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31)] 스기(杉)와 히노키(檜)

일본의 산에서는 거의 어디서나 하늘을 향해 곧바로 뻗어 올라간 거목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세콰이어에 비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사찰 입구 등에 더러 선 아름드리 전나무가 끝없이 늘어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모습이 장관이다.

이 나무가 일본의 대표적 수종인 스기(杉:삼나무)다. 일본의 나무 가운데 약 40%를 차지한다. 우리는 다같이 삼나무라고 부르지만 스기는 반 고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향나무 비슷한 유럽 삼나무는 물론 중국 삼나무와도 많이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기가 규슈(九州)에서 혼슈(本州가) 북단의 아오모리(靑森)현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자생해온 일본 특산종이기 때문이다. 큰 것은 높이 50m에 이르고 가슴높이 부근의 직경이 2m를 넘는 것이 적지 않고 더러는 직경이 4m를 넘는 것도 있다.

자생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가고시마(鹿兒島)현 야쿠시마(屋久島)의 해발 1,000~1,500m 지역의 숲이다. 연 강수량이 1만mm에 달해 일년내내 물보라에 잠겨 있는 이 숲에는 수령 1,000~3,000년의 거목들이 즐비하고 둘레가 41m에 달하는 거목도 있다.

특히 추정 수령 7,500년의 거목은 `조몬(繩文)스기'라고 불리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원전 8,000~기원전 400년의 일본 신석기 시대를 토기 형태를 기준으로 `조몬시대'라고 부르는 데서 나온 별명이다.

일본 최대ㆍ최장수 수목인 스기는 똑바로 높게 자란다는 점에서 눈에 잘 띄었고 이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일본인은 신성한 나무로 여겨 아꼈다. 스기를 신목으로 삼은 신사는 부지기수이며 아예 신사 이름에 `오스기'(大杉) `오이스기'(老杉) 등 `스기'가 붙은 신사도 많다.

또 `스기모토'(杉本) `스기시타'(杉下) 등 `스기'가 들어간 지명이나 성(姓)도 흔하다. 스기를 신목으로 삼아 그 아래서 제사를 올리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스기는 나무 껍질이 적갈색이나 암갈색의 섬유질이며 아래위로 가늘게 찢어져 벗겨진다. 변재는 희고 심재는 적갈색, 또는 암갈색이어서 경계가 뚜렷하다. 판자는 나뭇결이 자를 대고 줄을 그은 듯 바르고 재질이 물러 가공하기 쉽다는 점에서 천장재나 바닥재를 비롯한 건축재로 널리 쓰인다.

또한 통나무는 굵기에 따라 대들보나 기둥, 서까래에 이용된다. 간벌재(間伐材)는 전봇대나 공사장의 아시바(足場·비계)로 쓰였다. 심재는 술에 은근한 향기를 주기 때문에 니혼슈의 술통으로도 흔히 쓰인다.

한국에서는 무늬목 재료나 천장테로 쓰일 만큼 귀한 스기가 일본에는 무진장으로 널려있다. 성이나 절, 신사 등 일본의 옛 건축물 가운데는 그 규모가 놀라운 것이 적지 않은 것도 기둥이나 대들보에 쓸 거대한 스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기는 일본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꽃이 피는 3~4월에는 미세한 꽃가루를 대량으로 내보내 전국에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들이 넘친다. 합판 이용이 늘어 수요가 날로 줄고 있는 가운데 콘크리트 전봇대나 플라스틱제 비계에 밀려 간벌재의 이용도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벌채 비용이 상대적으로 커져 간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경제성이 있는 대형 재목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역시 일본 특산으로 제2의 수종인 히노키(檜:노송나무)도 멀리서 보면 스기와 흡사하다.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고 껍질의 색깔이나 벗겨지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 뒤섞여 자라는 예도 많아 혼란을 더한다.

다만 껍질이 벗겨진 자리가 붉은 색을 띠고 잎이 측백나무 비슷해 바늘잎이 잎줄기에 나선형으로 박혀 있는 스기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원시시대에 나무 구멍에 막대기를 꽂고 양손으로 비벼 돌려 불을 일으키는데 썼던 데서 나온 `히노키'(火の木·불나무)라는 이름이 그대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히노키는 최고의 건축재이자 내장재다. 변재는 연한 노란빛을 띠고 심재는 연한 갈색이나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스기보다는 재질이 단단하고 은은한 광택과 향기가 고급 목재에 걸맞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궁전이나 절, 신사 등의 건축재로 쓰여 왔다.

특히 가공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내구성이 뛰어나 불상 등 각종 조각이나 목기에 이용됐다. 지금도 일본인은 히노키로만 지은 집을 최고급 주택으로 치며 최소한 천장이나 문창살이라도 히노키로 하려고 애쓴다.

특히 은은한 향기를 높이 치기 때문에 히노키로 만든 목욕탕 히노키부로(檜風呂)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한편 초선 정치인의 국회 본회의 첫 질의나 연예인의 본격적인 데뷔 등을 `히노키부타이'(檜舞臺)라고 한다. 히노키로 만든 무대란 아무나 설 수 없는 최고급 무대였던 데서 연유한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2hk.co.kr

입력시간 2000/10/3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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