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신화 왜 비틀즈인가?

해체 30년 맞아 다시 부는 비틀즈 열풍

1964년 미국에서 처음 비틀즈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많은 평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비틀즈의 음악은 계급과 인종 간의 벽을 허물었다. 대신 비틀즈는 나이를 사회구성원을 구분하는 첫번째 기준으로 만들었다."

비틀즈에 대한 세계 젊은이의 열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제 비틀즈 이후 대중음악은 세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비틀즈 열풍에 휩싸여 있다. 11월13일 세계에서 동시출반된 음반 '비틀즈 1'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판매수위에 올라있다.

비틀즈의 넘버원 히트곡 27곡을 CD 한장에 망라한 이 앨범은 미국에서 발매 첫주 빌보드 1위에 올랐으며 이번주에는 2위로 한계단 내려갔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 영국에서도 첫주에 31만 9,000여장이 나가 올 한해 발매된 모든 음반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리고 있다.


히트곡 모음집 전세계 판매량 1위

또 지난 10월 5일 출간된 그들의 자서전 '비틀즈 앤솔로지'(Beatles Anthology)는 곧바로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에 올랐고 지금도 줄곧 2위를 지키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이 책은 여전히 베스트 셀러 1위다.

'비틀즈 앤솔로지'는 생존해있는 비틀즈 멤버 3인이 직접 참여한 책으로 오래도록 수많은 팬이 기다려온 책이다.

비틀즈는 활동기간중은 물론이고 해체 후에도 단한번도 자신들에 관해 스스로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398페이지라는 많은 분량에 60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 대부분이고 후반부에는 다소 지루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지껏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장의 사진이 공개된 것을 비롯, 전반적으로 의의가 있는 책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음반과 서적의 발매에 맞춰 비틀즈의 첫 공식 웹 사이트(www.thebeatles.com)도 문을 열었다.

또 얼마전 미국에서는 공중파 방송인 ABC가 금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비틀즈 혁명'(Beatles Revolution)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 지난 3월24일 이래 같은 날 같은 시간대의 프로그램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은 18세에서 45세로 비틀즈에 열광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 비틀즈 해체 이후에 태어난 사람까지 포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보다 한주 뒤에는 비틀즈의 첫 영화였던 'A Hard Day's Night'가 새로 개봉되었다.


1960년대로 돌아간 듯 곳곳서 열광

이런저런 비틀즈 관련 소식만 듣고 있다 보면 마치 비틀매니아가 절정이었던 1960년대 중반으로 걸어 들어간 듯 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지난해 말 각 매체들이 20세기 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비틀즈를 꼽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바다.

더욱이 올해는 비틀즈 해체 30주년이고 12월8일은 존 레논의 사망 20주년이어서 비틀즈 열풍은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비틀즈 열풍에 있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열기에 있어서는 오히려 어느 나라에 못지 않다. 라디오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자주 흘러나오고 그들에 관한 기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대형 음반매장의 한면은 통째로 비틀즈 음반으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비틀즈 비디오그라피 코너는 개설하자마자 9,000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비틀즈 1'은 요즘 팝과 가요를 통틀어 가장 잘 팔리는 음반이다. 교보문고 음반매장 핫 트랙스의 경우 발매 초반에는 하루에 100장씩 팔렸으나 요즘은 하루에 200장씩 나간다.

얼마전 발매된 미국의 틴 아이돌 스타 백 스트리트 보이스의 신보가 하루에 20장 정도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뿐만 아니라 일일 판매량 150장을 기록, 가요 음반 중 가장 많이 팔린다는 GOD의 새 음반보다도 훨씬 많다.

배급사인 EMI에 의하면 지난 11월13일 이후 20여일 동안 팔린 음반은 모두 6만장.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주문은 밀려있는데 재고가 바닥나 부랴부랴 새로 음반을 들여오느라 EMI는 요즘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500장 한정으로 들여온 2장 짜리 LP도 벌써 동이 났다. EMI 홍보담당자는 "이대로 가면 10만장은 무난할 것"이라고 한다. 내심 20만장까지 기대하는 눈치다. 20만장이라면 팝 음반으로는 근래 보기드문 대박이다.

1980년대 중ㆍ후반까지만 해도 가요를 능가했던 팝 음반의 시장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져 요즘은 1만장만 넘겨도 대박으로 쳐준다.

음반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골드 디스크의 기준도 3만장, 플래티넘도 6만장으로 낮아졌다. '비틀즈 1'은 3주일도 안돼 플래티넘을 넘은 셈이다. 가히 '비틀즈 열풍'이라고 부를 만하다. 어떤 사람은 일종의 문화현상이라고까지 말한다.


"비틀즈는 현재진행형 밴드"

확실히 한국의 비틀즈 열풍은 이상현상이다. '비틀즈 1'만 출반됐을 뿐 '비틀즈 앤솔로지'는 판권조차 산 출판사가 없고 영화는 커녕 오래전 제작된 다큐멘터리조차 방영되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제까지 비틀즈 음반이 나오면 무조건 1위로 올랐던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한국은 비틀즈에 대한 관심이 그리 폭발적인 편은 아니었다.

비틀즈의 정규 음반도 그렇고 그들의 대표곡을 집대성한 2장의 더블 CD '레드와 블루' 앨범도 한달 판매량은 500장 내외다.

또 1995년 고인이 된 존 레논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살려내 비틀즈 네 명이 해체 후 처음으로 함께 입을 맞춘 'Free as a Bird'가 수록된 '비틀즈 앤솔로지1'도 7만장이 팔리는데 5년이 걸렸다.

열풍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비틀즈1'의 대박에서 비롯된 요즘의 비틀즈 열풍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1차적인 이유는 물론 비틀즈의 이름이다. 비틀즈는 말 그대로 '팝의 신화',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인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틀즈는 그 이름만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밴드이며 한세기가 지나면서 국내외에서 다시한번 수많은 평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철저한 상업적 전략 하에 만들어진 '비틀즈 1'의 특징도 무시할 수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비틀즈 1'은 비틀즈의 가장 대중적인 히트곡들을 단 한장의 음반에 담음으로써 누구라도 한장 갖고 싶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더구나 연말을 앞두고 선물용으로 제격"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Love Me Do'로 시작해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끝나는 그들의 1위곡들은 비틀즈의 궤적을 ?어보는데 부족함이 없다.

비록 'Twist and Shout', 'In My Life', 'Norweigian Wood', 'Strawberry Fields Forever', 'A Day in the Life',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등 비틀즈 역사에서 의미있는 곡들은 빠져있지만 음반 한장이 온통 귀에 익은 곡들로만 채워져있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층에도 어필하는 음악성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음반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있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비틀즈를 좋아하는 올드팬만으로는 지금과 같은 수치가 나올 수 없다. 애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음반매장을 찾는 이들 중에는 비틀즈 해체 이후 태어난 사람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팝송이 FM방송을 지배하던 1980년대 중반까지 음악을 들은 팝송 세대도 있지만 댄스 음악이 전부인줄 알 것 같은 어린 세대도 있다. 핫 트랙스의 이승택 과장은 "고객 연령층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에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고 말한다.

비틀즈를 알면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비틀즈를 잘 모르는 10대, 20대에게도 비틀즈의 음악이 충분히 매력적일까.

답은 '그렇다'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움이 개설한 비틀즈 비디오그라피의 자유게시판에서는 이런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솔직히 비틀즈 세대가 아니다. 10대니까.

그들의 성공, 해체 그리고 존 레논의 사망, 이 모든 걸 직접 보지 못했지만 난 그들의 음악을 너무 좋아한다."(준규) "제가 아는 팝송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데 거의 대부분이 비틀즈 노래예요. 지금 고2인 저는 영어가 항상 '가'입니다.

이렇게 영어를 못하는 저에게 어설프게 영어를 따라 부르게 한 가수가 비틀즈입니다."(최준규) "중학교 때 TV에서 처음 비틀즈 스페셜을 보고 그날 밤 잠을 이룰수 없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비틀즈 팬이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힘이 느껴진다."(조원덕) "비틀즈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자유, 힘, 다양함, 지루하지 않음, 삶에 대한 경건함, 진지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3학년9반 학생 생각."(김진규)


"비틀즈 음악은 세대를 초월한다"

사실 요즘 젊은 세대, 특히 10대는 비틀즈라는 명성은 들어 알고 있지만 음악을 들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정규음반을 살 만큼 비틀즈가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두장짜리 베스트 앨범은 10대에게 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비틀즈는 '음악 듣기'의 출발점인 셈이다. 마치 그들의 부모가 비틀즈를 듣고 팝송에 귀를 기울였듯이 그들도 'Yesterday'로부터 음악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길이 록으로 가는 것이든, 힙합으로 가는 것이든 그건 상관없다.

또 그들의 형과 누나가 'Let It Be'를 들으며 심란한 마음을 달랬듯이 그들도 공부에 지칠 때, 어딘가 쉴 곳을 찾고 싶을 때 무심코 들려오는 비틀즈의 노래에서 마음의 위로를 찾는 것이다. 혹은 심장을 뛰게 하는 'Come Together'를 따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그리고 "레논의 노래가 좋다", "매카트니의 노래가 더 낫다"로 가벼운 언쟁을 벌였던 그들의 선배처럼 그들도 조금이라도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비틀즈를 모르고서는 또래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비틀즈 1'은 가장 손쉬운 대중음악의 입문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장 손쉽게 기댈 수 있는 휴식처 같은 것이며 또래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기도 하다.

1964년 비틀즈를 세대구분의 상징으로 정의했던 평론가들은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2000년, 비틀즈 해체 후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비틀즈의 음악은 세대를 초월한다"고.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05 17:5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