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인사 5일간의 드라마

편가르기·비방·유언비어 등 유례없는 진흙탕 싸움

12월5일부터 진행된 경찰 수뇌부 인사는 군웅이 할거하는 한편의 사극을 연상케 했다.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자리를 둘러싼 조직내의 피튀기는 암투와 정적 제거, 특정지역의 요직독점, 혜성처럼 등장한 신실세(新實勢)의 학력조작 의혹과 낙마까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인사드라마가 5일간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결국 경찰 안팎의 권력다툼에서 이무영 청장은 살아남았고 치안정감 5명이 잇따라 옷을 벗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초고속 승진으로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인물로 떠올랐던 박금성 신임 서울청장은 여권내 실세간 물밑 마찰과 학력 허위기재 의혹으로 취임 2일만에 퇴임하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피튀기는 권력암투

경찰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경찰 내부에는 청장파(派)와 3명의 치안정감파(派)간 줄서기와 편가르기, 상호비방과 유언비어가 횡행하는 등 유례없는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이무영 경찰청장이 유임을 위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가운데 윤웅섭 서울청장과 이헌만 경찰청 차장, 김재종 경찰대학장이 청장 자리를 놓고 각자의 지연과 학연, 정치적 인맥을 동원, 피튀기는 암투를 벌였다.

청장 인사가 한달 가량 지연되면서 '현 청장이 국정원 차장으로 영전한다', '후임에는 특정지역 인사가 될 것', '윤웅섭 서울청장이 후임을 내락받았다'는 등의 루머가 파다하게 돌았고 '이 청장이 측근들과 함께 헬기를 타고 선친 묘소에 성묘를 다녀왔다', '모 치안정감이 여권 실세에게 줄을 댔다', '특정지역 위주의 요직 인사안이 청와대에서 반려됐다'는 등 근거도 불확실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권력암투에 치안감과 경무관급까지 합세,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모 치안감은 누구에게 줄을 섰다', '모 간부는 XXX파(派)다' 는 뒷말이 무성했고 간부들이 출신지역과 학연별 모임을 갖거나 인사청탁을 하는 등 물밑 움직임도 부산했다.

경찰청의 고위 간부는 "11월초부터 청장교체 및 후속 인사설이 나돌면서 대부분 간부들이 업무보다는 인사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며 "어느 때보다 줄서기와 편가르기, 유언비어가 난무, 조직 전체가 흔들거릴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치안정감 전원퇴진과 호남실세의 요직독점

5일 이후 이뤄진 경찰 수뇌부 인사는 한마디로 호남인맥의 요직 독점과 기존 수뇌부의 무더기 퇴진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 청장이 치열한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면서 서울청장과 경찰대학장, 경찰청 차장, 해양경찰청장 등 4명의 치안정감이 모조리 옷을 벗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초 여권 수뇌부는 서울 출신인 윤웅섭씨나 부산 출신인 이헌만 차장을 경찰청장으로 내세우고 호남인맥을 서울청장에 앉히는 시나리오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청장이 여권 실세와의 탄탄한 인맥과 경찰 개혁의 성과를 내세워 막판에 '윤웅섭 바람'을 잠재웠다는 후문이다.

이 청장의 유임이 결정되면서 '1인자 싸움'에서 광주일고 인맥을 동원, 가장 적극적으로 '반(反)이무영' 전선을 폈던 김재종씨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윤웅섭씨는 '괘씸죄'가 적용돼 곧바로 퇴출대상에 올랐고 막판 권력다툼에 합세했던 이헌만씨도 한꺼번에 물갈이되는 운명이 됐다.

또 이번 인사로 호남인맥이 요직에 대거 약진하면서 호남의 요직독점 논란이 일었다. 전북 전주 출신인 이 청장을 비롯, 서울청장에는 박금성(전남 영암) 경기청장, 경기청장에는 이대길(전남 완도) 경남청장, 경찰청 정보국장에는 박일만(전남 고흥) 부산청 차장이 임명됐다.

호남 출신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을 동시에 맡은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경찰은 영남과 충청 출신도 치안정감에 고루 기용됐다고 해명했지만 '구색갖추기'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특히 박 신임 서울청장의 발탁은 여론의 집중적 화살을 맞았다. 간부후보생 19기로 목포해양고 출신인 박 청장은 이 경찰청장과 동기인 데다 여권내의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찰내 실세로 승승장구해왔다.

박 청장은 1998년 3월 서울 동대문서장(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 서울청 101경비단장을 지내다 1999년 11월 경기청장으로 발탁된 뒤 또다시 1년만에 서울청장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박 청장이 서울청장에 임명된 데는 고교 선배이며 여권내 실세인 김옥두 민주당 사무총장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조차 "불과 2년반만에 3계급을 승진하는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무리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은 데다 1994년 수원 남부서장 재직 당시 수뢰혐의로 직위해제(차후 무혐의 처리)된 경력도 문제가 됐다.


박청장 이틀만에 낙마 신기록

초고속 승진으로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박 청장은 학력허위 기재 의혹이 제기되면서 취임 이틀만인 9일 자진사퇴 형식으로 옷을 벗었다. 박 청장의 경찰인사기록상 출신대학과 고등학교가 실제와 달랐던 것.

인사기록카드상 박 청장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3년간 조선대 법과를 다니다 중퇴한 것으로 기재돼 있으나 조선대에는 전혀 재학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박 청장은 이 기간동안 육군 행정병으로 군복무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 청장은 "1967년 광주77병원 인사과에서 근무중 상관의 허락을 받고 조선대 야간대학에 '청강생'으로 1년간 학교를 다녔으나 오래전 일이라 재학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그가 직접 기재한 '조선대 3년 재학'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출신고교도 문제가 됐다. 목포해양고를 나온 박 청장은 지금까지 목포고 출신으로 알려졌고 전산 인사기록에도 목포고로 기재돼 있었다. 인사카드 원본에도 목포고로 기재됐다 1998년 이후에야 목포해양고로 무단 수정된 것으로 밝혀져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박 청장은 이에 대해 "최초 인사기록이 잘못된 사실을 1997년 말에야 알게돼 수정을 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남 영암경찰서 관계자는 "박 청장이 경찰임용 당시 스스로 제출한 신원조회 기록에는 1959년 목포고를 입학, 1962년 졸업한 것으로 돼 있으며 경찰 신원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로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박 청장은 여론의 집중비난에도 불구, "학력과 관련해 나는 떳떳하다"며 버텼지만 김 사무총장을 비롯한 여권 실세들이 "박 청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자 결국 9일 오후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 박 청장의 학력조작 의혹사건과 사퇴 배경에는 여권 실세간 갈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청장이 언론에 목포고 출신으로 발표되고 모 언론에 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이 목포고 동창회에서 박 청장을 축하하는 만평이 게재되자 6일부터 목포고 출신의 항의가 잇따랐다.

박 청장 발탁은 목포고와는 상관이 없는데 한 최고위원을 배후로 부각시켰다는 반발이었다. 결국 박 청장의 출신고교를 재확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박 청장의 학력 허위기재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안팎에서는 "박 청장이 이틀만에 낙마한 것은 학력 허위기재 자체 보다는 자질 검증 절차도 없이 무리하게 호남인맥을 전면에 배치한 여권의 잘못된 인사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높다.

이번 인사파문으로 인해 5명의 치안정감이 3일만에 한꺼번에 옷을 벗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경찰조직은 인적 자원 손실과 인사 공정성 훼손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청장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암투와 특정지역 출신을 밀어주는 억지춘향식 인사로 인해 인사불만과 조직동요, 대외적 신뢰도 손상 등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며 "차기 서울청장 인사는 물론 장기적인 인사운용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사진> 경찰 안팎의 치열한 권력다툼에서 날아남은 이무영 경찰청장(위사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던 박금성 서울 경찰청장은 취임 이틀만에 옷을 벗었다.

<사진>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피튀기는 권력암투가 벌어졌던 경찰청. <김명원/ 사진부 기자>

배성규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0/12/12 19:42


배성규 사회부 veg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