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의 선거일

오늘 아침에는 일찍 아이들의 학교에 갔다. 아이들의 선생님과 상담하는 날이어서 학교에 가보니 주차할 장소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바로 선거일이었다.

아이들의 학교가 투표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를 쉬고, 이를 이용해서 선생님들은 학부모와 그동안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투표장으로 사용되는 학교는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직장으로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투표한 사람들은 "나는 투표했다"는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가슴에 붙이고 바쁘게 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국은 한해 걸러 한번씩 2년마다 전국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짝수로 끝나는 해의 11월 첫째 화요일에 치루어지는 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는 대통령이나 연방 상ㆍ하원의원, 주지사, 주 상ㆍ하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을 한꺼번에 뽑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선거일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각 직장에서는 투표를 장려하기 위하여 지각이나 조퇴를 인정하고 있다.

금년 선거는 역시 대통령 선거가 관심의 초점이다. 여타 선출직 공무원과 달리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하여 선출된다. 즉, 각 주에서 승리한 후보는 그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지게 된다.

주별 선거인단 수는 주민의 수에 비례한다. 예를 들어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 같은 경우에는 50여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인구가 적은 워싱턴 DC는 3명 밖에 없다.

아무리 작은 차이로 이긴다 하더라도 이긴 사람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기 때문에 실제 투표자의 지지는 더 많이 받았지만 선거인단 수 확보에서 뒤져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경우가 두번 있었다.

헌법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각 주의 연방으로서의 미국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근대 민주주의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하여 이를 개정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지만 선거인단 제도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는 그리 개정할 만한 동기가 없었던지 지금까지 잘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워낙 예측불허의 접전으로 흐르자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선출제도에 대한 개선의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도 한 것이 대통령 선거를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동북부와 중서부의 미시간, 일리노이,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미국 전역의 지도가 공화당을 표시하는 붉은 색으로 칠해졌는데도 선거인단 수 확보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오직 2표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야 하는 이들 후보로서는 얼마나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역별로 지지를 얻어야 하느냐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1994년 이래 의회에서 다수당을 빼앗긴 민주당이 이번에는 다수당으로 복귀할 수 있는가 또한 이번 선거의 관심거리였다.

하원은 이미 공화당이 여전히 다수당으로 남게 되었으며, 상원은 아마도 한두 석 정도 차이로 공화당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공화당은 여전히 의회에서 다수당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럴 경우에 백악관마저 공화당이 차지한다면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반세기만에 공화당이 동시에 장악하게 된다.

오늘날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며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는 현재의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다기 보다는 사상 유례없는 백중세를 연출했다. 경제적 번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얘기인지. 새 천년의 미국이 어떻게 갈지 지켜볼 일이다.

박해찬

입력시간 2000/11/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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