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이나타운] 화교 "컴백 코리아"

98년 외국인 규제 철폐 후 유입 조짐

“최근 한국 화교사회에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에서 대만 등으로 이민갔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돌아오고 있고, 당초 이민을 준비하던 사람도 국내에 머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부자오치ㆍ卜昭麒 주한 대만대표부 영사)

“서울 화교 중ㆍ고등학교 재학생은 작년에 비해 100명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서울 화교초등학교 저학년의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국에 정착한 화교수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2~3년 후면 중ㆍ고등학교의 학생수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쑨수이ㆍ孫樹義 서울화교중고등학교 교장)

“약 2년 전부터 연희동 서울 화교 중ㆍ고등학교 주변지역에서 화교에 의한 부동산 매입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주로 시가 5억원 이상의 덩치큰 주택이 매입대상이다. 지방 화교들의 매입 문의도 부쩍 늘었다. 현재 화교중ㆍ고교 주변 1km 이내의 부동산은 5% 정도가 화교 소유로 추정된다.”(박형인 새산부동산 대표ㆍ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부동산 매입 등 한국투자 늘어

세계에서 차이나타운이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 화교들이 떠났던 한국에 다시 화교들이 역유입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화교 역유입 현상이 일어난 것은 IMF환란 발생 이후인 1998년 말부터. 정부가 투자유치 차원에서 외국인 부동산 소유제한을 비롯한 각종 규제를 완화한게 직접적 원인이다. 외국인에 대한 규제완화는 자연스레 한국 거주 외국인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화교에 대한 규제완화로 연결됐다.

규제완화는 부동산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과거 외국인에게는 아파트나 주택 중 한가지만 소유하도록 하고 공장용지도 200평 이내에서만 소유를 허용했으나 이같은 제한을 없앴다. 주택은행을 통한 아파트 추첨권과 부동산 임대권을 개방했고 공기업 주식의 보유도 허용했다.

이밖에 3년마다 갱신하던 거류기한을 5년으로 연장하고 귀화조건도 크게 완화했다. 이에 따라 화교들이 한국에서 재산을 취득하고 증식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넓어졌다.

외국인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는 두가지 방면에서 화교, 넓게는 중국계의 한국 투자를 유발하고 있다.

우선 기존에 한국과 연고를 갖고 있던 화교들의 투자다. 과거 수십년에 걸쳐 한국의 규제를 피해 대만이나 미국 등으로 빠져나갔던 화교들이 한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해외 화교기업과 관련 단체들이 IMF체제 이후 평가절하된 국내기업 등을 투자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과거 한국과 연고를 가졌던 화교의 투자는 소규모 `풀뿌리 투자'의 성격을 갖는다. 국내외 화교들이 최근 수년간 수도권 이외의 각 지방에서 상당한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것은 화교사회에서 공공연한 이야기다.

대표적인 화교 거주지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과 마포구 연남동을 연결하는 이른바 `화교벨트'에서도 활기는 분명히 느껴진다.

화교벨트에 거주하는 화교는 약 4,000명으로 한국 화교 1만8,000명의 20% 이상에 달한다. 이곳 화교벨트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비교적 큰 중국음식점은 10여곳. 단란주점도 2~3곳이 된다. 특유의 붉은색과 황색 간판이 중국 냄새를 물씬 풍긴다.


연희동, 연남동에 `화교벨트' 조성

이중 연희1동의 `중국원'(中國苑)과 `진북경'(眞北京)은 화교하면 의례히 자장면집을 연상하는 한국인의 관념을 바꿔놓고 있다. 6층짜리 중국원 건물의 2층은 학원, 3~5층은 예식장, 6층은 중국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7층 진북경 건물 역시 웨딩타운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원의 탄융파(譚永發) 사장은 “연희동과 연남동에 거주하는 화교와 중국계 관광객이 손님의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 정부가 올해 6월부터 중국인의 한국 관광을 전면 자유화한 이후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연희동 일대에 인삼제품을 판매하는 대형매장이 4곳 들어선 것도 관광객 증가와 맞물려 있다. 화교가 운영하는 연희3동 `고려인삼공매국'의 출입문에는 `내국인 출입금지'표지가 붙어있다.

서울 화교벨트의 활기는 인구변동과 부동산 매입에서도 드러난다. 올 9월30일 현재 서대문구 관내 중국인 등록인구는 2,611명(1,058세대).

지난해 같은 기간 2,349명(697세대)에 비해 262명(361세대)이 늘어났다. 올들어 화교에 의한 부동산 매입은 21건에 29억3,626만원에 달했다. 연희동과 연남동이 서서히 차이나타운의 모양세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토착 화교에 비해 해외 화교의 한국투자는 규모면에서 `바이 코리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산업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부터 올해 9월30일까지 중국 본토로부터의 한국 직접투자액은 1,300여건에 9,700만 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홍콩은 6억4,700만 달러, 대만은 7,18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해외화교자본 `바이코리아'

동남아지역에서의 한국 투자는 더욱 눈부신다. 싱가포르는 103건에 16억6,700만 달러, 말레이시아는 152건에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홍콩과 대만, 동남아 지역의 투자는 대부분 화교자본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통계는 실제투자보다 훨씬 과소평가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외국인 지분이 10%를 넘어야 외국인 투자로 취급하는 통계기준 및 미신고 투자로 인해 누락된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다.

국내에 진출한 화교자본 중 두드러진 것은 싱가포르 투자청(GIC)이다. GIC는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 한라시그마타워 1~11층을 330억원에 매입하면서 국내에 데뷔했다.

올 6월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를 3,550억원에 사들인데 이어 7월에는 서울 회현동 아시아나빌딩을 500억원에 매입하면서 부동산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대우의 서울 힐튼호텔을 2억2,000만 달러에 사들인 홍룡그룹도 싱가포르 투자전문회사로 화교기업이다.

대만도 `바이 코리아'에 가담했다. 지난해 11월3일 르위에구앙(日月光)사가 모토로라 코리아의 파주 공장을 인수하는데 1억6,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대만 국민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중국개발신탁은행(CDIB)도 지금까지 벤처캐피털 등에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한 대만대표부의 야오훙청(姚鴻成) 경제담당참사관은 최근 2~3년간 대만기업의 대한투자가 최소한 3~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姚 참사관은 “규제완화 등으로 인해 한국의 투자환경이 개선되면서 대만의 중소규모 투자도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투자유도 위한 정책 세워야

이같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화교자본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한국인의 배타성, 특히 화교에 대한 배척감이다. 둘째는 해외화교와 한국을 매개할 국내 화교사회가 허약하다는 것이다.

국내 화교사회의 허약성은 보다 심도있는 규제완화와 정책적 노력없이는 극복할 수 없다. 화교들은 최소한 경제활동에서는 내국인 대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교들은 현재 신용카드 발급에 보증인을 세워야 하고, 핸드폰 구입에도 보증금 30만원을 걸어야 한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0/31 23:0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