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슈투니차, 청렴과 소신의 정치인

지난 9월24일 대선이 실시되기 전만 해도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56)는 거의 `가망없는 대선후보'였다.

그러나 그는 지난 13년동안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도전했던 수많은 정치인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냈으며 유고 새 시대의 상징이자 희망이 되고 있다.

1944년 유고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보이슬라브는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해온 민주투사였다. 그는 티토의 연방주의를 비난하며 1974년 베오그라드 법대 교수에서 해직돼 정치판에 뛰어든 뒤에도 줄기차게 반(反)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 노선을 걸으며 외로운 싸움을 펼쳐왔다.

이같은 그의 원칙주의는 밀로셰비치가 헌법을 개정하며 3선에 도전하자 `정치적 무기'로 부각됐다. 세르비아 민주 야당은 밀로셰비치와 타협해본 적이 없는 청렴과 소신의 정치인인 그를 18개 야권연합의 단일 후보로 옹립하며 정권교체의 불씨를 지폈다.

그의 진가는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디어 선동에 의존하는 밀로셰비치와는 달리 거리와 주택가 등에서 유권자를 직접 접촉하며 지지층을 확대했다. 선거에 승리한 후 밀로셰비치가 결선 투표를 주장하자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반격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보이슬라브 역시 민족주의와 반미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밀로셰비치와 차이는 민주적 사고방식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는 코소보 세르비아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1992년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당이 민족주의 노선에 투철하지 못하다며 아예 새로운 정당을 만든 전력이 있다.

지난해에는 나토 공습과 미국의 반정부세력 지원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유엔과 주요 경제기구는 물론 유럽안보협력기구 복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코슈투니차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와 분산된 민심을 모으는 한편 유고를 다시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는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통치 능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이동준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1 19:13


이동준 국제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