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순천 선암사

까만 눈을 가진 청솔모가 나무 위를 바쁘게 오간다. 마지막으로 걸려있던 나뭇잎이 떨어진다.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가랑잎이 한꺼번에 부스럭거린다. 산사로 오르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이미 겨울 깊숙한 곳에 들었다.

선암사(仙巖寺ㆍ전남 순천시 승주면 죽학리)는 전남 도립공원 조계산(884m)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국내에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비로암 자리에 신라말 도선국사가 큰 절을 일으켰다.

한때 60여 동에 달했던 대가람은 전란과 화재를 거듭겪고 20여동으로 줄었지만 그 위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제400호) 등 7점의 보물을 중심으로 깊이와 아름다움이 건재하다.

산 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번화한 반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을 내뿜는다. 절 다운 절이다.

선암사 계곡길은 아름답다. 사하촌(寺下村) 괴목마을에서 1.5㎞ 정도를 걸으면 절에 닿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길이다. 자동차로 오르는 사람은 곧 후회한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왼편의 계곡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걸음을 맞춘다.

이 길은 자연이 스스로 빚은 수목원이다.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이름조차 낯선 나무가 늘어서 있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소갯말을 걸어놓았다.

얼마 못가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숲과 만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직립의 아름다움. 광장과 식수대가 있고 삼나무 아래 깊은 그늘 속에 벤치가 놓여있다. 잠시 걸음을 쉰다.

쉼터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昇仙橋). 보물로서의 기품이 당당하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았다. 300년 가까운 세월의 폭우와 급류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선암사 경내는 보수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단청이 바랜 절 집들이 제 색깔을 입고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가 자리한 조계산은 백두대간의 호남정맥을 호령하는 산이다.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힌다. 비교적 완만한 산세에 등산로가 깔끔하게 조성돼 있어 연인이나 가족 단위의 산행에 적합하다.

선암사-정상-굴목재- 마당재-송광사의 완주코스는 약 10㎞로 4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지 않는 능선코스는 8.2㎞다. 문의 순천시 산림과(061)749-3512.

조계산에서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인 순천시 낙안면에 사적 제302호인 낙안읍성 민속마을(061-754-6632ㆍ사진)이 있다.

민속마을 중에서 최초로 사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조선시대의 성(城)과 동헌, 객사, 임경업 장군비(碑), 장터, 초가 등이 원형대로 잘 보존돼 있고 그 건물에서 아직도 108세대의 주민이 생활한다. 옛 주막을 닮은 마을 주변의 음식점도 운치가 있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0/12/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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