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할로윈 데이

미국 가정에서는 대개 아이들을 일찍 재운다. 대부분 부모는 저녁 8시가 되면 아이들을 침대에 누이고 잠들 때까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새로 나온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일과다.

고학년에 올라가면 새벽 6시께 학교 버스를 타야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그야말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로 키우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취침시간에도 예외는 있다. 그 예외 중에서 1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것이 `Trick or Treating'이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아이들은 온갖 형상의 가면과 복장을 하고 바구니 하나를 들고서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문을 두드리고는 “Trick or treat!”하고 외친다. 그러면 집집마다 문을 열고 미리 준비한 사탕이나 과자 등을 한줌씩 집어 바구니에 넣어주면서 던지는 한마디, “Happy Halloween!”.

할로윈 데이는 매년 10월31일이다. 대개 몇번째 무슨 요일 하는 식의 일반적인 미국의 휴일이나 명절과는 달리 요일에 상관없이 매년 10월31일로 정해진 것을 보면 어떤 종교적 유래가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뜻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처럼 기독교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는 고대 켈트족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그들에게는 11월1일이 새해의 첫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날인 10월31일은 한해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여름이 끝나는 날인 것이었다.

따라서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화톳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원을 그리며 돌면서 겨울이 되면서 사라지는 태양을 기리는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아울러 1년의 마지막 날인 이때 산 자와 죽은 자의 세상을 갈라놓는 장막이 가장 엷어지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자의 세상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마귀와 귀신으로 분장한 아이들은 각 집을 돌면서 “Trick or treat!”(말하자면 `마귀인 나를 잘 대접할래 아니면 한번 마귀의 쓴 맛을 한번 볼래”라는 뜻)하고 외치면 겁에 질린 주인 아줌마는 예쁘게 장식한 과자와 사탕을 주어 마귀들을 달래어 보내는 것이다.

할로윈 데이와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 바로 호박으로 만든 `Jack O'Lantern'이다. 잘 익은 누런 호박을 사다가 뚜껑을 따고 속을 파낸 다음 무서운 형상의 얼굴을 새긴 후에 안에다 촛불을 켜놓는 것이다. 악마를 골려준 잭(Jack)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었다기도 하고, 그렇게 만든 호박 등을 집 앞에 켜놓으면 악마가 해꼬지를 안 한다고 하기도 한다.

할로윈 데이는 미국에서 상당히 큰 잔치다. 어린아이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성인들도 이를 즐긴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파티 순위 세번째라고 한다. 아마도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다음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Pokemon'이나 `Digimon'과 같은, 새로 나온 만화 또는 영화 주인공으로 분장할 수 있는 복장을 아이들에게 사주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고,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연회장이나 바를 예약하느라 분주하다.

파티가 많고 게다가 분장이 허용되다 보니 범죄 또한 같이 증가한다. 명절 분장 복장인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권총 들고 복면한 강도였다는 사건이 1년중 이즈음 종종 일어난다.

지난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옆집의 할로윈 파티 때문에 너무 소란스럽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손님으로 온 한 흑인 배우가 장난감 권총을 들고 겨냥하는 것을 총으로 쏘아 사망케 한 사건도 있었다. 아마도 숨진 그 배우는 출동한 경찰관도 분장을 한 파티 손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할로윈 파티로 인한 사건 사고나 많아지자 원래부터 `악마의 행사'라고 해서 이를 경계하던 기독교계에서는 신도들에게 할로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화한 할로윈 풍습은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할로윈 데이에 대해 전혀 모르던 이태리에서 금년에는 주교가 직접 나서서 우려를 표시할 정도로 할로윈 행사가 이태리 국민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 한다. 또하나의 미국발 세계화 과정인 것 같은데, 악마의 제전도 미국발이라면 무조건 유행인 것 같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11/0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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