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36)] 이태석 코네스 사장(上)

수더분한 인상, 털털한 말투. 첫 인상이 각박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속에 묻혀 사는 마음씨 좋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닮았다. 그러고 보니 눈빛마저 선하다.

역시 직업은 속일 수 없는 것일까?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과외교실의 '대부'로 꼽히는 이태석 코네스 사장은 '샤프하고 통통 튄다'는 여느 벤처 기업가와는 달랐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흔히 마주치는, 언제나 아이들과 어울리는 선생님을 대하듯 푸근하다.

그렇다고 마냥 베풀지만은 않는다. "가끔 너무한다 싶을 때가 있어요. 과외교실을 여는데 학교마다 1억원 가까이 투자하는데 손해보고 할 수는 없쟎아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우리가 과외교실을 열어 떼돈을 버는 줄 알아요. 우린 먹고 살만큼만 받아요. 고생만 했지 번 것도 별로 없는데."라고 투정도 하는 이 사장이다.


초등학교 '과외교실'에서 방송사업까지

종합교육서비스 벤처기업 '코네스'라면 일반 사람은 잘 모른다. 초등학교 방과후 컴퓨터를 가르치는 '에듀박스 컴교실'이라면 알 만한 주부들은 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이 컴퓨터 교실 사업은 현재 전국 400여개의 학교에서 10만명의 어린이에게 정보화의 기회를 주고 있다. 정보화 교육에 필요한 최신 설비와 전문 강사, 커리큘럼이 이 사업의 강점. 시장 점유율은 40% 로 업계 1위다.

코네스는 또 1999년 7월 KBS의 자회사인 한국방송제작단(구 KBS제작단)을 인수했으며 올해 'WEN TV'라는 이벤트 전문 케이블 채널을 확보해 방송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방송제작단은 현재 KBS 아침 드리마 '내일은 맑음'과 어린이 드라마 '요정 컴미' 등을 제작해 내보내고 있어 어느 프로덕션보다 시청자에게 친숙하다.

방과후 과외교실을 운영하는 벤처기업이 어떻게 방송까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1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를 감안할 때 코네스의 자금력을 얕잡아보면 안된다.

게다가 부모들이 기꺼이 돈지갑을 여는 초등학생 이하 계층이 비즈니스 대상 아닌가?

정현준ㆍ이경자 로비의혹 사건의 와중에 만난 이태석 사장은 언론의 무차별적인 '벤처 때리기'에 불만을 표시했다. "정현준 사장은 정상적인 벤처기업가가 아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남의 돈을 끌어들여 10배, 100배 식으로 '배수 튀기기'에 집착한 기업사냥꾼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벤처기업인의 전형인양 벤처 전체를 매도하면 가뜩이나 취약한 벤처기반이 무너진다"는게 요지였다.

"코스닥이 한창일 때 어떤 주가는 100배씩 올랐는데 기업가치가 어떻게 1년도 안돼 100배나 좋아질 수가 있나. 정부도 무책임하게 보고도 모른 체 하고 건수 위주로 나갔지요. 그런 비정상적인 요인이 이번 사건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요? 사업을 시작해서 3년만에 떼돈을 번다면 누가 안하겠습니까? 사업은 그런 게 아니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시장에서 이를 확인하기가 얼마나 힘드는데요. 부도를 내보지 않은 사람은 비즈니스를 입에 올리면 안되죠."

이야기를 시작하는 폼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지옥에라도 갔다온 것일까? 사실은 "과외교실을 운영하던 조그만 기업이 방송사업에 진출하다니, 뭔가 대단한 구석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기도 했었다.


시대적 흐름 탄 덕에 아이디어 적중

그러나 코네스는 너무나 평이하게,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탄생했다. 코네스의 모태는 1993년 2월 강동구 명일동에서 문을 연 어린이 외국어 학원. 다른 학원과 다른 점은 외국인 강사가 직접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

갓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를 부르짖고 초대 김숙희 교육부 장관이 초등학교 커리큘럼에 영어과목을 넣겠다고 밝혀 주변의 아파트촌에는 영어붐이 일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어요. 자리가 없어 아이들을 받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죠. 그때 누군가가 전국적으로 학원 프랜차이즈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는데 한마디로 거절했어요. 학원을 하나 운영하기도 골치 아픈데 어떻게 전국 체인으로 가져가나 생각했지요."

이미 그의 머리에는 다른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월드랜드 같은 어린이 영어학원 체인이 생겨나고 있었으나 관심 밖이었다.

"학원보다 골치를 덜 썩이고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는 없을까? 어차피 초등학교에 영어과목을 추가한다는데 학교에 영어강사를 보내면 어떨까?"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학교에 영어강사를 보내면 학원처럼 셔틀버스 없어도 되죠, 장소 구할 필요도 없죠. 한 반에 20명만 모으면 한달에 2만원 받아도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코네스를 창업했다. 1994년 11월이었다.

시대적 상황은 이 사장의 편이었다. 1995년 5월께 교육개혁조치가 나오면서 사교육 대처방안으로 학교엔 '방과후 과외교실'이라는 게 생겼다.

태권도 바이올린 영어 등이 당시 최고 인기종목. 그런데 영어 과외교실에 외국인 선생을 보내주니 학교에서도 대환영이었고, 인기도 최고였다. 시작한지 1년여만에 대상학교가 60여개로 늘어났다.

신이 난 코네스는 큰 돈을 들여 자체 영어교재를 만들었다. "Okay Phonics", "Okey-Dokey English", "Funny School", "Buddy Buddy", "Easy Ways", "Sing sing Together" 등 유명 어린이 교재는 이때 초안이 만들어졌다.


대기업문화에 적응 못하고 새로운 길 찾아

대구에서 포목점 아들로 태어난 이 사장은 원래 영어나 학원, 사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학졸업(서울대 불문과)후 당시로는 최고의 직장이었던 제2금융권 소속인 동부투자금융 기조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기업 문화를 잘 아시잖아요.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지요.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대기업 문화에 염증을 느꼈어요. 남과는 다른 새로운 조직으로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사표를 던졌습니다."

영어학원 설립에서부터 방과후 과외교실까지 순조롭게 달리던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모 공중파 방송이 무자격 외국인 영어선생이 과외교실을 맡고 있다는 폭로성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난리가 났고, 이 사장은 과외교실에 내보내던 외국인 영어선생님을 모두 불러들여야 했다. 대신에 마술로 배우는 영어, 드라마 영어 등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위해 별별 묘책을 다 짜냈으나 이미 내리막길이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1/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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