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곳곳에서 탄로 난 '그럴듯한 거짓말'


『시사실』



◆ 단적비연수

논리적 전개 미흡, 극의 흐름 끊는 '티' 많아

올 하반기 최대 흥행작으로 점쳐졌던 단적비연수가 11월11일 드디어 개봉한다. 단적비연수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대박을 예감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 `흥행 귀재'로 불리는 강제규의 이름값이 크게 작용했다.

`은행나무 침대'와 지난해 최다 관객을 모은 `쉬리'를 만든 강 감독은 은행나무 침대의 속편인 이번 작품에서는 메가폰을 잡는 대신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단적비연수로 데뷔하는 박제현 감독은 강 감독과 10년 전부터 안면이 있으며 `쉬리'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었다. 여기에 이미숙, 최진실, 김석훈, 설경구, 김윤진 등 여러 명의 톱 스타가 출연, 흥행은 `떼놓은 당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단적비연수는 은행나무 침대 이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단, 적, 비, 연, 수라는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데 공간적 배경도 확실치 않고 시간적 배경은 더더욱 알 수 없다.

전편이 전생을 믿지 않는 주인공들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테리적 측면이 강했던 데 비해, 이번에는 잦은 검투씬이 등장하는 무협물에 가깝다.

또 촬영기간만 9개월에 경남 산청의 10억원 짜리 세트장과 디자이너 박윤정이 만든 600여벌의 의상을 비롯, 총 40억원의 제작비가 드는 등 규모가 훨씬 커졌다. 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수십억 겁의 인연으로 생을 거듭하며 반복되는 환상적인 사랑이다. 제작사인 ㈜강제규 필름측은 이를 `환타지 멜로'라고 부른다.

환타지는 흔히 영화 장르 중에서도 가장 만들기 어려운 분야라고 한다. 무엇보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실재인 것처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아주 그럴싸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교하고 치밀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은 허구인 영화와, 역시 허구인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 알면서도 속아넘어간다. 그렇지 못하면 “말도 안돼”라거나 “영화가 아니라 만화”라는 반응을 얻게 된다.

제작진은 “스타워즈, 터미네이터, 인디아나 존스 등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가 지닌 장점과 매력을 살려보려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적비연수는 그런 작품은 물론이고 전편만큼도 재미있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엉성한 극본과 산만한 연출.

단적비연수는 비논리와 우연에 의한 돌출적 반전이 종종 드러나 극의 흐름을 끊고 보는 이를 맥빠지게 했다.

왜 죽은 줄 알았던 단은 하필 비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 돌아오는지, 또 죽어가던 연이 왜 어떻게 갑자기 은행나무 앞에 나타나게 되는지, 부족에게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적이 왜 갑자기 동족을 죽이면서까지 비에게 매달리게 되는지 등등.

또 다섯 명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엮어내지 못하고 이사람 저사람 산만하게 쯪는 카메라는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때로 지루함마저 느끼게 했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설정의 불일치도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했다. 등장인물의 옷과 집은 선사 시대인데 비는 한참 나중에야 발명된 종이를 만든다. 주인공들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원시적 제의를 지내면서도 베낭을 지고 옷걸이를 사용하고 인사동 스타일의 도기 찻잔에 차를 마신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이런 잦은 불일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만 `옥의 티'를 찾게 했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비 역을 맡은 최진실은 미스 캐스팅이다. 최진실은 광고와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깜찍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편지' 같은 소품은 몰라도 극적이고 서사적인 비극의 여주인공은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특유의 재잘대는 듯한 말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음에도, 비가 아닌 배우 최진실만을 실감케 했다.

이런 이유로 단적비연수는 영화 속에 빠져들어 허구를 실재로 믿게 되는 `즐거운 착각'을 원하는 관객을 실망시킨다. 아무리 상상력과 감성이 영화 보기의 기본이라고 해도 논리와 정교함이 떨어진다면 마냥 즐거울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강제규 감독의 전작인 `쉬리'가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거나 또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단적비연수는 그보다 더 만화처럼 느껴질 것이다.





[공연]



ㆍ스마일맨 콘서트

젊은 개그맨들이 꾸미는 개그 콘서트. KBS 개그맨 박승대가 연출 및 주연을 맡았고 박준형, 이승환, 김기훈, 김기수 등 낯익은 얼굴들이 출연한다. 방송규제를 의식해 다분히 제한적이었던 웃음의 소재를 대폭 넓혀 관객에게 보다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12월31일까지 공연장 자유. (02)747-3066.

ㆍ어메이징 개그 콘서트

스마일맨 콘서트와 흡사한 또다른 개그 콘서트. 역시 KBS `개그 콘서트'에 출연중인 개그맨 이병진, 이태식, 임현필, 김상태 등이 꾸미는 무대다. 일상적 소재로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포부. 영화 `공동경비 구역 JSA'도 패러디한다. 게스트로는 전유성, 틴틴 파이브, 김장훈, 컬트 삼총사, 김미화 등이 나온다. 11월11일부터 연말까지 인켈 아트홀 1관. (02)402-2537

[연극]



ㆍ로라

하드코어 성인 연극을 표방한 작품.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40대의 불문과 교수가 우연히 그 여자를 닮은 10대 소녀를 만나게 되고 성적 호기심이 넘치는 그 소녀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 서로를 탐닉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VJ와 CF 모델로 활동했던 정수민이 여주인공을, 탤런트 김태종이 상대역으로 나온다. 12월20일까지 코미디 아트홀. (02)745-6670.

ㆍ교수님 계세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윤영선 교수의 창작극 `파티'를 극단 우리극장이 제목을 바꿔 무대에 올린다. 수많은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침묵과 외면, 심지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모순을 조장하기까지 하는 한국 사회의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동덕여대 김춘경 교수가 연출을 맡는다. 11월11일부터 12월10일까지 인간소극장. (02)921-4936.

ㆍ홍길동

마당놀이라는 새로운 연극 장르가 생긴지 올해로 20년. 극단 미추가 이를 기념해 허균이 지은 고전소설 홍길동을 무대에 올린다. 손진책 미추 대표가 연출을 맡았고 극작가 김지일, 국립관현악단 박범훈 단장, 무용가 국수호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홍길동 역의 김성녀 외에 윤문식, 김종엽 등 마당놀이의 간판 스타들이 출연한다. 11월17일부터 12월3일까지 장충체육관. (02)368-1515.

ㆍ맥베드, 더 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맥베드를 김동현이 새롭게 연출했다. 대사를 절제하고 다양한 시청각 이미지를 사용하여 욕망에서 파멸에 이르는 맥베드의 기존 줄거리를 다섯 개의 파티를 통해 보여준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맥베드 보다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때로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겠다는게 기획 의도. 11월16일부터 12월3일까지 학전 그린 소극장. (02)747-5161.

[영화]



ㆍ나인스 게이트

폭력과 공포를 담아내는 화면으로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조니 뎁과 프랭크 랑겔라, 레나 올린 등과 만든 미스터리 물. 냉철한 성격의 고서 감정가 딘 코소는 어느날 전세계에 세권만 남은 `어둠의 왕국과 아홉개의 문'이라는 책의 감정을 의뢰받고 이후 잇단 폭력과 살인을 목격한다.

중세 이후 악마를 부르는 기도서로 쓰였던 책에 두려움을 느끼던 코소는 미지의 힘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자신이 하는 일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11월 11일 개봉.

ㆍ리베라 메

단적비연수의 경우보다 더 많은 45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초대형 액션물. 제목인 리베라 메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지능적인 연쇄방화범(차승원)과 그를 추적하는 소방대원(최민수, 유지태, 김규리, 박상면, 이호재, 정준 등)이 벌이는 불과의 전쟁을 그 뒤에 숨어있는 각자의 사연과 함께 그린다. `유리'를 만들었던 양윤호 감독의 두번째 작품. 할리우드 못지 않은 스펙터클과 특수효과를 만들어냈다는 제작진의 자랑이다. 11월11일 개봉.

[음악회]



ㆍ김신자 독창회

이화여대 음대 교수인 메조 소프라노 김신자가 11월12일 오후 7시30분 영산아트홀에서 독창회를 연다. 토스티, 슈만, 오펜바흐 등 외국 작곡가와 김성태, 이영조, 하대응, 김동진 등 국내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려준다. 또 제자들과 함께 이수인의 `별', `고향의 노래', `꽃구름 속에'를 함께 부른다. (02)783-2111

ㆍ조인상 독주회

깨끗하고 강렬한 음색으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인상의 독주회. 슈베르트의 소나타 가장조, 브람스의 소나타 제3번 라단조, 비에냐프스키의 화려한 폴로네이즈 제2번 가장조와 팔라 작곡 스페인 민요 모음곡 등을 연주한다. 반주는 윤철희가 맡는다. 11월16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02)391-2822.

ㆍ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

레닌그라드 심포니라는 이름으로 1991년 내한공연을 가졌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가 9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선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심포니는 쇼스타코비치가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을 만큼 러시아를 대표하는 70년 전통의 명문 오케스트라.

19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다니엘 리와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에프의 작품을 연주하고 21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 전당에서는 피아니스트 이경미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와 모짜르트의 작품을 들려준다. 공연문의 (02)749-1300.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20:09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