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본인방 '대하드라마' 3부작 개막

사실 야마시로는 일본판 도전 5강으로 불리는 다크호스. 단 한차례도 타이틀을 가져보지 못한 불운아였지만 가장 정상에 근접했던 수재였다.

1992년 고바야시의 아성에 도전하여 3:4로 분패했지만 만약 그때 그가 도전자 결정전에서 조치훈을 꺾은 기세로 고바야시를 꺾었다면 그는 당당히 1인자가 되고 남음이 있었다.

야마시로는 나중에 조치훈과 고바야시 간의 본인방 대 전쟁을 마친 후 다시금 조치훈에게 본인방까지 도전하지만 또다시 패퇴하여 결국은 오늘날까지 타이틀과는 운때가 맞지 않게 된다.

그런 걸 보면 기세를 탈 때 얼마까지 올라가느냐가 정상과 평범한 기사간의 바로미터가 된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인가!

가토 마사오는 더욱 더 불행한 인물이다. 가토는 기다니 도장 출신인 조치훈이나 고바야시의 사문 선배. 그런 그도 한때 일본 바둑계를 거의 돌주먹으로 휘어잡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조치훈이 이미 기록한 `대삼관'을 고바야시보다도 먼저 노리는 입장이었으나 유독 1인자 기성을 따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91년과 93년 가토 마사오는 두차례나 고바야시에게 도전한다. 그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철권으로 두차례 대결 중 한번만 이겼더라도 `메이드인 저팬'은 당연히 고바야시가 아닌 가토 마사오로 귀결되었을 지 모른다. 그는 이미 일본의 7대 타이틀 중 2위부터 7위까지는 전부 섭렵한 바 있는 포식가였으니까. 그런데 그가 고바야시에게 도전한 기성전 두 번을 모조리 3:4로 패했으니 그 억울함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역사를 `만약'이란 잣대로 평가한다면 역시 만화가 되고 말 것이다. 바로 그 백지 한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천길나락으로 떨어진 예가 어찌 그들 뿐이겠는가. 여기 소개하는 고바야시는 더욱 분한 사람이니 말이다.

금방 또 일년을 보내버리고 92년 본인방전이 시작된다. 또 고바야시가 올라온다. 이런 걸 보면 고바야시는 운도 좋은 사람이다.

사실 그 당시의 객관적 평가로는 조치훈보다 고바야시가 더 강했다고 해야 한다. 고바야시는 조치훈에게 이렇게 도전해 오지만 조치훈은 무려 8년동안 기성전으로 고바야시를 찾아가지 못했다.

“조선생은 강합니다. 그 강한 조선생을 산산조각 내겠습니다. 지금부터 그 전의가 불타 오릅니다”

고바야시는 1년전 그러니까, 2승 후 4연패를 당한 후 뱉은 일성이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리그 전적 6승1패로 2위 4승3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성적으로 또 조치훈을 찾아온다. 무려 3년 연속이다.

그 때도 조치훈의 우세를 확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조치훈 스스로도 그랬는지 모른다. “고바야시 선생이 만들어준 대하드라마, 3부작은 올해가 완결편이 되겠지요.”

조치훈은 또다시 무시무시한 예언을 한다. 3부작의 완결편이라! 그럼 또 이긴다는 것인가. 아님, 이번엔 자신이 진다는 뜻인가. 그 뒷끝에 묘한 뉘앙스가 붙었지만 완결편이란 점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으니 그도 엄연한 예언가임에 분명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극적인 흥분과 더불어 대하 드라마의 막은 오른다. 제1국. 역시 불꽃이 일었다. 흑을 든 고바야시는 대각선 화점바둑으로, 조치훈은 그 답지않게 외목을 또 하나 갖다 놓았다.

대각선 포석은 이른바 전투형이고, 외목 또한 변화가 난무한 수법. 두사람은 제1국이면서도 마치 더 이상 눈치를 볼 것 없다는 투로 바로 전의를 불태웠다.<계속>


<뉴스와 화제>



ㆍ 이창호 단일기전 15연승 질주

이창호가 또 하나의 기록행진을 펼치고 있다. 이창호는 지난주 벌어진 패왕전 본선 연승전에서 김찬우 2단을 가볍게 물리치고 연승전 예선 2연승을 포함, 무려 15연승을 기록중이다.

단일기전에서 한시즌 최고기록은 서봉수가 1972년 세운 12연승이며, 이창호는 앞으로 패왕전에서 6판을 남겨두고 잇는데, 마지막 주자 조훈현과의 승부가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될 소지가 높다.


ㆍ 형제대국 형의 승리로 끝나

역시 형 만한 아우가 없다? 이상훈 3단은 동생 이세돌 3단과의 형제대국에서 2:1로 동생을 꺾고 신예 타이틀 2관왕에 올랐다. 11월1일 벌어진 `신예10걸'전 결승 3국에서 형은 최근 각종 결승에 진출해 집중력이 흐트러진 동생 이세돌을 꺾고 `신예10걸'전을 우승했다.

이로써 이상훈 3단은 올해 벌어진 두 개의 신인타이틀전에서 모두 우승하여 올해 최고의 신인으로 떠올랐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11/0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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