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34)] 김동연 텔슨전자 사장(上)

자신있는 것은 시장을 보는 눈이다. 그리고 기획하는 능력이다. 어려운 것은 사람 관리. 조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커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스스로는 늘 그게 불만이다. `한국의 노키아'를 꿈꾸는 텔슨전자의 김동연 사장.

일류 정보통신 전문회사를 지향하는 만큼 기업조직도 일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통해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한 자괴감이 적지 않은 김 사장이다. 그래서 아직은 톡톡 튀는 젊은이들과의 세대 차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정보통신분야 중소·벤처기업 중 매출 1위

텔슨전자는 이동통신 단말기를 만드는 회사다. 쉽게 말하면 휴대폰 생산업체다.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형 제품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 3-4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런데 왜 삼성전자의 애니콜이나 LG전자의 사이언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텔슨의 자체 브랜드는 없어요. 국내에서는 016의 '네온' 제품을 전량 주문자 상표부착방식(OEM)방식으로 생산해 제공하고, 해외에서는 모토롤라와 손잡고 원천개발제조(ODM)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죠. 자체 브랜드는, 아직 우리의 역량을 좀 더 키워야죠.”

ODM이란 제품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뒷마무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생산업자가 독자적으로 판단,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굳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려면 지금이라도 그리 어렵지 않지만 텔슨전자는 아직 노키아와 같은 일류기업과 새로운 제품을 공동개발하는데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또 자체 브랜드가 없어도 잘 나가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이 2,044억원으로 정보통신분야 100대 중소·벤처기업 중 매출실적 1위. 올해 총 매출을 5,000억원대로 보고 있다.

사업 규모로만 보면 텔슨전자는 이제 벤처를 졸업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김 사장은 영원한 벤처인으로 남고 싶어한다.

“남들이 저를 벤처1세대라고 부르는데 글쎄요? 회사를 세운 1991년도엔 벤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다행히 이 단어 때문에 우리같은 작은 기업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텔슨전자는 제조업체입니다. 제조업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지요. `100을 투자해서 5를 버는 업종'이니까요.” 그의 말은 잘해야 수익이 5%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조업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그런 질문은 한마디로 우문(愚問)인데, 대답도 우답(愚答)밖에 없어요. 배운 게 이것 밖에 없기도 했지만 진짜 바보니까 제조업에 뛰어들었죠.”


새로운 것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통신기기 전문회사인 맥슨전자의 기획영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김 사장이 창업을 결심한 것은 실로 우연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입사한지 10년을 넘긴 1991년 8월 아버지가 쓰려졌다. 병원진단으로는 남은 생명은 한달여. 4대 독자인 그는 아버지 간호를 위해 휴직을 신청했으나 거부됐다.

회사를 그만둬버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병원의 진단과는 달리 6개월여만에 곁에서 따로 돌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호전됐다. 아버지도 아들에게 제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재취업은 여의치 않았다. 맥슨전자에서 함께 일했던 8명이 우연찮게 한자리에 모였다. 텔레커뮤니케이션즈(Telecommunications)의 계승자(son)란 뜻인 `텔슨전자'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창업 당시 우리는 두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벤처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새로운 것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정신을 잃지 않고, 텔슨전자라는 법인에 확고한 존재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었어요.

법인(法人)은 말 그대로 법적으로 인격이 주어진 존재이니까 인격 형성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필요하죠.” 텔슨전자가 지금까지도 연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텔슨전자가 첫 보금자리를 튼 곳은 봉천동에 있는 15평짜리 허름한 사무실. 그러나 젊음의 열기는 뜨거웠다. 김 사장은 첫 작품으로 유선전화기를 선택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무선전화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보면 실로 엉뚱한 발상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좀 엉뚱한 데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유달리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아버지가 아끼고 아꼈던 축음기를 비롯해 집안에 있는 모든 전자제품을 그냥 두지 않았다. 뜯고 맞추고, 그러다 고장나면 부모에게 야단 맞고.

그래도 그는 그만두지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서는 자동차를 뜯고 고치곤 했다. 아무리 상태가 나쁜 자동차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쓸만하게 변했다. 되팔아서 쏠쏠하게 챙긴 돈도 꽤된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이 포기한 프로젝트를 넘겨받아 얼마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 요인은 엉뚱한 발상에서 나온 사고의 대전환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가능과 불가능은 시간싸움에서 결판

남들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유선전화기에 건 도박은 대성공을 거뒀다. “6개월만에 내놓은 피라미드형 유선전화기 소나타는 새로운 디자인과 품질로 대박을 터뜨렸어요. 4만 5,000원이라는 고가에도 70만대 이상을 팔았으니까요.”

김 사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900Mhz 무선전화기와 호출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하나의 대박은 광역무선호출기 WAPS에서 나왔다. “94년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에서 가입한 호출기는 왜 지방에서 울리지 않는 것일까. 연구원들에게 물었더니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요. 그렇다면 주파수를 같게 하면 되잖아요.”

간단한 논리였지만 주파수를 같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로라 하는 박사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자문을 얻고 실험해 보기를 6개월. 그는 광역무선호출 서비스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한국이동통신에 보여주고 개발비를 받아냈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게 없어요. 모든 게 시간의 문제지요.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도 막상 해보니까 되더라구요. 광역무선호출 서비스가 대표적이지요. 가능과 불가능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판이 난다고 봅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제품 개발이든, 시장에 내놓는 것이든 시간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는 다른 회사에서 1년이 걸리면 텔슨전자는 4개월에 해치운다고 자신했다. 그만큼 결정이 빠르다는 이야기인데 거꾸로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포기한다'는 김 사장이다. 스피드는 텔슨전자의 `압축성장'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1/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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