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논란] 동성애자, 햇빛 속으로…

인권 사각지대서 방치된 삶 "동등하게 살고싶다"

더이상 자신의 성(性)정체성을 속이기 싫다며 얼마전 공인으로서는 최초로 커밍 아웃을 해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탤런트 홍석천씨.

용기있는 행동이었다는 지지도 많이 받았지만 그는 하루아침에 `뽀뽀뽀' 등 출연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두어야 했다.

MBC는 “홍석천씨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데 대해 자의로 그만두었다”고 했지만 “윗분이 몹시 불쾌해한다”는 제작진의 전화를 받은 후 내린 결정인 만큼 사실상 사퇴권고나 마찬가지였다. KBS도 “사회적 통념상 일반 시청자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처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혹은 그 사실이 우연히 드러나면 누구라도 온전히 직장생활을 계속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곱지 않은 시선, 은근한 멸시, 거기에 노골적 혐오는 견딜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대부분은 알아서 직장을 그만둔다.


주위로부터 부당한 대우

남성 동성애자에게는 군대도 견디기 힘들다. 그만둘 수도 없고 아예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동성애 단체에서 일하다 입대한 A씨는 군생활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탈영했으나 그날로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는 군 관계자들로부터 심문을 받는 중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했고 군 정신병원으로 넘겨져 그곳에서 군의관 등에게 각종 모욕적 언사를 받았다. 에이즈 환자일지 모른다며 강제 채혈까지 당했다.

군의관은 그를 성도착증 환자 같은 정신병자로 취급했고 본인의 동의 없이 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다. 간신히 부대로 돌아간 그는 이 일로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제대가 얼마남지 않은 그는 제대 후 자신을 부당하게 정신병자로 취급한 군의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생각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도 동성애자에게는 등을 돌린다. 대학생 B씨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겨오다 가족에게 커밍 아웃을 했다. 동성애 단체에 가입하고 동성애자로 살기로 한 그는 더이상 부모를 속이기 싫었다.

그러나 경찰공무원인 아버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용서'하지 않았다. 집을 나와 동성애 단체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던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가족의 편견과 몰이해, 그로 인한 불화를 괴로워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0년대 초반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한 이래 동성애는 가장 민감한 사회적 주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기독교와 유교 등 종교단체,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좋아해야 한다는 `당연한 질서'를 거부하는 동성애자에게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제도를 해체한다', `성도덕을 타락시킨다', 심지어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등의 논리로 돌을 던졌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악성종양이자 근절시켜야 할 사회적 질병'이었다.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 차별·억압

이에 대해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는 질병도 정신병도 아니고 단지 개개인의 성적 취향”이라고 맞서 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고, 빨간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파란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이성을 좋아하는 사람 뿐 아니라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동성애는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또다른 형태임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왜 동성애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는 더이상 논의의 초점이 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차별과 억압이다.

아주대 사회학과 김병관 교수는 “동성애자들이 단지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남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성숙한 시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또 “소수인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다수와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전체주의, 획일주의적 억압은 아닌지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동성애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 중 하나다.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한 혈연사회인 한국에서 이들은 여성이나 장애자나, 빈민,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 보다도 더한 차별을 당한다. 아무도 이들을 받아주거나 도우려하지 않는다.

일반인의 편견이나 몰이해는 말할 것도 없고, 부당해고나 혐오범죄를 당해도 호소할 사람이나 기관도 없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전무하다. 홍석천씨의 예에서 보듯이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10조), 평등권(11조), 직업선택의 자유(15조), 사생활 보호권(17조) 등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인권(人權)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한국에는 동성애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동성애자 10만명 넘어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동성애는 분명 존재해왔다. 고려 공민왕이 미소년을 궁으로 불러들여 동성애를 즐겼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문종의 빈궁이 궁녀와 동성애를 범해 폐출당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한국 에이즈퇴치연맹의 1998년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성 동성애자는 약 10만여명. 여성과 청소년 동성애자, 그리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이들은 오래도록 인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음지에서 살아왔다. 이들이 바라는 인권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차별당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따돌림, 모욕, 언어폭력, 해고, 혐오범죄 등 동성애자들을 위협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이미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동성애 부부에게 보통 부부와 다름없이 상속과 사회복지나 세제상의 혜택을 누리도록 했다.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는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하는 권리다. 동성애자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홍석천씨의 커밍 아웃을 계기로 이 같은 공감대가 점차 확산돼가고 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0 21:29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