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검찰'이 이렇게 썩었을 줄이야…

금융기관 생사여탈권 쥐고 업계와 유착

'경제검찰'로 군림하던 금융감독원이 검찰의 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장래찬 전 비은행검사1국장이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으로부터 7억원의 뇌물성 투자보전금을 받고 검찰의 수사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자 금감원 직원들은 은연중에 "한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김영재 부원장보가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에게 10억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게 되면서 금감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아이들이 '아빠는 괜찮아'라고 묻는 통에 함께 TV도 보지 못하겠다"며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은 "과연 어느 선까지 연루됐나", "'금융강도원'이라는 표현이 크게 틀리지 않군"이라는 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금감원은 각종 이권을 둘러싸고 얼키고 설킨 복마전에 다름 아니라는 확신의 눈빛이다.


금감원의 무소불위 권한

이근영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8월 취임 일성으로 '서비스기관으로의 재탄생'을 역설한 바 있다. 금감원은 실제 금융서비스 기관으로서 영문표기도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다.

국민을 위해 금융기관의 감독을 서비스하는 게 본래 조직의 설립목적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1월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은행ㆍ증권ㆍ보험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만든 공룡조직. 전체 금융기관을 상대로 운영자산의 건전성을 감독하고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는 게 주된 임무다.

월, 분기, 반기 단위로 각 금융기관으로부터 업무보고서를 받고 의심나는 기관에 대해서는 직접 현장검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다. 검사결과 위법이 나타나면 경영에 제재가 따르기 때문에 검사를 받는 피검기관 입장에서 보면 금감원은 '경제검찰'일 수 밖에 없다.

기본업무 외에 금감원은 금융기관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

지난해 5월 금융기관의 인허가 업무가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이관된 것. 신용금고나 종금사 증권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데다 금융ㆍ기업구조조정 실무까지 맡고있어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무소불위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원장을 포함해 전직원이 1,400여명에 불과하지만 이같은 막강파워 때문에 말단 조사(검사)역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금융계의 현실.


끝없는 유착의혹

다른 공공기관 처럼 금감원도 안팎에서 날아드는 투서로 곤욕을 치른다. 금감원에 들어오는 투서는 대부분 인ㆍ허가와 검사결과를 둘러싼 청탁형 비리 관련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종금사의 인가취소와 관련 수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있는 김 부원장보의 경우도 투서를 통해 소문이 난지 오래됐다. 상급 감독기관으로서의 위세는 일상검사, 인허가 등 금감원이 가진 막강한 권한에서 비롯된다.

금감원의 본연의 업무인 검사와 관련,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의 피검기관이 접대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분위기.

특히 인허가와 제재 등 핵심적 사안과 관련해서는 굵직굵직한 비리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금감원 출범초기 일부 감독부서가 복마전으로 불렸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금감원과 금융기관의 유착관계는 감독원 직원의 퇴직후 재취업에서 극치를 이룬다. 퇴직한 금감원 임직원을 상대로 금융기관이 모셔오기 경쟁을 벌이는 것. 퇴직 금감원 직원이라면 인허가와 검사 등을 대비해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게 금융기관의 생각이다.

실제 효과는 별도로 치더라도 1999년 통합금감원이 출범한 이래 퇴직 임직원 13명이 현재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근무중이다. 감독당국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는 피검기관의 의도는 결국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구축해놓은 셈이다.

"감당하지도 못할 막강한 권한을 한꺼번에 안겨준 것이 잘못이다." 일부 직원은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에서 이어진 금감원의 위기를 이같이 진단했다. '너무 위험한 칼잡이에게 칼을 맡겼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일고 있는 것이다.


권한축소 등 금감원 개편논의

정부는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금감원이 도마에 오르자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금감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제시했다. 금감원을 금융감독위원회와 분리해 금융정책 기능을 박탈하고 단순한 감독업무만 맡긴다는 것이 골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금감원 직원의 도덕적 해이와 관련한 문제. 현재 임원으로 한정돼 있는 재산등록 대상자를 일정 직급까지 확대하고, 금감원 직원이 유관기관에 취업할 때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또 금감원 내의 감찰팀을 확대개편해 소속 직원의 비상장ㆍ비등록 주식을 포함한 유가증권 매매상황과 재산변동 상황 등을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문제직원에 대한 체크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금감원 직원과 금융기관의 유착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의 검사시에 공인회계사 등 외부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대상에 올랐다.

감독원 내부에서는 당장 반론이 나왔다. "이미 수많은 논의를 거쳐 만든 금감원 조직을 비리사건 하나 때문에 뜯어고쳐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관계자는 반발했다. 도덕적 해이 문제와 기구의 기능 효율성 문제는 분명히 별개의 사안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원칙이 보여주듯 권한이 집중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 당장 필요한 견제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으면 국민은 금융감독과 관련한 서비스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김정곤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14 21:24


김정곤 경제부 kimj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