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화룡점정만 남긴 대역전국

제6국의 전야제 석상. 평소 어린애처럼 웃기를 좋아하는 조치훈은 과묵하게 앉아있다. 말을 걸면 대답은 하지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무슨 상념일까. 눈길은 먼데를 향하고 있다. 분명 6국의 포석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3패후 2연승으로 따라붙었다. 4, 5국은 내용도 너무나 완벽했다. 이 분위기를 끌고갈 수 있다면 6국도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이다. 조치훈의 얼굴이 약간 무거워진 건 상념 속에 바둑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흑을 둔 조치훈은 득의의 포진인 소목으로 나와 견실하게 양굳힘을 하는 모습이다.

실리로서 안정된 바둑을 두겠다는 것이다. 역시 그것은 좋은 작전이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동요됐을 고바야시는 상대가 집요하게 실리를 차지하면 분명 동요할 것이다. 마지막 한판을 위해 안간 힘을 쓸 것이다.

역시 만만찮은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고바야시도 과연 끝까지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고 바둑이 유리해지면 또 그때 가서 기성 명인 본인방을 동시에 두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한때 고바야시가 유리한 상황도 있었다지만 중반 이후는 고바야시가 이기는 코스는 없었다고 국후 결론이 내려진다.

백을 든 고바야시가 1집반을 이길 수 있는 코스는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잃고 난 후에는 도저히 안되는 내용. "냉정함이 모자랐어." 고바야시는 훗날 자신의 유감대국 첫번째로 이 6국을 지목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차라리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선배 오다케는 말한다.

과연 이길 수 있었다는 6국을, 운명의 7국을 앞두고 꼭 파헤쳤어야 했을까. 오다케는 최종국을 앞두고 그 이전 대국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철두철미함에 의문을 표시한다.

하기야 오다케는 일본 기사답지 않게 호탕하고 낭만적인 인물. 그가 볼 적엔 후배 고바야시가 지나치게 지나간 판에 연연하는 모습이 좋지 않다고 경고한다.

3패후에 조치훈은 3연승으로 따라붙었다. 이제는 인간의 영역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 다음 판을 누가 이기든 설득력이 있고 누가 이겨도 이길만한 성과를 올린 다음이다.

이른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그러나 저널은 가만있지 않는다. 3패후 4연승을 한 예는 있으나 3연승후 3패, 다시 승리를 안은 적은 여태 한번도 없다며 조치훈의 승리를 예고하기도 한다. 하기야 흐름상 누구라도 조치훈이 대역전을 거둘 것이라고 본다.

이즘 한국에서도 난리가 아니다. 이미 한국은 세계 바둑계의 흐름을 쫓아가며 이미 세계 최강국의 면모를 일신하고 있을 때. 전통의 메이저 리그라고 할 일본에서 조치훈이 만약 또다시 대역전극을 펼친다면 이건 경사도 이런 경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최후의 1막이 올라간다. 운명의 본인방전 도전 7번기 최종국은 시즈오카에서 치러진다. 시즈오카는 근세 말의 거장 본인방 수화의 출생지. 그곳에 수화의 생가가 있다. 소년시절 조치훈에게 있어서 수화는 우칭위엔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쩐 일인지 30분이나 일찍 조치훈은 대국장에 나타나 윗자리에 앉아있다. 판을 앞에 두고있으면 맘이 안정된다는 것이 그 이유. 역시 이 한판에 거는 그의 기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리라. 고바야시는 대국 3분전 입장한다. 그리고 돌을 가린다. 조치훈의 흑차례.<계속>


<뉴스와 화제>


ㆍ북한 바둑, 국제대회 첫우승

북한 바둑의 미래는 밝다. 1992년 국제무대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북한 바둑이 드디어 국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1월18, 19일 일본에서 벌어진 제11회 국제아마 페어바둑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의 임현철 권미현 조는 한국의 임동균 배윤진 조를 꺾고 스위스 리그로 펼쳐진 대회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번 우승으로 북한은 바둑강국을 향한 대약진을 예고했다 .

특히 이번 남북대결에서 한국측 대표로 나선 임동균 아마7단과 배윤진 프로초단은 사상 최강의 복식조라 할만한 한국의 정상급 기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북한은 이미 한중일, 대만에 이어 제5대 강국으로 이미 자리잡았고 곧 대만을 따돌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11/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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