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미국대선] 힐러리, 여성대통령 도전 첫걸음?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 본격 정치무대 데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가 11월7일 있은 뉴욕주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릭 라지오 후보에게 승리함으로써 마침내 본격적인 정치무대로 뛰어들었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선거직에 도전한 힐러리는 51%의 득표율로 49%를 얻은 라지오 후보에게 신승을 거두고 뉴욕주의 첫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힐러리는 또한 1964년 로버트 케네디 이후 뉴욕주에서 외지인으로서 당선된 첫번째 상원의원이다.


'반 힐러리 정서'로 의외의 고전

이번 선거전은 현직 대통령의 부인의 출마라는 점 외에도 두 후보가 동원한 8,000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선거자금으로 대통령 선거에 못지 않은 관심을 끌어왔다.

힐러리는 당초 지난 5월 공화당의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암발병으로 중도하차한 뒤 지명도가 훨씬 떨어지는 라지오 후보를 맞아 낙승을 거둘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뉴욕의 '반(反)힐러리 정서'가 의외로 강력했고 힐러리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은 라지오 후보를 위해 달포만에 1,100만 달러를 모금하며 "힐러리의 상원진출만은 막아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선거전 종반에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라지오 후보를 5~9% 차이로 앞서기는 했지만 라 지오측이 반힐러리 정서를 적극 활용하고 "힐러리는 뉴욕에 연고가 전혀 없는 떠돌이 정치인"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며 대추격을 펼쳐 선거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막판 여성 유권자의 몰표를 끌어들임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 따라 남편 클린턴 대통령은 파란만장했던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준비해야 하지만 힐러리는 상원의원으로서, 나아가 중앙정치무대로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고 나섰다. 때문에 벌써부터 힐러리가 미국의 첫번째 여성 대통령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힐러리는 당선이 확정된 뒤 첫 기자회견에서 "뉴욕주 신임 상원의원으로 6년간 봉사할 것"이라며 "첫번째로 제출하게 될 법안은 뉴욕주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그는 또 교육과 보건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합 차원에서 당의 노선에 관계없이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힐러리는 "지난해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투표를 했던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 두달간 남편의 베트남 방문에 동행함으로써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힐러리는 논란을 빚고 있는 대통령 선거에 관해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1월10일 뉴욕주 올버니 국제공항에 모인 100여명의 지지자에게 "우리나라는 200년 전과는 매우 다르다"며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퍼스트 레이디는 곧 '반(半)정치인'이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만큼이나 왕성한 활동과 함께 자신의 야망을 스스럼없이 내비친 여성도 드물다.

때문에 현재 가장 유력한 첫번째 여성 대통령감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로 인해 그에 대한 평가는 '진정한 현대여성'에서부터 '극성스런 치맛바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있다.


남편 재임중 국내외 정치에 적극 관여

남편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자 힐러리는 유권자에게 적극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등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을 감추지 않았다.

시카고 명문가 출신으로 예일 법대를 수석졸업한 변호사인 그는 대학시절 불우가정 출신의 히피족이었던 클린턴에게서 일찌감치 정치가의 기질을 예감하고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2년 대선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며 결국 남편을 백악관에 입성시켰던 힐러리는 이후 국내외를 넘나들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러나 자신이 주관한 의료개혁 작업의 실패, 화이트워터 사건 연관설까지 불거지면서 결국 남편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러왔지만 결국 1996년 대선이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복귀, 선거운동을 이끌며 클린턴을 재선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독한 이미지'를 세인의 기억 속에 심어줬던 것은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 때 보여줬던 그의 꾸준한 미소였다. 이혼까지 거론되며 세인의 비난과 호기심 섞인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힐러리는 오히려 남편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더욱 적극적으로 밝혔다.

때문에 그는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권력에 대한 미련에 클린턴과 함께 살 뿐"이라는 야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국 클린턴은 스캔들 파장을 무마하며 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편 힐러리가 상원의원에 당선되자 "그가 차기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다음 목표에 대한 성급한 추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힐러리는 이러한 추측을 의식한 듯 "나는 2004년 대선에 출마할 의도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는 했지만 전혀 연고가 없는 뉴욕주에서 뜨내기 정치인이란 비난과 반 힐러리 정서를 극복하고 당선된 것은 '퍼스트레이디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백악관을 재입성한다'는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정치력을 검증받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권도전의 꿈 어디까지?

특히 힐러리의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의사가 지난해 1월 엘리자베스 돌 여사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적십자총재직을 사임하고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나온 것이 힐러리의 야심을 드러내는 증거로 들먹여져 왔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때 63%에 달했던 여성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반대의견은 90%의 찬성으로 바뀐 상태이며 상원의원 힐러리는 그런 분위기를 탈 수 있는 몇명 안되는 여성 지도자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울러 뉴욕주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형성돼 있는 반 힐러리 정서를 실감한 상황에서 상원의원 힐러리가 당초의 야심대로 대권의 꿈을 키워갈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다사다난한 일정 속에서도 미국의 유래없는 경제번영을 주도한 민주당 정권 뒤에는 힐러리가 함께 서 있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앞으로 상원의원 힐러리가 얼마나 성숙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주훈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14 21:15


이주훈 국제부 jun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