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비만클리닉 원정혜 선임연구원

발랄한 천사처럼 보이는 그녀는 사실 덜렁이다. 사례 하나. 취재가 있던 날 아침 확인차 전화를 했더니 난데없이 “어제 왜 안 오셨냐”며 반 원성이었다.

`전화번호도 아는게 없어' 대책없이 2시간 이상을 기다렸다고 했다. 맙소사. 그녀는 자신이 직접 잡은 약속날짜는 물론 이쪽에서 알려준 전화번호까지 통째로 까먹은 채 혼자 바람을 맞고 맞힌 것이었다.

그 소동 끝에 만난 여자 원정혜(32). 상냥한 그녀가 덜렁대는 건 그녀 탓만도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다이어트법 때문에 몸이 두 쪽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진 탓이 크다.

체육학 박사이자 고려대 스포츠과학연구소 부설 운동처방실의 비만클리닉 선임연구원. 그녀를 만나려 한 것도 바로 그녀의 독특한 다이어트법 때문이었다.

휴전도 종전도 없는 현대인들의 `살과의 전쟁'. 이 치열한 전쟁판에 뛰어든 원씨의 다이어트법은 시작부터가 엉뚱하다. 마음 독하게 먹으라고 독려하긴 커녕 `빨리 백기를 들라'고 채근이다. 뚱보가 되란 얘기는 물론 아니다. 살을 빼겠다는 욕심을 버려야만 살이 빠진다는, 이상한 역설. 맞는 것도 같고, 궤변같기도 한 원씨의 이야기는 이렇다.


운동·식이요법에 심리요법으로 프로그램 구성

“살을 빼겠다고 악을 쓰면 쓸수록 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살을 빼고 싶은 욕심이 클수록 더 굶어야겠다는 욕심, 더 먹고 싶은 욕심도 반사적으로 더 커지거든요. 그러니 잠시 살빼기에 성공했다가도 결국 더 심한 요요현상 때문에 다시 체중이 불어날 수 밖에 없죠. 듣기엔 의아하겠지만 살을 빼야겠다는 욕심을 버려야만 비로소 살이 빠집니다.”

욕심을 끊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원씨가 추천하는 건 명상과 요가다.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은 물론 심신의 건강을 고루 도울 수 있어 그녀가 오랫동안 애용해 온 수련법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시술한 사람들에게서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원씨의 비만클리닉은 요가와 명상을 바탕으로 재즈댄스와 에어로빅, 웨이트트레이닝 등 운동요법과 적절한 식사습관을 유도하는 식이요법, 심리요법으로 프로그램을 구성, 실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한달 평균 4~5kg 감량, 빠르면 단 2주만에 5kg 감량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운동요법이나 식이요법은 기타 다이어트 관련 업체나 단체에서도 대동소이한 내용이고 보면 확실히 그녀의 `다이어트 강박증 버리기'는 유효해 보인다.

“하지만 고집이 세거나 지나치게 섬세한 성격은 잘 안 됩니다. 강박관념을 버리기가 그만큼 어렵거든요. 반대로 느긋하고,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 특히 저같이 멍청한 사람일수록 효과가 빨리 나타납니다(웃음).

변화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한결 유연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2년 반만에 20여kg을 감량한, 기록적인 성공모델이 있다. 바로 원씨 자신이다. 이 역설의 다이어트법이 화제로 떠오른 것도 다름아닌 그녀의 성공담이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키 167cm, 현재 체중 약 54kg인 그녀가 불과 몇 년전까지도 78kg의 덩치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30세 이후 50kg대의 매력적인 몸매를 갖기까지 그녀의 생활은 삶 자체가 기나긴 비만과의 전투사였다.


`뚱뚱한' 발레 리듬체조 선수로 `유명세'

5세때부터 발레를 시작,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리듬체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시절엔 재즈댄스와 에어로빅, 현대무용 등 거의 모든 신체 움직임을 배웠고, 숙명여대 체육학 학, 석사를 거쳐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재원이다.

체중이 불어난 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특히 리듬체조선수로 활동한 그녀로선 더욱 더 괴로운 핸디캡이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어머니는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시기 일쑤. 단식원이나 원푸드 다이어트 등 항간에 효과가 있다는 다이어트법은 모두 시도했지만 번번이 수포였다.

사진을 찍으면 살집 때문에 온 볼이 부어보였고, 가방안에는 항상 새로 나온 다이어트 식품이나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운동량이 적지도 않은데, 도무지 이상한 일이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새벽 7시에 시작해 적으면 하루 평균 6시간, 방학 때는 14시간씩 심한 운동을 하는데도 체중이 줄기는커녕 나날이 체중계 바늘이 올라갔다. 지켜보던 친구들마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친구들 셋 이상만 모여도 쭈뼛거려지고 말문이 닫히는, 수줍음 많은 아이였다. 그래도 비만한 친구들이 흔히 겪는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은 건 행운이었다. 뭣보다 `내 딸 잘한다'며 당신 딸을 최고로 추켜올려주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뚱뚱하긴 했지만 자신감만은 늘 있었다.

다들 `저렇게 살 찐 리듬체조 선수도 다 있냐'고 수군거릴 때도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좀처럼 살이 빠지지 않는 그녀로선 차라리 살빼기보다 그것이 더 쉬웠다.

실제로 그녀는 대학시절부터 꽤 `잘 나가는' 학생이었다. 대학생 신분에 초, 중고등학생들의 리듬체조 코치 활동은 물론, 대학강의도 나간적이 있다. 리듬체조 선수들 중에서도 발레로 기본을 다진 독특한 강점과 남다른 실력으로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한동안 리듬체조 심판으로도 활동했다. 대학원 졸업후 본업이 된 시간강사 생활은 지금까지도 연속, 많을 땐 한달 수입 약 350만원에 이를 만큼 상종가의 인기강사다.

요즘도 10여년째 연세대와 고려대, 숙대, 기타 운동센터 등 하루 서너군데씩 뛰어다녀야 하는 바쁜 생활, 하루 네시간 수면에 새벽 4시에 별을 보며 집을 나와 밤 10시 별을 보며 귀가한다.

살이 쪘다고 몸이 튼튼한 건 아니다. 계속된 다이어트에다 심한 운동으로 간과 대장 등 모든 신체 기능이 엉망이었다. 선수생활에서 얻은 부상도 있다. 연습중 헛짚는 바람에 양쪽 가운데 손가락 두 개는 지금도 휘어진 모양. 왼쪽 다리를 머리까지 1자로 올려 붙이던 주특기는 고질적인 왼쪽 허리통증을 남겨주었다.

인생의 일대 변화를 맞은 것은 박사과정에 들 무렵이었다.

당시 고려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그녀는 막다른 골목까지 심신이 지쳐 있었다. 대학 때부터 친구들과 잡담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미팅 한번, 데이트 한번 하지 않고 혼자 공부만 했던 극성학구파.

그 때문에 친구들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아가며 달려온 길 끝에서 갑자기 많은 갈등에 부딪쳤다. 진로에 대한 회의와 함께 사람들이 모두 싫어졌다. 어느날 모든 연락을 다 끊어버린 채 해인사의 한 암자로 틀어박혀 버렸다. 명분은 박사논문을 쓰겠다는 것이었지만 뭣보다 세상에서 멀찍이 달아나고 싶었다.


암자에서 명상 요가수련, 거짓말처럼 체중 줄어

세상이 싫은 마당에 살이 빠지든 말든 다이어트는 관심밖이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 1,080배는 기본, 여력이 되면 3.000배도 수시로 올렸다. 종일 하는 일이라곤 그렇게 명상과 요가, 그리고 논문을 쓰는 것 뿐이었다.

가까스로 마음이 정리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왜 그리 살이 빠졌냐” 며 놀랐다. 달라진 것이라곤 명상과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는 것 뿐. 오히려 다이어트를 포기한 다음의 일이었다.

예전과 같은 생활이 다시 시작됐지만 그렇게 말을 듣지 않던 체중이 거짓말처럼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다. 2년여만에 50kg대로 곤두박질, 70kg의 거구 원정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살이 빠져서 제일 좋았던 거요? 남들처럼 시장에서 아무 옷이나 사입을 수 있는 거. 뚱뚱할 땐 사이즈때문에 불가능했거든요. 성격도 훨씬 명랑해졌어요. 전보다 말도 더 많아졌고, 사실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요즘은 모두 재미있어요.

지금처럼 인터뷰를 하면서 몰랐던 사람과 새롭게 만나 얘기하는 것도 즐겁고, 얼마 뒤면 책도 하나 낼거거든요. 신기한 건 다이어트뿐 아니라 뭐든 욕심이나 집착을 버린 뒤부터 그것들이 오히려 다가오더란 거예요.

책 문제도 그저 속으로만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하고 지나간 건데 어느날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여러 출판사에서 제의가 쏟아지더라구요. 명상이랑 요가를 만능으로 생각하진 않지만, 마음이란 건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도 워낙 바쁜 생활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지만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것도 다 요가와 명상 덕분이예요. “


클리닉 수입 전액이 후배들 학비

비만클리닉은 여러모로 그녀에게 의미가 있다. 심장전문의이면서 체육학과 교수인 김성수 소장은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이 클리닉을 제안했을 때 두말없이 믿고 지원해주었다.

여타 비만클리닉과는 달리 직접 시술뿐 아니라 피시술자들이 평생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이론과 방법 자체를 다 공개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

시술비도 비교적 저렴하지만, 그중 원씨가 갖는 수입이란 것은 전혀 없다. 첫 목적부터가 그랬듯이, 후배 석,박사들의 학비를 대는데 수익의 전액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머니엔 한 푼 도움도 되지 않는 일에 그녀는 신이 나서 쫓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엔 `꽃돼지'가 별명이었던 그녀는 이젠 제자들 사이에 `깡패'나 `점쟁이' , `할머니'로 통한다. 외양이나 말솜씨는 영낙없는 `날라리'과지만 여차하면 남학생 엉덩이도 스스럼없이 걷어차는가 하면 `술, 담배를 하지 말아라. 절제된 이성교제를 하라'는 등 할머니형 훈시도 빠뜨리지 않는 씩씩한 선생님이다.

그래도 그녀의 열강은 언제나 인기만점. 4년 내내 그녀의 강의를 들으러 오는 학생도 있고, 아직 결혼도 안 한 새파란 그녀 앞에 졸업후 자녀까지 이끌고 찾아오는 제자들의 인사도 그녀의 일락(一樂)중 하나다. 학기가 지날수록 학생들은 뽀얗게 살이 오르는 반면, 가르치는 원씨는 과로로 링거까지 맞는 날도 있다.

덜렁댄다고는 하지만, 한번 하겠다고 하면 그처럼 집요한 `깡순이'도 없다. 인터뷰땐 기분좋게 다 털어놓더니 헤어질 즈음엔 너무 많이 얘기했다 싶은지 일부 얘기는 `물르자'고 떼를 썼다.

그러겠다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5분 간격으로 몇 차례나 다짐을 받아가는 원씨. 헤어진 날 저녁 몇 가지 자료를 이메일로 받을 것이 있었는데, 그녀의 첫 인상만큼이나 따뜻한 편지 끝엔 또 한마디 구절이 낯에 익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정말 안 쓰실거죠? 그러실거죠?'”

정영주 자유기고가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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