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게, 더 촌스럽게"

우리나라의 근대화ㆍ현대화ㆍ산업화ㆍ정보화 과정이란 곧 `촌스러움 벗어나기'와 진배 없었다. 그런데 이같은 상식이 점차 오류로 치부되고 있다. 멋부려 말해 `복고풍', 정직한 표현으로는 `촌티'가 득세하는 기현상이 빚어지는, 거꾸로 가는 세상이 도래했다.

촌티를 즐기는 소비자의 심리를 간파한 상혼은 “촌스럽게, 더 촌스럽게”를 외치며 촌티범벅 광고를 양산하고 있다.

`테크노 뽕짝'의 고수인 신바람 이박사(이용석)가 출연한 `키움닷컴증권'과 `메사'(MESA)를 필두로 해태음료 `갈아만든 배-이발소편', 인터넷기업 `롯데닷컴' 그리고 `전자랜드 21' 등 촌스럽기 짝이 없는 광고를 선보이는 기업이 줄줄이 늘어섰다.

컬트, 테크노, 그리고 확실한 공감대 속에 촌티를 보장하는 북한풍 등을 잘 뒤섞어 촌스러움의 극대화를 이룩하고 있다.

이박사는 빨강 파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해 확실하게 촌티를 연출해냈다. `갈아만든 배' 광고에는 1970년대 거리를 배경으로 흥겨운 뽕짝에 맞춰 이발소 앞에서 춤추는 촌스러운 젊은이들과 이발사가 등장한다.

`전자랜드 21'에서는 통일뉴스 남녀 아나운서들이 과장된 억양으로 북한식 촌티를 풍기고 있다. 가수 송대관과 태진아는 인터넷 `롯데닷컴'이 지닌 첨단성과 트롯트의 정겨운 촌티를 묘하게 매치시키고 있다.


촌티 득세, 정겨움으로 다가와

패션도 촌티로 치닫는다. 몇해 전만 해도 “촌스럽다”는 반응이 나왔음직한 여성복에게 `귀족적', `클래식', `럭셔리'라는 수사가 붙었다.

촌티 수트도 부활했다. 위ㆍ아래를 통일한 격식 차린 수트 차림이 유행이다. 허리 여밈, 풍성한 소매, 패드를 넣은 어깨가 특징이다. 통이 넓은 팬츠나 허리를 죄는 재킷, 허리 아래부터 풍성하게 퍼지는 스커트 등이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종류의 패턴은 `촌티 패션', `아줌마 패션'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촌티는 헌 것으로까지 눈길을 돌렸다. 외제 중고 옷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여기저기 닳거나 일부러 찢고 구멍을 뚫은 상태다. 넝마나 다름없다. 그래도 좋단다.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외제 중고의류 전문점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낡거나 뚫어진 정도가 심할수록 값이 더 나가는 기현상이 빚어진다.

가수 김현정이 `너 정말'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쓰는 안경도 촌티 난다. 안경알이 크고 색도 촌스러워 1970년대의 잠자리 안경을 연상시킨다. 완전한 촌티를 추구하는 이들은 이 안경의 분위기에 맞춰 꽃무늬 셔츠에 양복 바지를 입는다. 목에 스카프를 둘러매기까지 한다.

요즘 촌티의 대표적 상징은 `골목'이다. 어느 여성 인터넷사이트 광고.촌티나는 골목에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담은 포스터를 잔뜩 붙여놓았다. 여행상품을 경품으로 내건 인터넷 검색엔진 광고. 녹슨 방범창 아래 낙서가 그득하다.

물론 화면도 컬러가 아니다. 흙빛이 감도는 단색이다. 촌티나는 청년 둘이 골목을 마구 달리는 초코바 광고, 뻐드렁니 중년남자가 골목 들창문을 열고 또 촌스러운 동네에서 춤을 춰대고…, 촌티 천지다.

골목에서 촌티를 읽을 수 있다면 더 큰 형이상학으로 접근 가능하다. 국문학자 마광수 박사는 요절시인 이상의 난해시 `오감도'에서 골목의 상징을 읽는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라는 시구를 성행위의 다양성, 즉 이성과 직접 성교가 아닌 자위행위 역시 성욕해결법이라고 풀이하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은 성행위, 뚫린 골목은 자위라는 해설. 마교수는 “막다른 골목으로의 질주란 곧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고픈 자궁회귀 본능”이라고 평했다.

골목은 촌티요, 촌티는 원초적 생명의 그리움인 셈이다. 이화여대 임석재 교수(건축학)는 “골목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초한 절대적 질서를 거부하는 전형적 반유클리드적 공간”이라면서 “골목에서는 전후좌우, 상하와 같은 선험적 공간 구획의 법칙이 철저히 깨지고 없다”고 짚었다. 골목은 촌티요, 촌티는 해방구인 셈이다.


21세기에 대한 거부와 불안감의 표현

왜들 이렇게 촌스럽게 구는가. 21세기에 대한 거부와 불안감에서 비롯된 심리라는 견해가 주류다. 특히 21세기가 정보산업사회라는 점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정보를 지배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촌티 경도다. 발전하는 문화에 대한 반(反)문화현상이 일어나고 이는 곧 옛 것을 향한 강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작금의 촌티 붐을 인간 사고의 정지로 풀이하기도 한다. 더이상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현재로 충분하며 나아가 과거의 것들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산업사회로 발전해가면서 메말라갔던 인간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문화의 모든 부분이 갈 데까지 갔으므로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 촌티로부터 새로운 갈래를 찾아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촌티와 복고주의 자체가 대중문화와 어우러지면서 상업성이 짙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는 구세대에게 향수를 주지만, 신세대에게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촌티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닌, 과거를 현재로 새로이 해석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시인 정중수씨는 “인간의 비극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촌티를 상실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짚었다. 루소는 그래서 “자연(촌)으로 돌아가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평양 사람 사이에서도 촌티, 촌닭 같은 말이 쓰이고 있을까. 텔레비전으로 평양 여자들을 보노라니 어쩐지 그들에겐 아직 촌티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촌티의 총체격인 북한의 판단은 다른가보다. 노동신문은 당간부와 여성의 옷차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간부들과 함께 평양 거리를 둘러보다가 “여성의 옷차림이 세련되지 못하고 촌티가 난다”면서 “특히 발끝까지 감춰야 할 비로도 치마를 무릎까지 올라가게 입은 것은 문화성이 없다”고 비판했다고 전한다.

신동립 스포츠투데이 생활레저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1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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