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31)] 살신성인의 과학자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서 결과를 얻는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과학자는 실험대상에 대한 관리자나 통제자, 또는 가해자(생체실험의 경우)가 된다.

하지만 드물게는 과학자 스스로가 자신의 실험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중에 더러는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기희생적인 사례가 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몇해 전 필자가 영국의 BBC방송에서 들었던 뉴스가 생각난다. 어떤 과학자가 에이즈백신을 만들었는데,그 안전도가 99.9% 정도였었지 싶다. 그래서 이 백신을 주사맞고 에이즈감염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실험할 자원자를 찾고 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뉴스였다.

재미있는 것은 막상 이 백신을 개발한 과학자에게, 본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연구를 위한 실험대상이 된다는 것,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두려운 선택이다. 99.9%의 안전성이라고 해도 0.1%의 오차가 언제든지 본인의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0.1%의 오차는 결코 99.9%의 안전성으로 매울 수 없는 두려움의 간극인 것이다.

사실 초기의 과학자들은 요즘같이 화학약품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나 기계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직접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서 물질의 종류를 구분하였다.

또한 실험이나 물질의 위험성이 미쳐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밝혀졌다고 해도 충분한 보호장비나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희생(후유증, 질병 등)을 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두 번씩이나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의 경우다. 퀴리처럼 라듐(방사성 물질)을 가지고 일한 많은 과학자가 당시에는 라듐에 대한 잠재적 위험(방사능 피폭)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량의 라듐에 노출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결국 그들은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말년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죽어갔다. 퀴리 부인의 경우 말년에 방사선병에 걸리고, 그 결과로 백혈병까지 앓다가 1934년에 생을 마감했다.

영국 레딩대학의 사이보그 전문가 캐빈 워윅 박사는 최근 실리콘 칩을 직접 자기 몸에 이식해서 로봇과 교신하면서 생활하는 특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의 신경계와 실리콘 칩을 연결하여 사실상의 사이보그(600만 불의 사나이와 같은) 실험을 하고있는데 워윅 박사가 머리 속으로 “문을 열고싶다”고 생각하면 그 신호가 실리콘 칩으로 전달되고, 이 신호는 곧바로 컴퓨터로 연결되어서 이동식 로봇이나 건물을 관리하는 로봇에게 전달된다. 그러면 문은 때맞춰 자동으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대개 선구자적 생각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며 그것이 어떤 위험일지를 모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두려움이 상존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실험의 대상이 되는 방법만큼 간단한 해결책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살신성인이겠는가?

영국 맨체스트 대학의 생물과학과 마크 프구슨 교수는 흉터를 생기지 않게 하는 약의 효능을 실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칼로 상처를 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팔뚝에 2개의 상처를 내고, 하나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바르고 하나는 그냥 두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약이 흉터를 남기지 않고 아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실험결과 덕분에 바이오벤쳐회사를 설립하는데 800만 파운드(약 66억 원)의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이것으로 치료약의 임상실험을 할 것이라고 한다.

프구슨 교수는 “내가 먼저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는 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기희생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IMF체제를 거치면서 악화된 연구환경 속에서도 정열과 인내로 분투하는 우리나라의 연구원들, 그들이 지금 선택하고 있을, 숨은 자기희생을 우리는 격려하며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과학기술은 바로 그들의 많은 자기희생을 먹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11/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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