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의 분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분수령”

■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김금수(63)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전태일의 분신은 민주적 노동조합 시대를 연 분수령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김 이사장은 아울러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과 노동자 억압체제는 지금까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1984년 출범한 `전태일 기념 사업회'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인간 전태일을 어떻게 평가하나.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남긴 일기 등을 보면 굉장히 순결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전태일에게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의 사랑은 자본주의 억압관계에서 피억압자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다. 노동자로서의 전태일은 당시로선 매우 선진적이고 뛰어난 노동운동가였다. 노동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의식화하고 모순에 대결과 대항을 선언한 변혁주의자였다.”

-전태일 분신의 역사적 의의는.

“그의 분신은 우발적이 아니라 유일한 현실타파 방식으로 1년전부터 의도해 결행된 것이다. 그의 분신은 민주적 노조 결성의 촉발제 기능을 했다. 장례식 3일 후 결성된 청계피복노조를 시작으로 민주적 노조가 속속 출범했다.

1970년대 노조 결성을 둘러싼 파업을 비롯한 각종 파업이 본격화, 조직화, 대형화하는 데 있어 그의 죽음은 분수령을 이룬다. 이때부터 파업의 성격도 체불ㆍ체임 항의에서 부당해고, 노동3권 보장 요구 등으로 이슈가 변화했다.”

-전태일의 분신을 낳은 당시의 정치ㆍ경제구조와 오늘날의 구조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은 한국이 대외의존적 경제발전을 본격화하던 시기다. 해외자본과 국내 저임금 노동을 결합시켜 그 생산품을 수출하는 경제구조였다.

대외종속적이고 국가주도적인 당시 자본주의 체제는 정경유착과 재벌독점을 낳았다. 이같은 구조에서 저임금 정책과 이를 위한 노동기본권 억압은 필연적이었다. 지금도 본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DJ의 시장경제 정책도 독점적 경제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1960~1970년대 저임금, 착취구조와 현재 경제위기의 상관관계는.

“저임금 착취구조에 기반해 기술개발을 등한시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이 IMF체제와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불렀다. 대외종속성이 과거보다 오히려 심화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크게 떨어지고 안팎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됐다.”

-DJ의 경제정책, 특히 노동정책은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신자유주의 노선에 기반을 둔 DJ의 노동정책은 사사건건 노동계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대선 당시 노동계가 `차선의 선택'으로 그를 지지했지만 매우 실망스럽다. DJ가 주장하는 `신노사문화'는 노사협력만 강조하고, 노조의 참여를 배제하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노사협력이 가능한 인프라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신노사문화는 마치 유신시대의 `공장 새마을운동'을 보는 느낌이다. `생산적 복지'도 이해가 안된다. 복지면 복지지, 생산적 복지는 뭐냐. 사회보장과 기업복지, 노동자 자주복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IMF체제를 거치며 노동자 복지는 크게 후퇴했다.”

-전태일 기념사업회의 앞으로 사업방향은.

“지금까지 해마다 전태일 노동상과 문화행사 등을 펼쳤고 노동자료실 운영 및 노동교육을 해왔다. 앞으로 소외된 미조직 노동층의 조직화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하지만 40여명의 이사들이 내는 후원금과 문화행사 등 수익금으로는 재정적으로 역부족이다. 직원들 임금도 못주는 판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16:3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