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스타열전(39)] 3R소프트 유병선(下)

타이밍과 스피드가 기업경영의 핵

3R소프트에 대한 멜닷컴의 전격적 인수제의는 창업동지 5명간에 의견대립을 가져왔다. 사업확장에 필요한 자금부족을 고민해왔던 몇 사람은 "e메일 솔루션 분야에서 아시아권 대부가 될 수 있는 기회"라며 매각논리를 폈다.

그러나 유병선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조건이 마음에 안들었어요. 멜닷컴측이 제시한 금액이 옵션에 따라 400만~800만 달러선이었는데 많이 받으려면 옵션이 까다로웠죠.

재창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3년간 일하고, 연 매출도 600만 달러는 달성해야 하고."

고민끝에 유 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가보자는 것. 연 매출이 600만 달러정도라면 국내에서도 괜찮은 투자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때부터 1년만에 회사 규모와 가치는 최소한 10배나 높아졌다.

그때 멜닷컴에 회사를 넘겼으면 멀쩡한 유망 벤처기업 하나를 싼 값으로 해외에 거저 주는 꼴이 됐을 것이다.


"욕심으로 기업의 거품 만들지 말아야"

다행스런 마음은 한 순간, 인수제의를 거절한 뒤 그가 겪어야 했을 어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래서 요즈음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저에게는 별로입니다. 이런 정도는 어려움 축에도 못 끼죠."

"지금 되돌아볼 때 가장 어려웠던 게 뭔가요?"

"사람 자르는 것." 멀쩡하게 같이 잘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는 소리는 정말 못할 짓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기업을 경영하면서 쓸데없는 욕심으로 거품을 만드는 CEO(최고경영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몇번이나 다짐했다고 한다.

유 사장이 경영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또 한가지는 유동성의 확보. 현금 유동성이 흔들리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는 점을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확신에 찬 것도 그 때문이다.

"가산전자가 넘어지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세진컴퓨터랜드도 마찬가지지요. 최소한 1년 정도의 캐쉬플로어(현금 유동성)를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사업성을 내다본, 확실한 투자 외에 이득이 나지 않는 사업에 손을 대서는 안되지요."

다른 질문을 던지려는데 유 사장이 불쑥 "앞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되려면 변신이 필요한데 변신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며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아침 9시30분에 나와서 밤 11~12시까지 일했는데 요즘은 고객이 8시 반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최소한 1시간 정도는 빨리 나와야 하는데 그게 정말 안되네요."

언뜻 우스개 소리 같지만 CEO가 자신과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가 굳이 생활습관까지 바꾸고, 또 바꾸려는 노력은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 CEO가 해야 할 3R소프트의 새로운 도전이 아닐까.

"사업이 어려울 때는 해외 쪽을 잘 파고들어야 한다"는 그는 이미 해외쪽에도 상당한 기반을 구축해 놓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독일어, 말레이어 등 다(多)국어 버전도 출시했다.

또 6월에는 터보리눅스와 'TURBOLINUX MAIL SERVER PRO'제품의 공동개발 및 판매제휴를 맺었고 7월에는 3R소프트 저팬, 3R소프트 차이나를 세워 아시아 진출의 전진기지를 구축했다.

미국 대륙에는 지난해 '리눅스 엑스포'에 참여, 레드햇(Redhat) 리눅스 6.1에 기본 번들로 공급하면서 진출을 본격화한 상태. 특히 지난 8월 주력제품인 @MESSAGE가 미국 IBM 본사로부터 '넷피니티 서버프루븐'(NETFINITY ServerProven) 인증을 받아 미국 수출 물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3R소프트측은 기대하고 있다.

해외판매는 소비자가 @MESSAGE를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설치한 뒤 대금을 카드로 결제하면 3R소프트측에서 보안키(통칭 라이센스 키)를 제공하는 식이다. 아직은 전체 판매의 25%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그 비중을 더욱 높일 예정이다. 3R소프트의 올해 해외부분 매출 목표는 200만 달러 정도다.

그는 기업경영에서 타이밍과 스피드를 중시한다. 인터넷의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만큼 타이밍과 스피드를 갖추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것.

"오늘날 인터넷 기업의 최강자로 꼽히는 아메리카온라인(AOL)이 몇년 전만 해도 컴퓨서버와 진(시어스와 IBM의 합작사)에 뒤진 3위 업체였어요.

그런데 AOL이 컴퓨서버를 인수하고 1위로 올라섰어요. 6개월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터넷 분야죠. 마치 생물처럼 인터넷 분야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6개월 앞을 먼저 보고 뛰어야 상대를 앞설 수 있습니다."


분기마다 전직원 워크숍, 정보공유

그의 '인터넷 생물론'은 자연스럽게 @MESSAGE의 사업성으로 이어졌다. 6개월 앞을 제대로 보려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조직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 시스템으론 @MESSAGE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3R소프트는 내부적으로 @MESSAGE에서 한발 더 앞서 나가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에 행동의 속도를 높이려면 모든 정보를 항상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정한 기간마다 결산을 해야 한다"는 유 사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3R소프트는 매분기마다 전직원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갖는다.

올해 초에는 전직원이 일본에서 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일본 진출을 앞둔 다목적 워크숍이었다는 게 유 사장의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달 계획을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합니다. 활동상황을 기업내 전산망에 띄워 직원들의 감시도 받지요." 쉴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사무실 칠판에 빼곡히 적힌 11월 '이 달의 계획표'를 보면 그의 '삶의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2/0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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