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겨울 한라산

한라산에 대한 산(山)사람들의 생각은 각별하다.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대상이다. '꿈결과도 같은 산사람의 이어도'라 부른다. 무엇이 그토록 신비로울까.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50m)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비전문가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그래서 제주를 찾는 외지인 중 한라산을 오르는 이는 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라산은 험한 등산길이 아니다. 아이들도 쉽게 오르고 심지어 젖먹이를 업은 아빠들도 눈에 많이 띈다. '오르기 쉬운 산'이라는 점도 분명 한라산의 매력이다.

한라산은 육지의 산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젖무덤 처럼 둥그스름한 오름이 연이어 져 있다가 불쑥 정상의 바위산이 나타난다. 그 바위 안에는 백록담이 들어 있다. 산이 아니라 넓은 언덕에 오른 느낌. 독특한 감흥이 인다.

한라산의 사계 중 으뜸은 역시 겨울이다. 제주의 해안은 여전히 푸른 빛이지만 1,000m 고지를 넘어서면 눈의 천지이다. 하얀 정상에서 푸른 해안선을 바라보는 맛도 한라산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다.

제주행의 가장 큰 걱정은 여행비. 항공료, 숙박, 밥값, 렌터카까지 생각하면 1인당 50만 원이 훌쩍 넘어버린다. 그러나 겨울철은 제주 여행의 비수기. 제주도 전문여행사마다 바겐세일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항공료 정도의 액수로 2박 3일 숙박에 자동차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꼼꼼하게 따져보면 1인당 20만원 정도면 2박3일 일정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큰 부담 없이 한라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를 디딜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바로 겨울이다.

한라산의 등산로는 모두 네 곳. 보통 어리목코스, 영실코스, 성판악코스, 관음사코스로 불린다. 어리목과 영실코스는 9부 능선인 윗새오름 까지만 오를 수 있다.

윗새오름부터 백록담까지 구간에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록담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성판악이나 관음사코스로 정상에 올랐다가 다른 코스로 내려온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는 9.6㎞.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봄이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드는 진달래밭을 지난다. 겨울에는 진달래 가지마다 설화가 만발해 있다.

북쪽 탐라계곡을 굽어보며 개미등을 타고 오르는 관음사길은 8.7㎞로 약 5시간이 걸린다. 한라산의 능선 중 가장 가파른 서북능선을 타고 오르는 맛이 일품이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초보자는 다른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백록담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한라산의 절경을 감상하기에는 영실코스가 좋다.

병풍바위로 오르는 바위계단이 조금 힘들지만 계곡 너머로 솟아오른 영실기암(일명 오백나한)의 기이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윗새오름까지 3.7㎞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어리목은 초보자들이 찾기에 적당한 코스. 4.7㎞로 2시간 여가 소요된다.

조금 지루하지만 제주의 해안선과 오름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

한라산 등반의 첫째 요건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 주간 산행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성판악과 관음사코스는 오전 9시 이전에 관리소를 통과해야 산행이 허락된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1/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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