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로 가는 환각유혹…엑스터시

동남아시아, 미국등지서 복용자 크게 늘어

캄보디아 프놈펜의 나이트 클럽 '맨해튼'은 동남 아시아의 전형적인 범죄소굴을 연상케 한다. 부티 나는 화교 상인이 정부 고위관리의 자녀들과 어울리는 테이블을 건장한 보디가드들이 둘러싸고 있고, 화려하고 젊은 매춘부들은 팝뮤직에 완전히 몸을 던지고 있다.

그들의 떠들썩한 웃음은 가식이 아니다. 매춘부들은 한 알에 20~30달러하는, 아주 비싸지만 억눌린 욕망을 발산시키는데는 그만인 알약 엑스터시를 사는 가장 확실한 고객이다.

물론 가끔 남자들이 돈을 내주기도 하고 깎아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여자 휴게실에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던 19세 여성 림은 "나긋나긋하고 적극적이어야 손님을 잡을 수 있다"면서 "기분을 내기 위해 약을 먹는다"고 말했다.

바다를 건너 미국의 작은 도시, 그랜드 래피드에서 1997년 어느날 밤 가정주부 수는 남편의 신장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암은 부부의 결혼생활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부부는 정말 힘든 문제를 다룰 때는 MDMA라 불리는 엑스터시를 먹어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낸 뒤 둘만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이 지난 뒤 부부의 얼굴을 한결 밝아졌고, 수는 MDMA가 그녀의 결혼생활과 남편의 삶을 더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만병통치약인가? 마약인가?

이렇듯 엑스터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처음엔 다 그런 줄로 여겼다.

사실 생화학자인 알렉산더 슐진이 1978년 인체에 대한 엑스터시의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처음으로 내놓으면서 엑스터시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엑스터시의 효능으로 주목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엑스터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치료하는 약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LSD의 대용으로, 또다른 사람에게는 마티니 없는 칵테일 파티에서 즐거움을 주는 약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고 회고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엑스터시가 인기를 끈 것은 1980년대다. 'e'로 불린 엑스터시는 유럽에서 레이브(댄스음악의 일종) 문화를 전파하는 매개체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1985년 이를 불법화했고, 엑스터시는 클럽이나 게이바, 맨해튼의 빈민층 등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엑스터시가 프놈펜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다. 통계적으로도 지난 수년간 엑스터시는 다른 마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마약류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엑스터시 복용자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일본 경찰과 세관당국은 지난 9개월동안 1999년 한해의 4배가 넘는 6만8,000정의 엑스터시를 압류했고, 지난 6월 홍콩경찰은 한 곳을 습격해 무려 32만 정을 압수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도 지난 5월 무려 50만정이 적발됐다. 엑스터시의 제조단가는 겨우 몇푼에 불과한데 시장에서는 통상 20~40달러에 팔리고 있어 누군가는 당국의 단속 때문에 떼돈을 챙길 기회를 잃었다.

전세계 'e' 물량의 80%는 네덜란드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유럽에서 건너온 e는 자카르타에서 12달러, 도쿄에서 50달러에 외국인들이나 지역 유지들에게 공급되는데 지역 네트워크가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홍콩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중국에서 제조된 알약이 4달러선에서 팔리고 있다.


"돈만 있으면 몇분 안에 행복"

밤새 춤추고 노는 레이브 문화가 아시아쪽에 자리를 잡으면서 엑스터시가 젊은 층에 퍼지기 시작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옛 문화혁명 시절의 영화가 상영되는 베이징 클럽 로프트에서 이 알약은 사회적 상징을 넘어선다. 이 클럽에서 만난 23세 여성 왕 아이빙은 "돈만 있으면 몇 분안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든 뭐든 살 수 있으나 부모세대는 행복을 살 수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야바'라고 불리는 암페타민(각성제)이 휩쓸었던 태국에서 엑스터시는 '야 e'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명 브랜드 '미우미우'를 입고 선글라스 '오클레이'를 끼는 수준의 젊은이들이 야e를 즐긴다고 한다.

방콕에서 만난 사진전문가와 증권맨은 "주변에서는 이제 절대 야바를 찾지 않는다"면서 "야e 야 말로 우리 생활 스타일이나 패션, 음악에 꼭 맞는 약"이라고 자랑했다.

아시아 일부 국가가 엑스터시를 퇴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엄격한 말레이시아에서도 일간지들은 새벽녘에 거의 벌거벗은 젊은 여성이 클럽에서 나와 자동차를 타는 기사를 실으며 엑스터시의 남용을 경고하곤 한다.

필리핀에서는 아예 고등학교 축제에서 약에 취한 여학생이 플로어에 드러눕는다는 기사까지 실린다. 엑스터시는 정말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일까? 중국의 한 10대 여성은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다. 약간 나쁘다고 하지만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데 왜 안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엑스터시를 삼키면 거의 30분동안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한다. 편안하면서 짜릿한 흥분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간다. LSD나 코카인처럼 곧바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도 없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사는 잭은 "그동안 엑스터시를 40여 차례 복용했다"면서 "마치 장학금을 받았을 때와 같은 기쁨과 희열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진다"고 고백했다. 베이징의 한 클럽에서 만난 10대 여성은 "중국에서 아무데서나 남자에게 안기기가 쉽지 않는데 이 약을 먹으면 겁내지 않고 누구에게나 안기고 싶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체온상승, 혈액응고 등 부작용으로 사망까지

엑시터시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단기적으로 부작용은 분명히 있다. 엑스터시는 주로 MDMA 물질로 제조되는데 MDMA는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는 '세로토닌' 물질의 생성과 활동에 영향을 준다.

엑스터시에 의해 뇌세포 속에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면 흥분은 고조되지만 위험해진다. 자기도 모르는 새 체온이 37도에서 43도까지 올라가고 혈관이 굳어져 잘못하면 죽게 된다. 지금까지 나온 희생자가 수십명이다.

엑스터시를 복용하면 장기적으로 세로토닌에 의해 뇌세포에 변화가 일어나 기억력이 떨어지고 성욕감퇴 및 발작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성욕감퇴를 경험한 사람은 약효가 떨어지면 갑자기 성욕이 발동해 '야수'처럼 변하기도 한다.

MDMA는 원래 1914년 독일의 메르스크사가 특허권을 확보한 물질이다. 미국에서도 한때 사설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MDMA가 합법적으로 팔리기도 했으나 마약성이 확인된 뒤 제조가 금지됐다. 마약 관리들은 MDMA 복용자들이 구토와 혈압 불안정 증세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아시아에서는 홍콩의 한 세일즈맨이 복용후 2분여동안 의식을 잃었으며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런 사람은 더이상 엑스터시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1/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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