깜깜한 지옥을 헤매다 2주일여만에 고어 부통령을 뒤로 밀어내고 지옥같은 지지율 하락장에서 빠져 나왔다. 고어 부통령으로선 노동절 연후의 대선 판도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굳힐 좋은 기회를 맞았으나 '2주일 천하'로 허무하게 끝난게 두고두고 땅을 쳐야할 형편이다.

그만큼 이번 대선은 11월 7일의 선거 당일까지 누구도 안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이 될 전망이다.

신뢰도가 높은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9월29일 발표, USA 투데이-CNN-갤럽 공동조사)에 따르면 부시와 고어의 지지율은 46%. 서로 한치도 밀리지 않는 호각지세다. 그러나 부시는 그 직전의 여론조사에서 47%의 지지를 얻어 근 2주여만에 고어를 1% 포인트차로 앞섰다.

오차 범위가 ±4%포인트이기 때문에 1% 8?포인트차는 통계학적으로도 동률이다. 통계학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된 것은 이미 9월 중순부터다.

한때 10%포인트까지 벌어졌던 두 사람의 지지율은 9월 23일 공개된 CNN-USA투데이-갤럽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부시 45%, 고어 48%로 일단 오차한계 이내에 들었고, 시시 주간지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서도 고어 47%, 부시 45%였다.


악재·호재 반복되는 혼전세

한동안 상대방 지지율의 수직상승을 지켜만 봐야했던 부시의 회복세는 부시 진영의 중산층 및 여성표 공략 전략과 정책 중심의 선거유세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고어 진영 안팎의 악재가 부시를 도와주었다.

부시는 9월 하순 최대 경합지역인 중.남부 주 12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고어의 전략 비축유 방출 요구를 정치적 `담합'으로 몰아세우고 `오프라 윈프리 쇼'와 `레지스와 함께' 등 인기토크쇼에 출연, 교육. 사회보장. 의료보험 등 민생 현안을 집중 홍보하는 '강온 전략'을 구사했다.

무엇보다도 뉴욕타임스 기자를 욕하다 들킨 것이나 토크쇼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거듭한 것 등 자신을 옭죄고 있던 악몽에서 벗어난 게 부시로서는 최대의 수확이다.

상대적으로 고어측은 서서히 수렁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최근 유세에서 민주당 하원의원 선거 공약집에 나와 있는 노인용 처방약 문제점을 마치 자신의 가족 일처럼 과장하고 '노조운동가를 자장가로 듣고 자랐다' 고 뻥쳤다가 언론의 지적에 `농담'이라고 번복해 스스로 신뢰성에 흠집을 냈다.

또 부시 진영 안의 `첩자'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랑한 선거참모의 '혀'도 악재. 고어의 선거참모인 도인은 한 친구에게 "부시가 어디로 가는지를 부시 보다 먼저 아는 두더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한 후 이를 발설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 폭로됐다.

또 부시의 TV토론을 준비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고어 진영으로 배달되는 등 악재는 안팎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의 판도를 보면 고어의 후보 자질론에 꼼짝없이 당했던 부시가 정책 공약 중심으로 선거 전략을 바꿔 당선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지만 중산층과 여성표를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는 것 같다.


TV 토론·재정사용방안 등 변수 많아

향후 대선 판도를 가름한 최대 이벤트는 역시 10월 3일부터 시작될 TV토론회. 그러나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두 사람의 TV 토론은 객관적으로 고어쪽으로 기운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인데 1차 TV토론 장면을 미국의 4대 공중파 방송중 2개사가 방영하지 않기로 하는 바람에 고어가 절호의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고어-부시 토론의 독점 중계를 시도했던 NBC방송은 프로야구 지구 결승전을, 폭스 TV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키로 결정했다. 가뜩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층이 대선 후보들간의 TV토론을 시청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나아가 투표 참가 자체를 포기할 경우 상대적으로 부시가 유리해진다.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MTV에 따르면 18-24세의 청년 813명을 대상으로 8월9-27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주' 확실히 투표할 것이라는 응답은 46%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성인의 약 80%가 투표 등록을 마치고 64%는 틀림없이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수준이다.

사상 유례없는 미국 재정흑자의 사용 방안도 향후 대권 레이스의 향방을 가름할 변수. 빌 클린턴 대통령은 9월30일로 끝난 2000회계연도의 재정 흑자가 올 6월의 전망치보다 190억달러가 많은 2,300억 달러에 달하자 "선거가 눈앞에 닥쳤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놀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2,230억 달러를 국채 상환에 투입해 당초 계획대로 2012년까지는 국채를 완전 상환하고 최저임금 인상, 의료보험 가입자 보호, 교육여건 개선 등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의 표밭에 돈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시측이 발끈한 것은 당연하다. 부시는 "예산 증가의 1차적인 책임은 행정부에 있다"면서 "그것을 모두 써버리는 것은 현재의 번영을 위협할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소수파 대통령'나올 수도

두 후보간의 경쟁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면서 '투표'에서는 지고 '선거'에서는 이기는, '소수파 대통령' 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졌다.

소수파 대통령이란 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는 패배했으나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태는 미 대통령 선거가 주별 승자가 주 선거인단 전체를 독점하는 '승자독식제도' 때문인데 고어가 승리할 경우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메리칸조사그룹에 따르면 최근 전국 50개 주와 워싱턴DC에서 각각 투표 예상 유권자 600명을 여론 조사한 결과 고어가 14개 주를 이겨 선거인단 204명을 차지하는 반면 부시는 고어보다 더 많은 17개 주에서 승리하지만 투표인단 수는 132명에 지나지 않았다.

고어는 선거인단 수가 많은 캘리포니아(54), 일리노이(22), 뉴욕(33) 등에서 승리한 반면 부시는 앨라배마(9), 알래스카(3), 애리조나(8), 아이다호(4), 캔자스(6), 미시시피(7), 몬태나(3), 네브래스카(5), 노스 다코다(3) 등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부시는 선거인단수가 20명이 넘는 6개주(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욕 텍사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에세 유일하게 텍사스(32)에서 승리했다.

선거란 뚜껑을 열어보아야 하지만 부시의 우세지역 지도는 아직 실속이 없는 편이다. 최대격전지로 꼽히는 플로리다(25)와 펜실베이니아(23)에서 부시가 어떤 결과를 나을 것이냐가 대권의 향방을 가름할 것이다.

대통령 선거인단은 의회 정수 535명(상원 100명과 하원 435명)과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을 합한 538명이며 과반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선거인단 202명이 걸려 있는 19개 주에서는 어느 후보도 오차 범위를 넘어서는 우세를 보이지 못했다. 다만 이들 주의 투표인단을 현재 앞서 있는 후보에게 배정한다면 고어가 33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조사됐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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