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ㆍ미관계와 한반도] 북·미 급진전에 서울·도쿄는 불안?

한·미·일의 대북 공조 불구, 대북정책 균열 우려

10월 25일 오후 3시 15분 서울 신라호텔 3층 라일락 룸. 한ㆍ미ㆍ일 3국 외무장관 회담에 대한 기자회견을 막 끝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양팔을 엇갈려 왼쪽의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 장관, 오른쪽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무장관과 악수하는 포즈를 취했다.

이 장면은 올브라이트 장관이 2박 3일간의 `화려한 평양 나들이' 를 끝내자 마자 서울로 날아온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튼튼한 3각 공조'. 이날 3국 장관이 전세계를 향해 던진 메시지는 바로 “3국의 대북정책 공조에는 조금의 틈새도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한ㆍ미ㆍ일 3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 한배를 타고 있는가. 3국의 장관들이 다소 요란스러울 정도로 공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역사적인 북한 방문 그 자체에 들어있다.


북· 미관계 급물살, 한·미·일 미묘한 기류

올브라이트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미국이 정상적 관계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며, 우리는 지금 그 길의 종착점보다는 출발점에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지적대로 이번 그의 북한 방문이 북미간 적대관계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과 북한이 50년의 적대관계를 접고 관계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역사적 사건임은 분명하다.

동시에 그의 북한 방문은 6ㆍ15 남북 공동선언에 이어 한반도가 냉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안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미 관계가 당초 예상보다 급물살을 타면서 한반도의 냉전체제 해체라는 목표아래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는 세가지 중심축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북일 관계의 진전은 상대적으로 더욱 뒤쳐지게 되는 현상이 완연해진 것이다. 이러한 3국간 대북 관계 진전의 속도차는 3국간 대북 정책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이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을 지켜보면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악몽을 연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사토 에이사쿠 일본 내각은 외교적 무능력에 대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음으로써 결국 내각 붕괴의 한 원인이 됐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 10월 25일 서울로 달려와 3국 외무장관 회합을 가진 것이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올브라이트 장관에게 “일본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부탁한 것은 대북 관계 진전의 속도차에 따른 일본의 우려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도는 다를 지 몰라도 북미 관계의 급진전 양상을 지켜보는 서울의 시각도 예사롭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달리면서 남북 정상회담 이전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이 이틀 뒤인 27일 2차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 등을 통보해옴으로써 이같은 우려의 확산 속도가 줄어들긴 했으나 미국이 북한에 주게 될 경제적 혜택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부정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한ㆍ미ㆍ일 3국 외무장관이 “남북간 화해협력 및 긴장완화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증진시키고 범세계적 비확산 노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 것은 이러한 우리 내부의 우려를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대북정책 우선순위, 3국 다 달라

3국간의 입장차는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가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과제 해결과 남북 경협의 촉진, 안보대화를 통한 남북 평화협정의 체결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면 일본인 납치 의혹 해결은 일본에게 가장 시급한 선결 과제이다.

미국의 대북정책 목표는 보다 명확하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만큼 대북 정책을 수행하는 미 행정부 관리들의 머리 속을 차지하는 것은 없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10월 23일 밤 평양 5ㆍ1 경기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8년 대포동 로켓발사 장면을 표현한 카드섹션을 보면서 던진 말에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이것이 첫 인공위성 발사였고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김 국방위원장의 언급은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미 국민을 향해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고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올브라이트 장관에게는 더 없는 선물이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 미사일 문제를 보는 한ㆍ미ㆍ일의 시각에는 근본적이 차이가 있다. 우선 미국의 최대관심은 미 본토를 사정권으로 하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중단과 중동 등에 대한 중ㆍ단거리 미사일 수출 차단에 있다.

북한은 1998년 8월의 발사 실험에서 일본 영공을 넘어서는 대포동 1호(사정거리 1,500~2,000km)에 이어 미국도 사정권에 들어가는 대포동 2호(3,500~6,000km)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의 경우는 대포동보다는 사정거리 1,300km 정도의 노동 미사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노동 미사일은 이미 실전 배치돼 있다. 군사분계선에서 서울까지 50km 정도 거리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는 미사일보다도 재래식 병기가 더 위협적이다.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을 위해 인공위성 발사를 지원하는 안이 현실화하고 북한 미사일 수출 규제를 위한 북미간 협상이 본격화하는 단계가 되면 북한에 대한 보상 방법을 둘러싸고 3국간 온도차가 표면화할 우려가 있다.

지금까지 미사일 수출 중단을 둘러싼 북미간 협상은 매년 10억 달러씩을 3년간 보상하라는 북한의 주장과 미국의 `현금보상 불가 방침'이 맞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 장거리 미사일 문제 해결의 경우 북한 인공위성의 발사 주체, 장소, 비용 등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북한 미사일 문제의 해법은 `돈'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시각차 상존, 공조 중요성 높아져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에 대한 보상 방법으로 1994년 핵위기 때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식 컨소시엄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한ㆍ미ㆍ일 3국 등 한반도 안보 상황에 직결된 국가들이 인공위성 발사 비용 등을 분담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북일 관계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KEDO에 10억 달러 제공을 약속한 일본 정부가 미국의 비용 분담 요구를 수용할 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거리 미사일의 직접적 위협권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용 분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는 컨소시엄 참여 문제를 검토한 적도 없고, 검토할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3국간의 이같은 시각차는 역설적으로 3국간 공조의 중요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온도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대북 관계 진전의 `상호 보완'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ㆍ북 관계 및 일ㆍ북 관계의 개선이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고, 아울러 남북 관계의 진전은 미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3국 외무장관들의 이같은 평가는 각국간 대북 정책의 이질 요소를 3국 공조의 테두리 속에 붙잡아 두지 않으면 대북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정세 판단을 대변하고 있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3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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