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위 댄스] 춤바람(?)난 사회

음지에서 양지로, 대중속으로 파고든 춤

가정주부 박정숙(52·가명)씨는 요즘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가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으레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을 가게 마련인데 여기서 남편과 함께 멋진 춤솜씨를 보여주면 이내 그날의 히로인이 돼버린다.

올초부터 시작한 춤 교습 덕택에 박씨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고 예전 한때 박씨를 괴롭했던 갱년기 우울증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얼마 전부터는 박씨의 친구들도 하나둘씩 남편의 손을 이끌고 문화센터로 달려가 춤을 배운 덕에 이제 동창회 모임이 열리는 날은 예외 없이 춤 파티가 벌어진다.

남편과 함께 춤을 추다 보니 금슬도 더욱 좋아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생겼다. 박씨의 춤 예찬론 때문에 두 자녀도 만만치 않은 춤 솜씨를 뽐낸다.

인문학 박사 과정에 있는 큰 딸은 재즈 댄스에 있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대학 4학년인 막내 아들은 힙합과 테크노의 대가다. 불과 1년새 박씨 가족은 댄스 패밀리가 돼 버렸다.


춤은 아름다운 육체 언어

`댄스, 댄스, 댄스.'

대중 속으로 춤이 급속히 파고 들고 있다. TV를 켜면 예외없이 댄스 가수의 현란한 율동이 나오고, 재즈 강습 학원과 각종 문화센터는 춤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심지어는 댄스 스포츠 전공으로 대학 진출을 꿈꾸는 학생까지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사회가 춤바람(?)이 난듯하다.

춤은 인간의 육체가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춤에는 리듬이 담겨 있고 감정과 정서가 녹아 있다. 현재의 발레, 현대무용, 볼룸 댄스 같은 춤은 모두 유럽 왕실과 귀족에 의해 시작됐을 정도로 춤은 고급 사교와 쾌락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은 음성적, 퇴폐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국내에 서구 유럽의 춤이 처음 들어온 때는 구한말 때. 당시 일본 황실에서 유행하던 사교춤이 고급 관료나 일본 유학생을 통해 조금씩 전해졌다.

구한말 왕실 주변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오던 서양 춤은 이후 일제 강점이 시작되면서 음성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6·25 전쟁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미군부대 주변 클럽을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면서 춤은 더욱 음습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런 태생 때문에 우리의 사교춤은 아줌마 아저씨의 `춤바람' 등과 같은 저급한 이미지로 남게 됐다.

이런 춤이 최근 들어 대중의 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음지가 아닌 건전한 양지로 몰려오고 있다.

특히 예전의 폐쇄적 성향에서 탈피해 개별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세분화한 형태로 들어오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춤은 크게 발레, 현대무용, 재즈, 민속춤 등을 망라한 정통 클래식 댄스와 스포츠댄스, 사교춤을 포함한 볼룸 댄스, 그리고 고고 디스코 테크노 같이 일반 대중에게 잠시 유행했던 패션 댄스(엔조이 댄스 또는 레크레이션 댄스라고도 함)로 나눌 수 있다.

정통 클래식 댄스는 주로 학교나 문화ㆍ예술단체에 의해 학술적으로 이어져 왔고 볼룸 댄스는 카바레나 무도장 술집 같은 퇴폐적 방향으로 발달했다. 또 패션 댄스는 TV를 통해 상업적인 면으로 이용돼 왔다. 춤마다 세대간에 뚜렷하게 구분이 존재했었으며 상호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세대 벽 허물어지다

하지만 최근 춤의 대중화의 특징은 이런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년의 전용물이었던 볼룸 댄스를 하는 10대와 20대들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재즈 댄스를 하는 60대 중년의 모습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진다.

서울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포즈 댄스 씨어터. 빠른 재즈 리듬에 귀청을 때리는 플로어에서 50대의 아주머니와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열심히 몸을 흔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녀 사이. 어머니 정영선(53·가명)씨가 두달 전부터 딸의 손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한시간여씩 모던 재즈를 배우고 있다.

“50대의 나이에 젊은이들과 어울려 춤을 배우려고 하니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딸을 함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힘들고 창피했지만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할 것 같아 용단을 내렸지요.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젊어지는 것같아 너무 좋습니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이곳에는 무용과를 지망하는 10대 고교생에서부터 뮤지컬 단체나 무용단에서 들어가려는 지망생, 패션 모델, 탤런트 그리고 건강과 취미를 위해 운동하는 중년남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단계별로 춤을 배운다.

포즈 댄스 씨어터의 김준규 감독은 “보는 것에 만족했던 사람이 3년 전부터 직접 체험하려는 식으로 춤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춤을 배우려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재즈에서 힙합, 스포츠댄스 사교댄스 등 배우려는 춤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연령이나 세대간의 장벽도 점차 무너지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춤바람 부추기는 요소 많아져

춤이 대중화하는데 TV등 언론 매체와 언론사 백화점 그리고 각 구청이 운영하는 문화센터가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올해 초 히트했던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도 춤바람에 불을 붙이는 화약고 역할을 했다. 가정과 직장 밖에 모르는 한 중년 신사가 젊은 무용가의 모습에 반해 춤을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춤의 매력에 빠지는 내용인 이 영화는 국내에 히트해 중년의 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 1998년 8월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스포츠댄스는 훌륭한 체육 종목의 하나”라는 선언을 하면서 국내에서 사교춤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변 분위기가 호전되면서 춤을 배우려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다.

일반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각 구청과 언론사, 백화점 등이 운영하는 문화센터.

이곳에서는 주로 요즘 유행하는 댄스 스포츠와 사교춤을 가르친다. 수강료는 6주 코스가 대략 10만원선. 3개월 가량을 배우면 기초과정을 끝낼 수 있다. 좀더 빠른 시간 내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사설 교습소를 찾으면 된다.

신당동과 영등포 청량리 수유리 등에 많이 밀집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일대일 개별 레슨을 해주기 때문에 빨리 스탭을 익힐 수 있다. 스포츠 댄스는 월 50만원, 블루스나 지루박 같은 사교 댄스는 40만원을 받는다.

사설 교습소는 보통 2~3명의 여성 강사들이 일대일로 레슨을 한다. 자칫 불법 교습소를 가게 되면 레슨 보다는 영업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가급적 레슨만 하는 교습소를 찾아야 한다. 대개 일일 입장료를 받거나 손님이 많은 곳은 불법 교습소다. 3개월 정도 기초과정을 익히면 사적인 자리에 가서도 멋진 사교춤을 출 수 있다.


연령층에 맞는 다양한 장르

댄스 스포츠가 최근 30대 이상 중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반면 20대 젊은이에겐 재즈나 살사 테크노, 10대에겐 힙합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재즈는 아마추어의 경우 서울재즈 아카데미나 역삼동의 DFA, 전문적인 춤을 배우고자 하면 포즈 댄스 씨어터, SFA, 전미례 재즈 아카데미 등에서 강습을 받으면 된다. 수강료는 한달에 대략 8만원 수준으로 비교적 저렴하다. 동작이 크고 격렬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원하는 남녀 젊은이들로 만원을 이룬다.

라틴계 춤인 살사는 최근 국내외에서 테크노를 제치고 급부상하는 춤이다. 카리브해 연안의 쿠바, 도미니카와 남미 사람에게 생활화한 살사는 1997년 국내에 연수온 페루 산업 연수생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수돼 지금은 엄청난 동호인을 확보하고 있다.

살사는 대부분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데 현재 10여개의 거대 동아리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라틴 속으로'라는 살사 동호회는 회원이 무려 3,600명에 달한다. 살사를 추는 곳은 홍대 앞이나 압구정동 대학로 강남역 선릉역 외대 앞에 있는 살사바를 이용한다. 살사바는 주말이면 100명이 넘는 살사 동호인들로 발 디딜 틈 조차 없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홍대앞 살사바 바히야의 이인수(47) 사장은 “지난해 여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살사 열기가 최근엔 네티즌 동호인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다. 살사는 최근 유행하는 10대 춤과 달리 20대에서 50대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동호인 계층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라며 “현재 국내에만 2만명에 달하는 동호인이 있는데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이제 춤의 대중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음치가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 된 것처럼 조만간 댄스포비아(춤 공포증)도 문제가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가벼운 스탭 하나쯤은 배워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15:1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