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30)] 서지현 버추얼텍 사장(上)

"여성 벤처기업가"라고 하지 마세요

“여자라고 봐주는 것은 전혀 없는데 주변에서는 여러 경로로 특혜를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볼 땐 솔직히 기분나빠요. 사업 잘 되는게 우리가 열심히 해서 그런게 아니라 외부 도움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너무 한 것 아니예요?”

코스닥 벤처기업 중에서는 유일한 여성 최고경영자(CEO) 서지현 ㈜버추얼텍 사장은 주변에서 자신을 `보통 벤처인'이 아니라 굳이 여성 벤처기업가로 취급하는 풍토를 영 마땅찮아 했다.

여자라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터에 남성우위의 시각에서 자신과 기업을 보는 뭇 남성의 시각이 도무지 싫은 것이다. 기업가란 능력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남성 여성으로 가려 어쩌자는 것인지 그녀는 안타깝기도 하다.

인터넷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여성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는 말도 있지만 서 사장을 보면 `남자 10명이 1명의 여성을 못당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탄탄한 기술력에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쉽, 그리고 여성 특유의 직감력까지 갖추고 있다.

버추얼텍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유무선 인터넷 솔루션 분야의 갸??자로 자리를 잡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여성 특유의 직감으로 인트라넷에 도전

버추얼텍이 자랑하는 인터넷 솔루션은 인트라넷 그룹웨어인 인트라웍스 2.11(미국판은 조이데스크 2.11).

서 사장의 입을 빌리면, ”인터넷 혁명 시대에 기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을 강화하는 경영전략이 필요한데, 이러한 요구를 완벽하게 지원해 주는 환경”이 바로 인트라웍스다.

이 솔루션의 강점은 역시 기업내의 3C(Communication, Collaboration, Coordination)를 강화시켜 업무의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한 것. 클라이언트/서버 방식의 그룹웨어가 각 PC마다 독립된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하는 것에 비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환경이면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 솔루션 외에 화상회의 시스템, SI(시스템 통합), E메일 솔루션 등이 버추얼텍의 주력사업이다.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전체 매출 (37억 6,000 만원)에 근접한 32억여원.이중 수출이 30% 가량이다.

요즈음이야 인트라넷이 거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지만 버추얼텍이 인트라웍스를 개발한 1996년 9월에만 해도 인트라넷 그룹웨어는 전무한 상태였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 사장이 그룹웨어 솔루션쪽으로 눈을 돌린 것을 보면 스스로의 표현대로 그녀의 직감력이 엄청 뛰어난 듯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인터넷 선진국에서는 인트라넷이 보편화되어 있더라구요. 이 개념은 곧 국내에 도입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느꼈어요. 이거다 싶어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갔어요.”그때가 1994년 여름이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업으로부터 소프트웨어 개발 하청용역을 받아 일하다 `우리 것'을 한번 해보자며 버츄얼아이오시스템을 설립한 직후였다.

첫 작품은 2년 뒤에 나왔다. 오리지널 인트라웍스다. “첫 작품이후 지금까지 개선을 거듭하면서 느낀 점은 90점짜리 제품을 만드는 건 쉽지만 100점짜리 제품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10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 착오와 경험이 필요하지요.”

서 사장의 이 말에는 `10점 고비'를 넘긴 버추얼텍의 피와 땀이 고스란이 녹아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개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개발만큼 중요한 게 마케팅이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더욱이 '소프트 웨어는 공짜' 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기존이 틀을 깨는 사고방식

서지현 사장의 말은 시원시원하다. 막히거나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여장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형이다. 그런 성격 탓인지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생각도 늘 자유롭다.

`잘 놀아야 일도 잘한다'는 평소 신념이나,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록카페에 갈텐데'하는 마음, `다시 태어난다면 백댄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희망 등은 꽉 짜인 기존의 틀을 깨뜨려는 욕망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더라도 그녀는 지금까지 무모할 정도로 기존의 틀을 깨면서 살아왔다고 할만하다.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연세대 전산과학과 (83학번) 1기답게 가을 축제 때 당돌하게도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을 내놨다.

남녀가 카페에 마주보며 앉아 소지품을 매개로 짝을 짓는 미팅이 성행할 때 그녀는 각자의 자료를 입력해 합리적으로 짝을 찾는 당시로서는 파격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이다.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입니까. 남녀간에 서로 원하는 정보를 입력해 맞춰보는 것인데 점수가70점 이상이 나오면 파트너가 되니까. 인기도 좋았어요. 그런데 학생운동이 워낙 거셀 때라 총학생회 집행부와 한바탕하고는 관뒀지요.”

이렇게 시작된 프로그램 개발은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모두들 졸업과 함께 대기업으로 몰려갈 때 그녀는 학교에 남아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했고, 1991년 9월에는 대기업에서 근무 잘하는 친구를 꼬드게 컴퓨터 3대로 `미니 회사'차렸다.

홍익대학교 부근에 반지하 작업실을 임대한 그녀는 `하청의 하청'을 받아 기업의 회계 재고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흔치 않았던 1980년대 후반, 서 사장의 뛰어난 능력은 대기업으로 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운명적인 밤샘작업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서로 다른 기종간 데이타 통신을 할 수 있는 통신접속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납품했으며 한국통신에는 인공위성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톡톡 튀는 '오렌지 군단'

인터넷의 등장은 그녀에게 또한번의 변신기회를 제공했다.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서 사장이 인터넷 솔루션 개발을 위해 버츄얼아이오시스템을 세운 것. 그리고 전문경영인으로 역할을 바꿨다. 제품개발보다 시장개척이 그녀의 몫이었다.

버추얼텍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특이하게도 `떴다, 인터넷 오렌지 군단'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톡톡 튀는 감각으로 항상 젊고 싱싱하게 살아가는 기업문화를 뜻한다고 했다. 분위기도 어느 곳보다 자유롭다.

사무실 한 구석에는 젊은 남자 직원이 타고 다니는 스케이트 보드가 놓여 있다. 서 사장을 누나라고 부르며 “여자 친구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도 있다.

미국 지사쪽에서는 스스로 호모라고 커밍아웃한 친구를 서슴없이 뽑았는데 보통 사람보다 훨씬 일을 잘한다며 만족해하는 서 사장이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0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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