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atles] 4인 4색의 절묘한 조화, "신화는 계속된다"

짧은 역사 긴 열풍…리버풀의 樂童들

비틀즈의 역사는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에서 시작되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존 레논(리듬 기타)과 링고 스타(드럼)가 태어났고 1942년에는 폴 매카트니(베이스)가, 그 이듬해에는 조지 해리슨(리드 기타)이 태어났다.

네 사람 모두 전형적인 노동계급 출신으로 10대 초ㆍ중반부터 미국에서 건너온 로큰롤에 푹 빠졌다.

1957년 '쿼리멘'이라는 그룹을 이끌고 있던 레논은 교회 피크닉에서 매카트니를 만났고, 얼마 뒤 매카트니가 그룹에 가입하면서 '20세기 최고의 콤비'로 불리는 레논-매카트니 팀의 공동작업이 시작되었다.

그해 말 매카트니의 소개로 해리슨이 가입했고 1961년 리버풀의 음반가게 주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이들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 사이 그룹은 몇번의 멤버 교체를 거치며 4인조로 개편되었고 이름도 '비틀즈'로 바뀌었다.

또 이 무렵 계속된 함부르크 원정 공연은 비틀즈의 레퍼토리와 연주실력, 무대 매너 등을 일취월장시켰다.

엡스타인은 그때까지 가죽 잠바와 꽉 끼는 바지, 기름 바른 머리 등 불량소년에 가까웠던 비틀즈의 이미지를 중성적인 느낌의 더벅머리, 칼라 없는 피에르 가르텡 슈트를 입은 말끔하고 유쾌한 젊은이로 바꿔놓았다.


1964년 미국진출, 단번에 팝시장 석권

1962년 비틀즈는 몇번의 고배 끝에 EMI 산하의 팔로폰 소속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음반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첫 싱글 녹음 직전 스타가 그룹에 가입, 최종 라인업이 확정되었다.

이듬해 10여시간 만에 녹음을 끝낸 첫 음반 'Please Please Me'와 세번째 싱글 'From Me To You'가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영국에 비틀즈 열풍이 시작되었고 '비틀매니아'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비틀즈는 1964년, 그때까지 영국 밴드들에게 난공불략으로 여겨졌던 미국 시장의 공략에 나서 1월 'I Want To Hold Your Hand'로 미국 차트 1위에 오르고 2월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 7,000만 시청자를 한 순간에 매료시켰다.

수도 없는 비틀즈 캐릭터 상품이 등장했고 비틀즈 공연에서는 기절하는 소녀 팬이 속출했다. 이들의 첫 영화 'A Hard Day's Night'는 개봉 첫주에 130만 달러의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고 비틀즈의 뒤를 이어 영국 그룹들의 미국 침공이 시작되었다.

1965년 비틀즈는 영국 왕실로부터 주로 귀족과 군인에게 수여되었던 MBE 훈장을 받아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다.

그해 비틀즈는 이후 전세계 가수들에 의해 가장 많이 불리게 되는 'Yesterday'를 발표했고 시적이고 정치적 의미를 함축한 노랫말, 기존의 팝 공식에서 벗어나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앨범 'Rubber Soul'을 내놓았다.

"비틀즈는 지금 예수보다 인기가 있다"는 레논의 발언으로 미국에서 반비틀즈 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것도 이 무렵이다. 전작에서 선보인 음악적 실험은 이듬해 발표된 'Revolver'에서 한층 심화되었고 비틀즈는 8월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공연 중단을 선언했다.


서구젊은이들의 시대정신 담긴 노래

1967년 6월 발매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스튜디오 밴드로 변신한 비틀즈를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4개월의 녹음시간과 7만5,000달러의 제작비,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4 트랙 녹음기술을 사용한 이 앨범에서 비틀즈는 당시 서구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던 마약과 명상, 혼돈과 이상의 시대정신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싱글들의 모음을 벗어난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또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 소설을 읽는 듯한 함축적인 노랫말로 지금도 팝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음반은 비틀즈의 내리막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해 8월 매니저 엡스타인이 약물과용으로 사망함으로써 비틀즈를 지지해오던 가장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졌고 이듬해 비틀즈가 야심을 갖고 설립한 기업 애플의 부실경영은 네 사람 사이에 갈등을 증폭시켰다.

1968년 9주간 빌보드 1위에 오른 'Hey Jude'에 이어 발표된 'The Beatles'(일명 White Album)는 사인사색로 갈라진 네 사람의 솔로 곡들을 모아놓은 듯 했다.

특히 레논의 내면적 갈등과 정치지향, 매카트니의 단순하고 긍적적 팝 멜로디, 해리슨의 동양적 신비주의는 절충점을 찾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오노 요코의 등장은 레논과 비틀즈 멤버와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았다.


멤버들 심각한 갈등, 70년 공식해체

1969년 비틀즈는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듯 자신들이 출발했던 초기 로큰롤 사운드에 기반한 음반 'Let It Be'의 녹음과 동명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변호사 선임문제, 레논의 솔로 앨범 발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커져만 갔고 애플사 옥상에서 촬영된 'Get Back'은 결국 이들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7, 8월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를 녹음했다. 레논의 'Come Together', 해리슨의 'Something' 등이 큰 사랑을 받았던 이 음반은 멤버들 사이의 심각한 갈등과는 달리 네 사람이 조화를 이룬 나무랄 데 없는 수작으로 비틀즈 음반 중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끊임없는 해체설이 나돌던 1970년 4월 매카트니가 비틀즈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비틀즈는 공식 해산을 결정했다.

해산 직후 'Let It Be'와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비틀즈의 18, 19번째 차트 1위 곡이 되었고 'Let It Be' 시사회가 열렸다. 하지만 시사회에는 네 사람 중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05 18:58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