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막 내린 '조·고' 장편 드라마

운명의 한판. 코흘리개 시절에 프로가 되어 무려 30년을 오로지 바둑에만 전념해온 조치훈에게 이보다 더 역사적이고 의미있는 한판의 승부가 또 있을까.

혹자는 일인자 기성이 되었을 때나 10세에 명인에 올랐을 때나 대삼관왕을 차지한 기쁨이 더 클 것이라고 말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자아를 확인한 이 한판이 조치훈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각별한 한판일 것이다.

과거 조치훈은 3패 후 4연승을 이룩한 적이 두번 있다. 그러나 이 한판은 경우가 틀리다.

이 한판을 패한다면 조치훈은 무관이다. 무관이야 또다시 타이틀을 따면 된다고 치지만 불세출의 라이벌 고바야시가 대삼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이루게 된다. 남의 떡이 커지는 것이 싫은 건 아니다. 왠지 지기 싫다는, 뜨거운 무엇이 심장 아래서 용솟음쳐온다. 바로 목숨을 걸고 두고 싶은 심정이다.

3연패로 몰렸을 때 조치훈이 시도한 이른바 4연성 포석을 또 들고나온다. 돌이켜보면 3연패를 당했을 때 조치훈은 맘껏 두어보기로 했다. 지금도 그런 의지가 아닐까.

조치훈은 솔직한 사람이 아니던가. 이젠 열심히 둔다는 건 거짓말이다. 이기고 싶다. 이기지 않으려면 뭣 하러 이렇게 힘들게 쫓아왔는가. 그렇다. 이겨야한다.

고바야시도 지난 4국과는 달리 고저장단에 신경을 쓰며 서두르지 않는다. 피차 단단하게 흘러간다. 역시 소문난 잔치상에 먹을 건 없다. 먹어야 맛인가. 이기기 위한 레이스일 뿐이다.

바둑은 어느 한 곳을 결정하지 않고 이쪽저쪽을 건드리면 바둑판을 빙글 돌면서 국지전만 이어진다. 탐색전이라 할 것이다. 고수의 바둑은 역시 결정보다는 변화의 여지에 미련을 두는 식이다.

과연 누가 더 인내력이 있는가. 먼저 튀어나가면 35km 이후의 레이스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안나갈 수도 없다.

바로 이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고바야시가 먼저 튄다. 실리로 20집 가까운 흑의 돌을 취한 것. 그러나 도도하게 세력을 펼친 흑세를 의식한다면 중앙에다 삭감을 서두르는 것이 장기전상 좋은 자리였다. 성급한 이는 패착이라고 주장한다.

고바야시가 실리를 선호한다지만 중앙에 대세력의 중심점을 얻어맞아서는 그대로 끝장이다.

결국 고바야시는 흑돌을 한 웅큼 들어내었지만 그보다 더 큰 흑의 세력이 그대로 집으로 굳어지는 꼴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도 반면 10집의 흑우세는 지속되고야 만다.

이런 일도 다 있는가. 3년에 걸친 조치훈과 고바야시의 장편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3패 후 4연승은 조치훈 개인으로는 세번째 쾌거로서, 이러한 진기록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두달전 고바야시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한 후 관전기자가 조치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선생, 이번엔 안되겠지?"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고바야시 선생 기세도 있고."

"3패 후 4연승을 후지사와나 오다케 선생에게 올린 건 30세 이전이니까 이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 관전기자는 얼마나 무안했을까. 끝나고 보니 또 그 결과인 것을..

바둑은 조치훈이 3집반을 이긴다. 최종국의 계가 장면은 서로의 손떨림이 수분간 지속되며 조심스레 이루어진다. 카메라 플래시는 전부 조치훈을 향해 터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충혈된 눈이었고 의외로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게 이런 것인가.

<뉴스와 화제>


ㆍ신라면배 2차전 종료-한국 선두 달려

제2회 신라면배 2차전에서도 한국은 계속 우위를 달렸다. 1차전에서 한국은 신예 최철한 3단의 분전으로 선두를 달렸으나, 2차전(제5국~8국)에서는 중국과 일본측도 각각 1승을 올려 비교적 혼전 분위기로 만들었다. 최종 3차전에서 한국은 최명훈 7단이 나설 것으로 보이며 중국은 창하오 9단이 나선다.

한편 한국은 최7단을 비롯, 이창호와 조훈현이 남아 있고 중국은 창하오와 마샤오춘, 일본은 야마시타와 가토가 남아 있다.

ㆍ유창혁 삼성화재배 도전-1국서 완승

유창혁이 생애 4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12월13일부터 열리는 제5회 삼성화재배 결승 5번기 제2국에서 유창혁은 일본의 야마시타와 격돌한다.

11월에 열렸던 제1국에서 완승을 거두었던 유창혁은 상금규모 1위 삼성화재배 우승이 유력한 상태다. 귀추가 주목되는 제2국은 바둑채널 46이 생중계하고 인터넷으로도 생중계 될 예정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12/05 22:0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