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오프라인, 갈등과 전망

지난 10월 초 인터넷 서점 예스24(www.yes24.co.kr)는 각 신문사 정보통신(IT) 담당 기자 앞으로 '도서정가제 철폐 선봉에 나서며'라는 제목의 이메일 보도자료를 돌렸다.

요지는 오프라인 출판ㆍ서점업체들이 지지하고 문화관광부가 추진중인 '출판 및 인쇄 진흥법'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법안은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을 경우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조항을 담고있어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온라인 서점업계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백기 든 국내최대 온라인 서점

그런데 보름이 지나지 않아 예스24는 입장을 정반대로 바꿔 기존의 할인판매를 중단하고 도서정가제 실시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하루 매출액 1억원대의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이 맥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예스24와 보조를 맞추던 와우북(www.wowbook.co.kr)도 도서정가제 준수로 돌아섰다. "영업손실에 연연하지 않고 오프라인 업체들과 맞서 싸워 소비자 주권을 지키겠다"고 비장하게 나섰다가 황급히 입장을 바꾼 속사정은 뭘까.

예스24측은 "보름동안 악몽을 꾼 것 같다"고 털어놨다. 예스24는 입장발표 이후 오프라인 업체의 조직적 방해로 하루 판매량인 1만5,000권의 책을 일시에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별도의 물류 창고가 없는 예스24가 소형 트럭 10대 분량의 책을 기존의 거래선이 아닌 곳을 통해 매일 조달하기는 불가능한 일.

예스24는 백기를 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영업이 중단되는 상황을 맞았던 것이다. 이번 사건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실력대결로까지 치닫는 경우는 아직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이면을 살펴보면 동일한 상품을 놓고 온라인-오프라인간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수면에 조그맣게 드러나있는 빙산의 아래에 거대한 몸체가 있는 형국이다. 빙산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몸체를 들여다보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항공 티켓을 여행사에게 대리판매케 하고 티켓가격의 9%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 자체 판매망이 없는 항공사가 일반인에게 항공티켓을 판매하기위해 여행사들을 이용했던 것.

그런데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티켓을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길이 열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요즘 인터넷을 통한 직접 판매의 비중을 늘리면서 오프라인 여행사에게 수수료 9%를 7%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여행사의 반발이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급박한 형국이다.


일자리 위협받는 영업사원

얼마전 현대자동차는 27개 대리점을 영업정지시키고 2개 대리점은 아예 폐쇄했다. 이들이 인터넷 자동차 판매사이트 리베로(www.libero.co.kr)나 딜웨이(www.dealway.com) 등에 몰래 차를 팔았다는 이유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자동차를 온라인상에서 거래하는 인터넷 자동차판매 사이트는 30여곳. 이들은 최고 100만원까지 싸게 자동차를 판매해왔고 최근 인터넷 자동차판매연합회(KAINF)라는 단체를 만들 정도로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의 영역확대로 영업사원이 일자리를 잃고 유통망이 붕괴되는 위험을 맞은 오프라인 업체들이 대리점의 영업정지와 폐쇄라는 고육책으로 집안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온라인-오프라인 갈등은 보험, 증권, 가전제품, 소프트웨어 등 곳곳에서 유사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할인정책과 편리함을 무기로 내세운 온라인 업체의 비약적 성장은 오프라인에게 위협적이다. 오프라인 업체들은 시대 흐름이 인터넷임을 인정하고 온라인 사업에 진출하려고 하지만 내부 오프라인 조직의 반발 때문에 여의치않다.

교보문고는 자체 사이트(www.kyobobook.co.kr)를 운영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의식해 할인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책값을 30~40% 할인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의 급성장을 속절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처지다.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는 편법으로 오프라인 업체들이 내부 오프라인 조직의 저항을 피해가면서 온라인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메이저 PC업체 삼보컴퓨터는 나래해커스라는 PC제품을 온라인상(www.getpcco.kr)에서 판매하고 있다. 나래해커스가 삼보에서 나온 제품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궁극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생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IT선진국 미국의 사례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역할분담이나 차별화를 통해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네트워크 연결, 판매촉진 효과

온라인 가구 판매업체 홈포인트닷컴(www.homepoint.com)은 미국 내 5,000~6,000개의 오프라인 가구점들을 네트웍으로 구축, 소비자들이 웹사이트에서 물건을 쇼핑한 후 가까운 가구점에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않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른다.

홈포인트닷컴이라는 웹사이트는 어느 오프라인 가구점에 물건이 없을 경우 다른 가구점의 재고를 보여주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독립적으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가구점을 네트워크로 연결시킴으로써 일종의 체인점과 같은 형태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온라인이 오프라인과 갈등 관계에 있지 않고 오히려 판매를 촉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변호사 김형진씨는 "미국의 온라인-오프라인 업체들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른, 책판매를 둘러싼 온라인-오프라인 갈등도 이런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이버 경영컨설팅 전문 휴넷(www.hunet.co.kr)의 조영탁 대표는 "온라인-오프라인 출판업체들이 대립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구입한 서적을 가까운 서점에서 받아가게 하는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오프라인 서점은 대신에 자신만의 장점을 특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광화문 교보문고는 고객에게 아늑하고 널찍한 매장에서 친구를 만나 담소하고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희귀서적을 구입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즐거움은 고객이 책을 할인하지 않고 정가로 샀을 경우의 부담을 상쇄해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생하는 방안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이민주 인터넷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14 21:31


이민주 인터넷부 m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