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공포, 유럽은 불안하다

동물성 사료 사용금지, 사료수출국 농가 반발 등 파동 확산

유럽연합(EU)은 12월4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광우병 파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동물성 사료의 사용을 전면 중단키로 하는 긴급 대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EU의 15개 회원국은 내년부터 소는 물론 양, 돼지 등 모든 가축에 대해 동물성 사료를 먹일 수 없고 콩, 옥수수 등으로 만든 식물성 사료를 사용해야 한다.

이번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미 제조된 동물성 사료를 모두 폐기하고 대체사료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20억 유로(2조400억원)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EU는 동물성 사료의 사용을 금지하는 6개월 동안 추가 연구를 통해 동물성 사료와 광우병의 연관성을 정확히 파악한 뒤 동물성 사료의 영구 사용금지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동물성 사료 먹는 유럽가축의 토착질병

이번 광우병 사태는 지난 1996년 영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두번째. 현재까지 광우병으로 영국에서 87명, 프랑스에서 2명이 숨졌다.

의학적인 공식명칭이 '우해면양뇌증'(牛海綿樣腦症:BSE)인 광우병은 뇌수가 스폰지처럼 흐물흐물해져 죽는, 소에 의한 전염성 뇌질환이다.

BSE는 아직까지 과학자들이 그 정체를 규명해 내지 못한 '프리온'(Prion)이란 단백성 전염인자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은 흔히 '인간 광우병'이라고 불리는 데 치매증세와 함께 방향감각을 잃어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고 턱장애와 몸떨림, 경련 증세가 나타난다.

인간 광우병은 장기간의 잠복기를 거치지만 일단 발병하면 어김없이 3개월에서 1년안에 사망에 이르는 공포의 질환으로 아직까지 치료법은 없다.

광우병은 유럽 외에서는 발병하지 않아 동물성 사료를 먹는 유럽 가축의 고유한 토착 질병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럽 축산업과 미국, 호주, 아시아 등 여타 지역 축산업의 최대 차이점은 사료 제조 방식이다. 콩, 옥수수 등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럽 국가들은 소가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료로 동물성 사료를 사용해왔다.

소 도축과정의 부산물은 물론 개 돼지 고양이 등 다른 동물의 폐사체까지 사료 원료로 사용해오다 지난 1996년 영국 광우병 파동 이후 동물 폐사체는 사료원료에서 제외됐다.

이번 광우병 파동은 지난 10월 프랑스에서 카르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광우병 감염의 우려가 있는 쇠고기 8t을 유통시킨 것이 발단이었다.

영국의 광우병 파동 이후 EU회원국 중 유일하게 영국산 쇠고기 수입금지를 고수할 정도로 식품안전에 까다로운 프랑스 당국은 국민건강과 직결된 이번 광우병 파동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당국은 광우병 검사 강화와 도축장의 위생검사 기준의 상향조정 등 조치를 서둘러 내놨다.

그러나 광우병 공포는 순식간에 프랑스 전국을 휩쓸어 유명 스테이크 체인의 매상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각급 학교에서는 급식 메뉴에 쇠고기를 제외시켰다. 프랑스 식당에서는 티본 스테이크가 아예 사라졌고 동물성 사료의 전면금지 여론이 들끓었다.

이때만 해도 광우병 파동은 프랑스에 국한돼 있었고 다른 유럽국가들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축산업계 심각한 타격, 불안한 소비자

프랑스의 동물사료 사용금지조치로 주변국 사료수출 농가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프랑스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파동은 유럽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 폴란드, 아랍국 등 비EU 국가들이 프랑스 등 '문제국가'뿐 아니라 유럽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반적으로 금지하면서 유럽 축산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

물론 프랑스는 EU 회원국들이 우선 '소비자 공황'을 잠재울 목적으로 프랑스산 쇠고기 수입부터 금지하고 있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광우병 발병률이 소 100만마리 당 7마리인 프랑스는 EU국가 중에서도 광우병에 관한한 가장 안전한 국가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광우병 발생건수가 지난해 31건에서 올 들어 125건으로 4배나 늘어났지만 이는 광우병 검사를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항변이다.

현재 EU 국가 중에서 광우병 최고 위험국가는 영국과 포르투갈로서 영국의 광우병 발생률은 100만마리당 100마리에 이른다.

실제로 광우병이 국경을 초월한 유럽의 문제임을 직접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은 프랑스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던 스페인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고 이어 독일에서도 광우병이 발생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유럽 소비자들은 얼마나 많은 소들이 광우병에 감염돼 있고 광우병 감염 쇠고기가 어느 정도 소비자 식탁에 침투해 있는지에 대해 본격적인 우려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를 비롯한 EU 국가 농업장관들과 축산업자들 소비자들이 보는 앞에서 쇠고기를 먹는 장면을 연출해야 할 정도였다.

인간 광우병에 걸려 숨진 프랑스 감염자의 가족은 프랑스 영국의 정부 당국과 EU 집행위를 상대로 광우병 예방조치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등 당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시했다.


EU 회원국 통상마찰로 이어져

EU는 사태 초기에 "유럽의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소비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것을 호소하는 등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공동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고작 소를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강화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회원국 사이에 프랑스산 쇠고기의 수입금지 조치가 확산되고 프랑스가 통계적으로 자국산 쇠고기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반발하는 등EU 회원국 사이에 불화 조짐마저 보이자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동물성 사료의 전면금지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EU당국은 이번 광우병 파동의 대책으로 내년1월부터 30개월 이상된, 광우병 감염이 우려되는 소를 조사하고 내년 7월부터는 30개월 이상된 모든 소에 대해 감염 여부를 검사키로 했다.

30개월 이상된 소에 대해서만 검역을 실시하는 것은 EU 당국이 지난 1998년 6월부터 소에 대해 광우병 방지 조치를 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검역확대 조치에 따라 광우병 검사를 받게 될 소는 700만 마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과정을 거쳐 소의 광우병 실태가 확인되기까지는1년 이상 걸리는데다 그 동안에도 광우병 발병이 산발적으로 계속될 수 밖에 없어 소비자 불안, 축산 농가 피해, 쇠고기 수입금지조치를 둘러싼 회원국간 통상마찰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창민 파리특파원

입력시간 2000/12/12 20:3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