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시민운동' 가능성 열었다

러브호텔 반대운동, 지역민 근거로 활발한 활동

많은 사람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대안으로 풀뿌리 지역자치 운동을 이야기한다.

현재와 같은 중앙집중형 연대운동보다는 지역의 실정과 주민의 현실적 요구에 근거해, 사안에 따라 분화된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적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러브호텔 건립 반대를 위한 일산시민의 움직임은 이러한 풀뿌리 지역자치 운동의 일례를 보여준다.

러브호텔 반대 운동은 1999년 7월 고양시 일산구 대화동 일대에 6개의 모텔이 문을 열자 일산 여성민우회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민우회는 러브호텔 반대가 시민단체만의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지역 주민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갔다. 러브호텔 문제가 알려지고 그 폐해에 공감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러브호텔이 집중되어 있는 백석, 마두, 탄현, 대화동 주민은 아파트 구내 방송 등을 통해 수시로 모임을 열고 공동대책을 논의했다.


주민들 자발적 모임에서 출발

지난해 황교선 시장과의 면담, 시정 질의 등 청원형 운동을 벌이던 이들은 올 상반기에 탄현과 마두동 일대에 또다시 10여곳의 러브호텔이 건축승인을 받자 보다 강력한 조직을 결성했다.

김한석씨 등 4개동 주민이 뽑은 4명의 주민 대표가 여성민우회 김인숙 대표와 공동으로 `고양시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 난립저지 공동대책위'를 꾸렸다.

민우회 외에 고양시민회, 고양청년회, 참교육 학부모회, 전교조, 녹색소비자 연합, 민주노동당 고양지부 등 다른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이들은 주로 실무경험이 없는 시민을 지원했고 이후의 일은 시민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공대위는 지난 8월 두차례의 궐기 대회를 열어 황교선 시장 및 고양시 당국의 무책임한 행정을 성토했고 9월에는 인터넷 홈페이지(prometheus.interpia98.net/~zerobu)를 개설하고 1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또 지난 10월15일 `고양시민 행동의 날'에는 주부가 주축이 된 1,500여명의 시민이 모여 일산 시내를 행진했다. 그 와중에 러브호텔 반대운동은 조세납부 거부 등의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이어졌고 기초자치단체장의 행정책임을 묻는 주민소환제 도입을 위한 헌법소원까지 진행되고 있다. 일산 주민은 요즘도 매주 토요일마다 러브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이들은 단순히 러브호텔 건립 저지 외에 이미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는 20여개의 러브호텔을 주민편의시설로 바꾸는, 보다 장기적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일산 지역의 움직임에 힘입어 얼마 전에는 러브호텔이 문제가 되고 있는 대전, 대구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전국 공대위를 만들었다.


일부 공무원의 낡은 의식과 행정도 운동 부추겨

일산 지역 러브 호텔 반대 움직임은 최근 일어난 어떤 시민운동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시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생활상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30, 40대 젊은 층이 주를 이루는 일산의 인구구성도 한몫 했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제도적 불의에 조직적으로 저항할 줄 알고, 당연히 누려야 할 자기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여기에 성숙해진 시민의식에 한참 못미치는 고양시와 일선 공무원의 무책임과 낡은 행정도 시민의 조직적 운동을 부추긴 주요한 요인이다.

공대위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오동욱씨는 “일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러브호텔 반대운동 이전에 주민 소환제 등을 구호로 주장했더라면 시민의 반응과 참여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을 것”이라며 “공동의 문제의식과 주민의 실정에 맞는 현실적 활동,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러브호텔 반대 운동을 시민 있는 시민운동으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31 23:00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