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32)] 파칭코(パチンコ)①

`파칭코'(パチンコ)는 일본 최대의 레저산업이자 사실상의 공인 도박이다. 전국에 있는 약 2만개의 파칭코점에 400여만대의 기계가 돌아가고 있고 기계 생산, 유통을 합친 시장 규모가 22조엔에 이른다. 자동차 산업과 맞먹은 거대 시장을 2,000만명의 파칭코팬이 떠받치고 있다.

파칭코는 기계와 벌이는 쇠구슬 따먹기 게임이다. 현금이나 프리페이드(Prepayed) 카드를 기계에 넣어 쇠구슬을 산다.

핸들을 조작해 쏘아보낸 쇠구슬이 스타터(Starter)에 들어가면 고아타리(小當り)가 돼 5개의 쇠구슬을 뱉아내는 동시에 3열로 배열된 15종의 숫자나 무늬판이 움직여 추첨에 들어간다. 표준형 기종은 쇠구슬이 10~15개에 하나꼴로 스타터에 들어간다.

추첨 도중 두개의 숫자ㆍ무늬가 일치하면 당첨이 기대되는 리치(Reach)에 이르고 나머지 하나가 일치하면 오아타리(大當り)가 된다. 이론상 리치와 오아타리의 확률은 각각 15분의1, 225분의1이다.

오아타리가 되면 널찍한 어태커(Attacker)가 열리고 여기에 구슬이 들어갈 때마다 15개의 구슬이 나온다. 어태커는 구슬이 10개 들어가면 닫히고 16회 개폐를 반복하기 때문에 약 2,400개의 구슬을 딸 수 있다. 최근에는 어태커의 개폐를 15회로 줄인 기종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딴 쇠구슬을 경품과 바꾼다. 쇠구슬을 살 때는 전국 어디서나 500엔에 125개, 즉 4엔씩이지만 팔 때는 2.5엔에서 등가교환인 4엔까지 다양하다. 과자나 담배, 음료수에서부터 전자 제품과 고급 브랜드의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품이 준비돼있다.

또 1,000엔, 2,500엔 어치의 금줄이나 금화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딱지도 갖춰져 있다. 이 플라스틱 딱지를 파칭코점 근처의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바꾼다. 경품의 90%가 현금이고 교환소를 파칭코점이 운영한다. 파칭코점에서 현금을 내주지만 않으면 도박금지라는 형식 논리는 충족된다는 편법적 발상이다.

현재의 파칭코는 오랜 `진화'의 결과다. 1920년대에 처음 등장한 수평식 파칭코는 핀볼(Pin-ball)과 비슷했다. 쇠구슬을 튕겨 정해진 구멍에 넣으면 경품을 받는 놀이였으며 구멍가게나 행상인이 아이들을 상대로 사탕이나 과자를 경품으로 주는 것이었다.

2차대전 직후 나고야(名古屋)에서 수직형 기계가 개발돼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 등에 파칭코점이 들어서면서 파칭코 산업이 싹텄다. 1950년에는 쇠구슬이 `꽝 구멍'이외의 구멍에 들어가기만 하면 20개의 쇠구슬이 나오는 `올(All) 20'이라는 기종이 나와 파칭코붐을 일으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칭코 기계는 쇠구슬을 일일이 손으로 집어넣고 손잡이를 당겼다가 놓아 쇠구슬을 쏘는 수동식이었다. 새총을 뜻하는 `파칭코'라는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쇠구슬을 잇달아 쏘는 연발식이나 모터를 이용, 핸들만 잡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구슬을 튕겨 주는 전동식이 잇달아 개발됐다. 1960년에는 쇠구슬이 `안전 구멍'에 들어가면 기계 중앙 아래쪽에 붙은 튤립 꽃입 모양의 받침이 양쪽으로 벌어져 구슬을 받아 들이고 10배를 내보내는 튤립식이 나왔다.

1980년에 나온 `디지파치'(Digital Pachinko의 일본식 약어)는 파칭코의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그때까지 파칭코는 안전 구멍에 쇠구슬을 넣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디지파치는 이를 추첨 자격을 얻는 기본 절차로 바꾸었다.

쇠구슬이 제대로 구멍에 들어가면 3열의 슬롯 머신풍 드럼이나 숫자판(디지털)이 돌아가다가 정지하는 추첨이 시작된다. 동일한 숫자나 그림이 수평 또는 빗금으로 정렬하면 오아타리가 되고 어태커가 열리는 방식으로 이는 지금도 파칭코의 기본형이 돼 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피버'(Fever) 기종이 등장, 사행심에 불을 질렀다. 특정 무늬ㆍ숫자로 당첨되면 추가로 2회의 당첨이 보장되고 그 사이에 다시 그런 숫자ㆍ그림으로 당첨되면 계속 당첨 횟수가 연장된다.

이때는 드럼이나 숫자판의 회전이 빨라지는 시간단축 기능, 당첨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확률변동 기능이 동시에 작동한다. 튤립이 수시로 열려 구슬이 들어갈 때마다 5배로 뱉아내기 때문에 구슬의 낭비도 없다.

1990년대 중반에 프리페이드 카드를 이용한 `CR'(Card-Reading)기종의 등장으로 파칭코의 도박성은 더욱 커졌다.

숫자ㆍ그림의 종류를 15종에서 14종으로 줄이는 대신 절반을 다음 당첨을 보장하는 고확률 무늬ㆍ숫자로 배치했다. 연속 당첨을 감안, 당첨 확률은 330~380분의1 정도로 낮아졌지만 동시에 대박의 가능성도 커졌다. (계속)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0/11/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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