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위험의 관리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기미가 보이지만 미국에서 소위 '닷컴 경제'가 한창 맹위를 떨치자 세계 도처에서 인터넷을 통한 신경제로의 진입과 도약을 위한 움직임이 발을 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벤처열풍이 휩쓸고 지나가 지금은 그 후폭풍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세계가 인터넷으로 묶이면서 물자 및 정보의 교류에 대한 장벽이 무너지자 이제는 서비스 산업도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면서 구미 선진국의 기업이 앞다투어 새로운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보험이나 투자자문 등 금융산업이나 컨설팅 부분에서는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기업이 진출하여 국내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기업이란 이윤을 좇는 생물이어서 우리나라에 세계 유수의 서비스 기업이 들어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시장이 성장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서비스 산업 중에서 미국이 특히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법률산업.

물론 아직도 세계 최대의 로펌(법률 사무소)는 유럽에 본부를 두고 있으나 최근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도 보듯 '모든 길은 법원으로 통한다'는 미국 사회에서 단련된 변호사들이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경제적 강자인 미국이 국제거래에서 일어난 분쟁에 대해 자신의 법률ㆍ제도를 적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만큼, 세계 각국에 뻗어나간 미국 기업을 발판 삼아 미국의 대형 로펌도 유럽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많이 진출했다.

특히 수출 위주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아시아 나라에게 있어서 미국은 또한 가장 큰 소비시장이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로의 진출이나 진출 후의 어려움 등에 대해 미국 로펌의 도움을 많이 얻는다.

우리나라에서도 WTO에 가입하면서 법률시장 개방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양쪽 모두에 이해관계가 있는 필자로서는 법률시장 개방의 찬반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법률시장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과연 미국의 유수한 로펌이 우리나라에 진출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문이 생긴다.

최근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다. 아시아 국가들과 관련된 일은 많이 하는 그 친구는 "한국은 재미있는 나라"라고 한다.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는 정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 몇 개 밖에 없기 때문에 로펌의 사업 기회는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몇몇 개의 기업만으로는 이미 일해주고 있는 미국 기업과 이해충돌이 생기기 때문에 새로운 기업이 많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의 사업은 채산이 안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로펌이 진출해 현지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만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대만의 기업은 하루에도 수천, 수만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닥부터 시작, 대다수는 중도에 망하고 거기서 걸러진 기업들이 튼튼한 중간층을 형성하고 그중에서 몇몇은 세계적 대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터운 중간층 기업들을 상대로 로펌 사업을 할 수 있으며 또 그들은 로펌을 사업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여러 종류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서비스 산업도 이러한 위험을 막거나 줄여준다는 담보로 돈을 번다. 보험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위험을 담보하는 것이고, 은행이나 증권도 따지고 보면 보유하고 있는 화폐에 대한 위험분산 수단의 하나로 이용되는 것이다.

법률산업도 마찬가지다. 계약서를 보다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사려고 하는 회사의 자산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소송제기에 대한 이해득실을 미리 살펴봄으로써 최대한 위험을 회피하고 분산시킨다.

그러나 이면계약으로 투자위험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정치하고 세밀한 법률산업이 굳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우리도 이제는 제도적으로 시장에 의하여 위험을 관리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12/12 14:4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