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소외계층이 늘고 있다

지역·남녀·세대간 '정보격차' 심각한 수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주부 김모(40)씨는 집에만 들어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활달한 성격에 수다도 잘 떨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인기가 높지만 집에서는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이 인터넷도 모르는 `넷맹'이라고 왕따시키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애와 함께 인터넷을 제대로 배워 두 남자의 콧대를 꺾어주고 싶지만 정체조차 모호한 `컴퓨터 공포증'에 정작 시작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

언젠가 한번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잘못된 연산으로 작업을 종료합니다'는 경고문이 뜨는 바람에 얼른 컴퓨터를 껐는데 그후 아들 녀석이 “엄마는 컴퓨터도 모르면서 왜 만져”라고 하는 말에 컴퓨터를 만지기조차 싫어졌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그늘

서울 H기업에서 부품구매 파트를 맡고 있는 황모(43)과장.

경북 영해에 있는 작은 부품제작업체들과 거래를 할 때는 짜증부터 난다. 값비싼 시외전화를 쓰기보다는 E메일로 메시지를 보내면 상대방이 그 메일을 읽었는지 안읽었는지까지 챙겨볼 수 있는 세상인데 팩스를 이용하려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인터넷 열풍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됐다. 이른바 21세기의 지식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면 누구나 그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정보 소외계층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보격차'(Digital Divide)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가정보화 수준에서 세계 22위권(2000 국가정보화 백서, 한국전산원 발간)에 오른 우리나라의 정보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이미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특히 남자와 여자, 도시와 지방, 소득계층 간에 정보화 소외계층과의 정보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격차란 유익한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계층 혹은 지역간에 나타나는 불평등 현상을 말한다. 정보접근은 새로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을, 정보이용은 그 기술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획득. 가공. 처리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한다.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인터넷 접속을 위한 초고속통신망의 가입 여부와 컴퓨터 보유 유무 등이 정보접근에 속하고, 인터넷 사용 및 활용 여부가 정보이용 측면에서 정보격차를 따지는 기준이 된다.

세계적으로는 “뉴욕의 인터넷 사이트 숫자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있는 것보다 많고 핀란드의 웹사이트 수는 남미와 카리브해 국가의 웹사이트를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인터넷 빈부격차가 극심하다”는 말이 정보 격차의 실례로 등장하곤 한다.


서울과 지방 상당한 격차

우리 기준으로 볼 때 정보격차의 가장 심각한 현상은 역시 서울과 지방,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에 나타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 김효석 의원(민주당)이 최근 한국통신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의 업체로부터 국감자료로 제출받은 지역별 초고속 인터넷망 가입자수 현황자료를 보면 정보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9월8일 기준으로 서울에 사는 사람이 초고속 인터넷망에 가입한 비율(가입자 수를 인구로 나눈 것)은 7.51%로 최하위인 경남(2.12%)에 비해 3.5배 정도 높다.

△충남 2.13% △경북 2.18% △전북 2.19% △전남 2.46% △강원 2.71% △제주 2.77% 등 대부분 도가 2%대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 대도시 지역은 △인천 7.15% △부산 6.40% △대구 6.33% △광주 6.03% △대전 5.69% △울산 4.41% 등의 순으로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서울에 있는 황과장이 왜 경북에 위치한 부품업체와 거래를 하면서 한심하다고 느끼는지 통계적으로 실증되고 있는 셈이다.

초고속 인터넷망 가입에 관한 한 지방은 인터넷 이용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보 인프라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해 4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하나로통신의 두원수 홍보실장은 "하나로통신은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63개 시지역과 14개 군 읍지역에서 초고속 통신망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서 "수익을 생각해야 하는 민간기업으로서는 도시와 지방간의 정보격차 해소에 뛰어들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정보이용 측면에서는 성별, 소득별, 계층별, 연령대별 격차가 심각하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과 올해 5월의 인터넷 이용률을 비교한 결과 20대의 경우 26.8%에서 60.0%로 급증했지만 50대 이상의 `아날로그 세대'는 2.9%에서 4.9%로 여전히 저조했다.

주부의 이용률도 1.8%에서 9.2%로 10%대를 넘지 못했다. 통계적으로 김씨 외에도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주부가 10명중의 8명이 더 있다는 뜻이고 아예 컴퓨터에 접근조차 하지 않는 주부도 72%(주부의 컴퓨터 이용율 28%, 99년12월 기준)나 된다.


주부 인터넷 이용률 10%도 안돼

소득별로는 월소득 4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이용률이 34.1%에서 53.4%로 50%를 넘었지만 월1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은 여전히 24.5%에 불과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 다시 말해 초고속인터넷망 사용 및 인터넷 접속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학력별로는 대졸 이상의 경우 인터넷 이용률이 31.3%에서 62.4%로 증가했으나 중졸 이하 학력자는 0.4%에서 1.9%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남녀간의 정보격차다. 21세기 여성정보화포럼이 지난 8월 발간한 `밀레니엄 빅뱅 우먼파워 21'에 따르면 남녀간의 정보격차는 이미 고착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기준으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남성의 비율은 46.4%이지만 여성은 29.2%으로, 주부는 10.9%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컴퓨터 보급이 본격화한 1996년, 남성이 39.9%, 여성이 24.3%로 나타났던 것보다는 이용률이 높아졌지만 남성과 여성간의 격차는 그대로다.

특히 지난해 기준으로 컴퓨터 통신을 이용하고 있는 비율은 남성 24.2%, 여성 11.3%, 주부 2.6%였으며, 이들의 하루평균 이용시간은 남성 70분, 여성 58분, 주부 35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인터넷을 이용하는 비율은 남성 21.6%, 여성 8.7%, 주부 1.8% 였다. 남성중심의 사회분위기가 정보화 부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여성포럼측은 “남녀간 정보격차의 벽을 깨기 위해서는 여성의 정보 접근 환경 개선,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의 네트워크화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신분구조 생길 수도" 우려

정보격차에 관한 자료를 공개한 김효석 의원도 “정부가 싼 가격의 인터넷 PC를 대량보급하고 있지만 인터넷 전용선 등 인프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보격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인터넷을 통한 정보획득의 기회를 사회의 특정계층이 독점하면 새로운 신분구조가 고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보격차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부족한 편이다. 정부가 정보화 역기능을 해소하고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소외계층 정보화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내년 예산안에 학생과 학부모간의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한 `아이들 따라잡기 인터넷 교실 운영'에 10억원이 편성돼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정보화의 그늘에 묻힌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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