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 (5)] 개고기는 농경문화의 산물

우리 조상들이 개를 기른 까닭을 생활 면에서 짚어보자. 우리 조상들은 가정의 벽사수복을 위해 개를 기르고, 사냥을 하는데 개를 많이 썼으며, 경비견의 용도로는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흔적이 우리 옛 풍속화나 민화에 드러나 있다.

경비용도의 비중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농경문화를 가졌던 우리 선조들이 한 곳에서 오랫동안 정착해 살아 마을단위의 공동체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이웃 간에 경계의 개념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 사는 사람이면 이웃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냈기 때문에 가옥 구조도 개방적이었다.

주변이 이러하니 경비 용도의 개는 마을에 한 마리만 있어도 충분했다. 혹 낯선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그 한 마리가 졸졸 따라다니며 짖어대어 온 동네사람이 이를 다 알아차렸을 터이니 한 가정의 경비견으로 개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의 농촌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더불어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개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상태 그대로의 개 그 자체를 존중하였다는 것이다. 생활 주변에서 태어나고 크는 개의 생김새를 따지지도 않았고 오르지 자연스런 그것에만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런 경향은 우리 민족의 문화가 자연상태 그대로를 놓고 즐길 뿐 이를 쉽게 변형시키거나 인위적으로 조작하지를 않는 민족 성향에서 기인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원 꾸미기를 비교해 보면 쉽게 드러나는 성향이다.

우리의 정원은 조선 왕실의 정원이었던 '비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일본의 잘 다듬어진 인위적인 정원과는 대조적이다. 더구나 생명이 있는 자연물의 경우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이런 인위적인 작업에 가치를 두지도 않았다.

이는 앞에서 보기를 든 바 있는 <잡오행서>의 좋은 개에 대한 언급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개를 번식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그때 누군가가 그런 개를 번식하여 많이 생산해 냈다면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그 생김새의 !

'신비로움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의 토종개의 생김새에도 이런 자연미가 매우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개 문화의 또 다른 이면인 개를 잡아먹는 풍습은 농경문화민족의 특징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가난했던 옛날 우리 농촌에서 이런 개를 유용하게 쓸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식용이었다. 농경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가장 중요한 가축이고, 돼지는 고기를 한꺼번에 많이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새끼도 많이 낳아 채산성이 매우 높고, 닭도 알을 낳아주니 유용한 가축이다.

그러나 개는 매일 먹고 놀기만 하니 가축으로써의 효용성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한 삼년 키우다 잡아서 그 고기를 부엌 천장에 매달아 건조해 놓았다가 부모가 몸이 아프거나 부인이 해산이라도 하면 소나 돼지고기 대용으로 끓여 내놓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농경문화민족의 식문화를 살펴보고 나면 개고기를 먹는 전통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개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문화와 개를 잡아먹는 문화가 상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들 스스로도 전자의 문화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과거의 궁흉했던 시절과 달리, 요즘 우리 주변에는 먹거리가 널려있다시피 하다.

온갖 고기류들이 조리법을 달리해서 뭇 사람들을 손짓하고 있는 이때에도 개를 꼭 잡아먹고 괜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해야 하는지, 더구나 사람들과 정을 주고받던 개를 잡아먹어 그 개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굳이 박을 필요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 아닐까.

개고기를 먹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가 반드시 반성해야 할 일은 개를 잡는 과정이다. 고기를 맛있게 한답시고 인격 파괴적인 행태로 잔인하게 개를 죽이는 짓은 정말 짚어 보아야 할 일이다.

입력시간 2001/01/0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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