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세상의 따뜻한 격려가 가장 큰 응원"

교남 소망의 집 태권도반엔 왕자병, 공주병 환자들이 즐비하다. 세상에 자기만큼 멋진 왕자나 공주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처에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다른 취미반 친구들도 태권도반이라면 한수 접고 들어간다. 학교안 뿐 아니라 바깥의 그 누구 앞에서도 기 죽는 일이 없다. 너무 당당하고 밝아서 때론 넘칠 정도다.

남보다 잘 생기고 가진 게 많아서? 아니다. 오히려 평균 지능지수 50. 아무리 높아야 IQ 70을 넘지 못한다. 남들이 말하는 '정신지체아'들이다.

찾는 부모조차 없다. 한점 피붙이도 없는 고아에다 다운증후군, 자폐증, 간질 등등 장애유형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래뵈도 전국에서 보기드문 장애인 태권도반. 1997년 국기원 태권도 한마당 행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연례 발표회 때는 물론 각종 대형행사 때마다 인기리에 초청되는 자랑스런 마스코트다.

일반 태권도인에 비해서도 만만찮은 실력이니 아이들의 왕자병 증세도 이해해줘야 한다. 함께 있기만 해도 덩달아 생기가 오를만큼 그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다른 건강한 아이들과 다를게 없어요"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이 사람의 탓이다. 태권도 사범 김화숙(45)씨. 그가 처음 소망의 집을 찾아든 3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달랐다. 세상의 장애인 대접이 늘 그랬듯이 무관심과 소외 속에 풀이 죽어있던 아이들. 울기도 잘 하고 툭 하면 삐지기가 특기였다.

그 허약하던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지 몇해만에 아이들이 바뀌었다. 이젠 너무 의기양양해서 은근히 걱정. 그러면서도 자기 공은 제쳐둔 채 시종 아이들 자랑에 목이 마르는 김씨다.

"아이들이 속을 썩힐 때가 왜 없겠어요. 하지만 진짜 자식이 속 뒤집어 놓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녜요. 미운 짓을 해도 밉지가 않아요. 사실 기회만 닿으면 자꾸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도, 한편으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제가 못 견디겠거든요.

한번 이 예쁜 아이들 좀 봐라, 당신네 신체 건강한 아이들보다 못한게 뭐 있냐, 너무 사랑스럽지 않느냐, 자꾸 그런게 뻐기고 싶어져요."

자그마한 김씨의 체구는 몇년사이 청년으로 자라버린 제자들 틈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키로 치면 꼴찌에서 두세번째. 그래도 야무진 통솔력이며 다정다감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겐 엄한 어머니같은 선생님이다.

처음엔 눈치만 보던 녀석들이 이젠 슬쩍 김씨를 기어오를 궁리도 한다. 특히 취재 때처럼 누군가 외부손님만 왔다하면 더 청개구리짓을 벌인다. 준비체조 구령에도 불구하고 혼자 팔찌를 돌리고 선 여학생, 하품하는 남학생, 개그맨 심현섭 흉내를 내다가 한대 쥐어박힌 남학생 등. 장애인이 맞을까 싶을만큼 여늬 개구쟁이들과 다름없는 짖궂고 해맑은 친구들이다.

이것은 사실 선생님에 대한 완벽한 신뢰의 표시이기도 하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김씨가 절대 자신들을 미워하진 않으리라는 것, 결코 자신들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 이미 그것을 간파하고 벌이는 애정의 작당들이다.

김씨가 처음 이곳에 들어선 것은 1997년 7월. 원래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8년전 취미로 태권도를 배운 뒤 초단때부터 강서 청소년회관에서 일반인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규인 관장으로부터 이 일을 제의받았다.

원래 봉사활동은 오래도록 해온 그녀라도 장애인과 태권도가 어울릴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일이 없었다. 한참동안 생각한 뒤 내린 결심은 한번 맞부딪쳐 보자는 것. 누구보다 자신의 다부진 성미를 잘 알고 있을 한 관장이 이야기를 꺼냈을 땐 분명 자신에게 기대하는 무엇인가가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열린 마음

첫 수업이 있기전 고심을 많이 했다. 생전 가르쳐본 적 없는 장애인을 어떻게 지도해야 될까, 장애인 관련 책도 뒤져보고 이론도 더 철저히 공부했다.

뭔가 더 능숙한 지도기술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자칫하면 스스로의 연민이나 아이들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자신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위압당할지도 모를 일.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했다.

첫 수업시간. 그러나 그동안의 수고는 괜한 시간낭비였다. 이론? 따뜻한 위로? 가르치는 기술? 다 필요없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이었다.

도복을 입은 낯선 선생님에게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며 모여든 아이들,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의욕만이 샘솟았다. 마음을 열자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왔다.

실력은 물론 엉망이었다. 일반인들 같으면 하루에 태권도 1장씩 진도가 나갈 것을, 소망의 집 아이들에겐 곧이곧대로 할 경우 몇 년이고 기약이 없었다. 주의도 산만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동작에 속으로 한숨이 나기도 일쑤.

그러나 그것도 김씨에겐 공부였다. 들어오기전 자신의 계획은 얼마나 아름다웠나. 3개월내 태권 3장 마스터, 적어도 1년 6개월 뒤면 국기원 승단시험에서 전원 초단을 따게 하겠다는, 자못 웅대한 포부였다. 그러나 태권 1장을 제대로 익히는데만 1~2년이 걸렸다.

교육방법을 바꿨다. 자세가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일반인과 똑같은 내용으로 밀어붙이며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사실상 태권도는 일반인들로서도 쉽지않은, 정신집중을 요하는 스포츠. 아무리 산만한 장애아들이라도 반복에 이길 장사는 없었다. 서서히 실력이 늘기 시작, 일취월장의 변화를 보였다.

'울지말라. 태권도인은 죽기 전엔 눈물을 보여선 안된다'고도 가르쳤다. 무엇보다 이 거센 세파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까 싶었지만 틈만 나면 그 말을 되풀이했다. 아이들의 눈물도 어느새 줄어들고 있었다.

수업 초창기엔 간질발작을 일으키거나 수련중 허리나 손목을 다치는 학생도 있었다. 사실, 이 순수한 아이들은 말을 너무 잘 들어서 탈. 일반인들 같으면 겨루기때 스스로 요령껏 부상을 피할 일도, 이 아이들은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몸 사리지 않고 실력을 발휘하다가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다치게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언제나 '상대방이 다치지 않을만큼'이라거나 '상대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는게 김씨의 습관.

태권도 수업을 시작한지 3개월째, 김씨는 '큰 일'을 저질렀다. 그해 12월에 열리는 국기원 태권도 한마당 행사에 신청서류를 접수한 것이다. 장애인들이 태권도를 한다는 건 그때만 해도 상상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친김에 모 방송사에도 전화를 했다.

아이들을 보러와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일이든 대충 해치우지 못하는, 통이 큰 여자, 그것이 김씨였다.


태권도 발표회는 감동의 무대

특별한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이 아이들이 여기까지 온 것만도 장하지 않냐'고, 세상의 따뜻한 박수소리를 아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틀려도 괜찮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곳곳에 번쩍대는 조명이며 카메라 세례, 떡 벌어진 일반선수들의 위용에 눌린 아이들은 채 무대에 서기도 전에 주눅이 들어버렸다. 한 아이는 숫제 긴장과 공포에 질려 도복에다 오줌까지 싸고 말았다.

갈아입을 여벌의 옷이 없어 젖은 차림 그대로 나서야 할 상황. 괜찮다고, 우리는 창피한게 아니라고 연신 토닥거리며 아이들을 달랬다.

시범 소요시간 약 8분, 태권 3장 총 60동작을 선보인 그 8분을 위해 석달 이상 몸살하듯 강행군으로 달려온 태권도부였다. 자신들을 관심깊게 지켜보는 관중의 눈길에 아이들은 저마다 신이 나 있었다.

관객이 있으면 200%의 실력을 발휘하는, 실전파 소망의 집 태권도부. 반응은 감동 그 자체였다. 무대 뒤로 찾아온 몇몇 사람은 김씨를 붙들고 울기까지 했다.

"첫 발표회 후 가장 큰 소득이라면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도 자매결연을 맺게 돼 요즘도 틈틈이 만나 태권도 자세를 직접 교정해주는 등 아이들에겐 이제 좋은 가족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소망의 집 태권도부를 위해 청소년회관 일까지 잠정적으로 접어둔 김씨. 두가지 모두 보수 한푼 받지 않고 하는 일이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녀도 두 딸의 뒷바라지와 남편 챙기기에 바쁜, 평범한 주부. 살림솜씨도 소문난 전문주부다.

그만한 실력과 추진력이라면 이 일 대신 다른 부업을 했어도 솔찮게 돈을 모았을 듯 보이지만 김씨에겐 관심밖이다. 이 일이 없었더라도 그녀는 아마 다른 곳에서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봉사하고 있을 사람이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아이들과 헤어질 때다. 처음엔 19명이었던 것이 현재 14명으로 줄기까지, 그녀는 다섯 번이나 속앓이를 했다.

"어제까지도 수업 잘 받고 있던 애가 갑자기 오늘 안 보이는거예요.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다른 수용시설로 옮겼다는 거죠. 일반학생들과는 달리 늘 그렇듯 갑작스럽게 헤어지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는데, 나중엔 이별도 공부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까 조금 나아지더군요. 지난 8월엔 그래도 너무 보고싶어서 다른 시설로 옮긴 한 아이를 찾아갔는데 한창 농사일을 배우고 있는지 새까맣게 탄 얼굴로 삽을 든 채 서 있는거예요.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정말 내 아이가 그런 것처럼 순간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다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보자마자 제 얼굴도 알아보는데다 배운지가 한참 지난 품새들을 고스란히 다 기억해내는 걸 보고 가슴 뭉클했습니다."


세상의 편견이 가장 큰 장애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세상의 편견을 딛고 자신감을 되찾은 아이들. 그러나 이 3년차 공주, 왕자들의 천하도 이제 새 라이벌을 맞을 날이 멀지 않았다. 내년 2월쯤 김씨는 대대적으로 반원을 교체, 새로운 아이들을 데리고 3년전 첫 마음 그대로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김씨 눈엔 아이들보다 더 중증의, 보이지않는 장애인들이 보면 볼수록 많다. 지금도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에 올라타면 신기한 동물을 보듯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심지어 몸을 피해버리는 사람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이 철벽같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그게 안타까와서라도 김씨의 태권도반은 방학에도 수업을 쉬지 않는다. 연중무휴. 집에서도 걸핏하면 "엄마도 교남 태권도반원 같다"는 찬사 아닌 찬사를 듣고 사는, 못말리는 사범 김씨의 겨울엔 평생 방학이 없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0/12/26 22:2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