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전쟁] 200조원 카드시장, 재벌들 군침

'황금알 낳는 사업'인식, 앞다퉈 진출 채비

`200조원의 시장을 잡아라.'

21세기 신용사회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고 있는 신용카드 시장이 재벌기업과 국내외 금융업체의 무한경쟁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국내에서 별도 법인이나 독자 사업부로 신용카드 영업을 해온 전업 카드사는 12개 은행 연합인 BC카드를 비롯해 국민카드, 삼성카드, LG캐피탈, 외환카드, 동양 아멕스, 대우 다이너스 등 7개. 여기에 수협, 신한은행, 평화은행, 하나은행, 시티뱅크 등 독자적으로 신용카드 사업을 하고 있는 은행을 포함해 총 28개의 카드 사업체가 있다.

여기에 백화점과 유통카드 발급사 71개를 더하면 총 99개에 달하는 카드 발급사가 한치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12~13개사 진출 모색, 기존 99개사와 경쟁

또 SK 현대 롯데 교보 동부 금호 등 대기업과 산업은행 새마을금고연합회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금융계, 그리고 HSBC, GE Capital, Cetelem 등 외국기업을 포함해 총 12~13개 업체가 새로이 신용카드 업계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3/4분기부터 정부가 세원확보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면서 신용카드 사용이 급증하자 서둘러 이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신용카드 시장은 삼성 현대 LG SK 롯데 등 국내 6대 재벌과 국내외 금융업체간의 피튀기는 생존 전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현재 가장 공격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기업은SK. SK는 8월 중순 한미은행과 손 잡고 `한미 OK캐시백카드'를 선보인데 이어 이달 초에는 독자적으로 신용카드 사업을 해온 평화은행의 경영권과 카드사업 지분 50%를 3,000억원에 인수키로 계약했다.

SK는 그동안 경영정상화 계획의 일환으로 지분 20~30%를 매각하려는 외환카드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물밑 작업을 벌여왔다.

그런데 정부가 부실사인 대우 다이너스카드를 패키지로 함께 인수할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일단 평화은행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K의 경우 현재 자사제품을 구매하는 OK캐시백과 엔크린 카드 등 포인트카드 회원과 011휴대전화 가입자 등 1,500만명에 달하는 고객을 확보하고 있어 카드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오래전부터 신용카드 사업에 군침을 흘려온 현대도 현대캐피탈을 통해 현재 매물로 나와있는 대우 다이너스카드의 인수의사를 정부측에 타진해놓고 있는 상태다. 현대캐피탈은 이미 수년전부터 현대자동차 할부판매는 물론 개인대출 등을 통해 연간 2조~3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신용카드 사업을 준비해 왔다.

롯데는 350만명에 달하는 백화점 카드 회원을 기반으로 독자적 신용카드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부터 자회사인 롯데캐피탈을 통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백화점 카드 회원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는 업무를 개시했다.

롯데는 당초 기존 카드사를 인수하려 했으나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 현상태에서 200억~300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신규사 설립이 가능하다고 판단, 굳이 수천억원의 비용을 들여 기존 카드사를 인수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년 초 오픈을 목표로 본격적 카드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 늘자 `돈되는 장사' 인식

대기업을 포함한 업체들이 앞다퉈 신용카드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두세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IMF위기 이후 금융업에 있어서 위험성이 높은 기업여신을 회피하고 가계대출로 여신업무의 축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일은행 조흥은행 등 기업여신을 주로 한 은행이 부실채권으로 줄줄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반면 주택은행이나 국민은행 같이 가계대출을 한 은행은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했다는 뼈저린 교훈이 카드업에 눈을 돌리게 한 단초가 됐다.

여기에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 장려 정책의 영향도 컸다. 정부 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신용카드 사용자에 대해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했다. 연간 총급액의 10% 이상의 금액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경우 사용액이300만원을 초과한 액수의 10%를 세금에서 공제해준다.

슈퍼 약국 등 개인 사업자도 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했을 경우 카드 매출액의 2%를 납부할 부가가치 세액에서 제해준다. 또 기업도 물품구입시는 10만원 이상, 접대비는 5만원 이상일 때 비용으로 인정해준다.

또 새로 도입한 신용카드 복권 추첨제도 카드사용을 촉진하는데 일조했다. 여기에 국세청은 신용카드 사용을 기피해온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과 소매업 학원 음식 숙박 등 소규모 서비스업자에게 신용카드를 의무적으로 가맹토록 강력한 행정단속을 펼쳐 카드사용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여러가지 유인책에 힘입어 지난해 2/4분기부터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 초부터 매년 30~40%씩 증가해 1997년 연간 72조원대였던 연간 이용 금액은 1998년에는 IMF위기의 영향으로 1996년 수준인 63조원대로 추락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 장려 정책과 경제 회복에 힘입어 전년도에 비해 거의 50% 성장한 90조원의 기록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탄력이 붙어 상반기 이용금액이 88조원으로 벌써 지난 1년치에 육박하고 있다. 신용카드 업계에서는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100% 성장해 이용금액은 사상 최대인200조원대에 달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제시스템 미비, 과당경쟁 등 문제점도

하지만 대기업의 신용카드업 신규 진출은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금융감독원 한 관계자는 “신용카드업은 수신업무만 없지 자금 결제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등 은행업과 유사한 금융산업”이라며 “대기업의 카드업 진출 허용은 단순히 허가요건을 갖추었느냐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신중히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신용카드업은 전자 결제시스템을 갖추는 데만 500억원이 소요되는 등 초기 투자비만 1,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현재의 불안한 자금시장 상황에서는 별 타당성이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SK가 평화은행의 지분인수에 참여한 것도 이처럼 신규 신용카드사 설립을 반대하는 금융감독원을 의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신규 카드사업자의 등장으로 포화상태에 있는 국내 신용카드업계가 자칫 과당경쟁에 들어가 자칫 또다른 부실을 낳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 발급된 신용카드 매수는 신용카드사의 4,500만장과 백화점 등의 구매용 카드 2,000만장 등 무려 6,500만장에 이른다. 이것은 경제인구 1인당 2.1매로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카드 이용율은 약 40%에 불과해 카드를 발급받고서도 사용하지 않는 휴면 카드가 60%나 된다. 만약 대기업 3사가 들어와 한 회사당 800만명의 회원을 유치할 경우 발급비용만 2,28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럴 경우 과당경쟁에 따른 부실채권의 양산, 금융시장 혼란, 통화량 조절의 어려움 등의 문제점도 돌출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민간 소비지출 중 카드 사용이 차지하는 비율도 33%로 신용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약 17~18%)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상태다. 더구나 최근에는 선불 카드 형식인 전자화폐와 전자수표 등 유사 지불시스템까지 잇달아 등장해 이것과도 경쟁을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물론 신규 신용카드사의 등장은 기존사와 경쟁을 유발해 소비자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허가에 앞서 해당기업의 재무 건전성 확보, 금융 혼란을 예방할 수 있는 전산망과 신용정보 네트워크 등의 인프라 구축 등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 또다른 부실을 낳는다면 그 부담은 바로 국민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1 13:23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