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노근리(NO GUN RI)의 상징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1950년 7월 26일 발생한 미군의 피난민 학살사건을 'NO GUN RI Massacre'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1999년 9월 30일 AP통신이 이 사건을 기획 보도한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육군성 장관에서 진상조사를 명령하면서 NO GUN RI를 'NO Keun-Ri'라고 했다.

굳이 언론이 NO GUN RI라 표현하는 것은 노근리에는 베트남의 '미라이'에서와 같은 민간인 학살 총격이 없어야 한다 (NO GUN)는 기대 혹은 상징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이뤄진 한미 양국의 진상조사에 대한 공동 발표문 합의에서는 "총격은 있었지만 학살은 아니다"는 미국측 결론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내년 1월20일이면 백악관을 떠나는 클린턴 대통령은 육군성 장관 루이스 칼데라에 보낸 명령서에서 "어느 전쟁에 참가하고 있거나 참전했던 용사들과 세계에서 최선의 군대를 갖고 있다는 미 국민의 신념, 그리고 한국 국민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번 사건이 매우 중요하니 철저히 조사해 달라"고 썼다.

결국 한미 양국 조사단은 클린턴 대통령이 기대했던 참전용사의 사기, 미군의 위상고수, 한미우의관계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 못한채 임기안에 결론을 내기로 하고 활동을 끝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100여명의 사건 관련 미군 생존자의 증언, 100만 쪽이나 되는 관계서류를 검토한 끝에 "NO GUN RI 사건은 돌연한 공포에 쌓인 미군들에 의해 저질러진 전쟁중의 한 사건이며 피난민 학살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군 국방부 조사단은 "총질한 군인들에게 명확한 상부명령서나 구두명령은 없었다. 사망, 부상한 피난민 수사는 언론 보도나 한국측 주장(248명 사망)처럼 많치 않다"는 것이다. 조직적 명령이 없었기에 베트남의 미라이 사건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때 미 기갑 1사단 7연대 2대대 H중대는 큰 압력 아래(대전을 점령한 인민군 제3.4사단의 낙동강 진격)에 있었으며, 사기가 떨어진 (한국도착, 이틀만에 전선 배치), 상태였다. 나쁜 일이 일어 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보도로 올해 퓰리처상과 컬럼비아 대학이 주는 온라인 보도상을 수상한 AP통신은 "적어도 육군의 상위 3개 본부와 공군사령부에서 미군 전선에 접근하는 한국인은 적으로 취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AP는 미 기갑1사단 사령부는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통과시키지 말라. 전선을 통과하는 자는 모두 사살하라. 다만 부녀자와 어린이에게는 신중하라"고 예하부대에 명령했다.

특히 지난 11월20일께 국방부 조사단에서 증언한 7연대 2대대 통신병인 로렌스 레빈 상병(현재 72세 음성녹음 엔지니어)과 제임스 크룸 상병(현재 72세 엔지니어)은 "AP의 보도가 맞다"면서 증언했다.

두 사람은 "대대 작전과에서 피난민 저지대책이 세워졌다. 중화기 중대 및 소대에는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고 증언했다.

"명백한 것은 사단이나 그 이상의 지휘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는 점이다. 다만 문서는 남기지 않는 게 한참 전투중일 때는 당연하다. 전선의 어느 사수가 '저쪽 소대가 사살하니 우리도 하자'면서 사살에 나설 수 있겠는가. 명령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2대대 대대장이었던 허버트 헤이어 중령(현재 89세)은 "내가 만약 사단으로부터 그런 명령을 받았다면 놀랐을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고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 반박했다.

미국 조사단에는 한국전쟁 참전 예비역 장군과 역사가 등 8명의 민간인이 자문역으로 참가했다. 그 자신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캘리포니아주 출신 전 하원의원이었던 피트 맥크로스키는 "조사단의 결론에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적어도 1명의 장교라 9명의 사병이 명령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조사단의 결론이 명령이 없었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사단 자문관인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어네스트 메이('역사의 오용'의 저자)는 "노근리에 있던 군인들이 잘 지휘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위원들이 사건이 '심사숙고한 잔학 행위는 아니었다'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역사에 대해 조사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서 일것이다. '심사숙고 하지 않은 잔학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보상하는 것이 미군이 세계에서 최선의 군대가 되는 길일 게 분명하다. 그것이 NO GUN RI의 상징이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12/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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