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여자를 벗긴다

인터넷 성인방송, 작가의 주류세력은 여성

여자가 여자를 벗기는 시대가 됐다.

노골적 성표현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인 인터넷 방송. 섹스와 관련된 컨텐츠에 많이 노출된 남성이라면 몰라도 보통의 한국 여인네라면 차마 눈뜨고 못 볼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성인 인터넷 방송의 작가 중에 다수의 여자들이 포진해 있어 여성의 직업세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직업세계에서 여자에 대한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요즘 성인방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 성인 인터넷 방송국 스튜디오의 촬영현장. 인터넷 자키(IJ)로 불리는 에로틱한 프로그램의 진행자에게 제작진의 질책이 쏟아진다.

“그룹섹스보다는 스와핑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해야지!”, “자위 횟수를 물어 보잖아, 어서 대답해야지!” 등 듣기에도 민망할 만큼 노골적이다. 그런데 이런 걸쭉한 입담의 주인공이 여자다. 이 방송국의 작가가 여자다.

이렇듯 `여자를 벗기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윤락소를 털어라> <자유학원> 시리즈 등 12편의 에로영화에 출연했던 홍지연씨(25)가 감독으로 데뷔, 최초로 인터넷 에로영화 <가시나無>와 100부작 미니시리즈 <초련>을 제작해 16mm 에로영화계에서 최초로 `여자를 벗기는 여자'가 됐지만 전체 16mm영화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인 인터넷 방송의 여자작가들은 작자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어엿한 주류세력. 대표적으로 엔터채널의 3명중 2명, OIOTV의 2명중 1명, 몰카TV의 3명중 2명이 여성작가다.

아직은 일반인에게 생경한 이들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자. 여성작가들의 전직은 통신에서 성인물을 써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장르의 방송국에서 작가 활동을 했던 사람이 있는 등 다양하지만 대부분 전부터 글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여성이라는 점이 특이할 뿐 하는 일은 이곳의 남성작가들과 차이가 없다.

이들은 아이템 발굴을 위해 여자들이 쉽게 접하지 않는 성인 인터넷 사이트나 포르노 영화를 참고할 뿐 아니라 위해 미아리 텍사스나 이태원 게이바 등지로의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다.

진한 성적 대화가 오가는 채팅방도 이들의 좋은 아이템 발굴 장소. 한 여성 작가는 “카섹스에 대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채팅방에서 여러 질문을 던지던 중 변태로 낙인찍히기도 했다”며 “여자로서 다른 여성들로부터 이상한 취급을 받을 때는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고 푸념이다.


여자만의 장점이 있다

성인방송의 유저들이 대부분 남자인 만큼 남자의 심리는 남자들이 잘 알기 마련. 이에 대해 대부분의 여자작가들도 동의한다.

OIOTV의 작가 조현미씨(28)는 “남자를 상대하는 방송인 만큼 여자라 그런지 남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데 힘이 든다”며 “여자가 생각하는 에로티시즘과 남자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커 대본을 쓰는 데 남자 작가보다 두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여자작가로서 얻는 유리함도 무시할 수 없다. 몰카TV의 작가 황인수씨(33)는 “남자 작가의 상상력은 남자들이 대부분인 유저들과의 차이점이 별로 없어 새로운 것을 원하는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며 “남자들은 여성이 이럴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모르는 여자의 세계를 건드릴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얘기한다.


일과 생활은 틀리다

성인방송 작가들 중 일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떳떳이 주위에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과 생활은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신이 쓰는 대본처럼 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게다가 성인방송 작가일을 하면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엔터채널의 작가 최윤경씨(22)는 “계속 성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러다 변태가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며 “여자들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진정한 여성스러움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황인수 작가 역시 “여자들이 성적인 분야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적나라한 농담의 수준은 남성 못지 않다”며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건전함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한 작가는 “퇴근하면 아예 직장에서 생각하고 말했던 모든 것을 잊는다”고 말한다. 아직은 자신의 직업이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에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친구 사이에서 노골적인 성적 농담을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어졌으며 그런 농담이 중심이 되는 대화를 주도하고 나서기도 한다.

옛날 같으면 길을 가다가 잘생긴 남자에게 눈길이 갔을 테지만 요즘은 예쁜 여자에게 눈이 더 간단다.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여자가 쓰면 뭔가 다르다

남자인 노브라TV의 최정규 작가는 “여자 작가가 만든 대본에는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지적했다.

최 작가는 “얼마 전에 나온 여자감독의 에로영화가 전에 볼 수 없었던 섬세함을 보여준 것처럼 성인방송 역시 어딘가 여성스러운 면이 묻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어쩌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 요구사항을 IJ가 매우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때에는 당황스럽다”며 “IJ와의 관계를 놓고 볼 때도 여자 작가들이 남자 작가보다 분명한 비교우위에 있다. 당연히 여자 작가들이 IJ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치혁 일간스포츠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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