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시장] 도로를 질주하는 '시간의 해결사'

"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도로의 무법자'로 모는 주범은 바로 무관심한 행정당국입니다. 우리도 떳떳하게 인정받으며 일하고 싶습니다."

단거리의 서류나 소화물을 문전 배달하는 사업을 '퀵서비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퀵서비스는 정확한 사업 명칭이 아니라 한 선도업체의 사명(社名)에 불과하다. 정부, 서울시, 담당 구청 어디에도 퀵서비스에 대한 어떠한 규정이나 사업직종 분류가 돼 있지 않다.

설립신고도, 허가도 필요없는 완전 자유업이다. 그야말로 관리ㆍ감독할 관청조차 없는 무주공산의 사업인 셈이다.


서울에만 600여개업체 영업

국내에 퀵서비스라는 배송업이 태동한 때는 1993년경. 당시 잇달아 설립된 대기업 택배사들에 착안해 간단한 문서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이런 소규모 택배회사들이 만들어졌다. 이때 맨 처음 생긴 업체가 '퀵서비스'였고 이것이 일반에 알려지면서 업종 이름도 아예 '퀵서비스'로 인식됐다.

이후 이 사업이 적은 자본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업체들이 생겨나 현재는 서울시에만 600여개가 넘는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퀵서비스업체는 보통 오토바이 배달 기사인 라이더의 숫자로 회사 규모를 파악하는데 100명 이상의 라이더가 소속된 중견업체는 퀵서비스 스마일 스피드 퀵델 씽씽 등 5~6개 정도. 나머지는 20여명 내외의 기사만으로 운영되는 영세업체다.

영업방식은 단순하다. 본부에 고용된 6~8명의 전화 안내양이 배달 주문을 받아 전산에 입력시키면 2~3명의 배차요원이 라이더에게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다. 보통 서울시내의 서류 배달의 경우 8,000원~1만원 정도인데 배달료는 모두 라이더의 몫이다.

대신 라이더는 회사에 월 30~40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라이더의 난폭ㆍ곡예 운행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성과급 제도 때문이다. 보다 빨리, 한건이라도 많이 할수록 수입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라이더의 사고 위험은 높을 수 밖에 없다. 라이더 5년 경력의 박모(31)씨는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하지만 그래 봐야 한달 순수입은 유류비, 치료비 등을 제외하고 150만원을 넘기 힘들다.

동료 중에 교통 사고를 안 당해본 사람이 한명도 없을 정도다"라며 "사고 위험이 높아 종합 보험을 들려고 해도 보험회사들이 받아 주질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스마일서비스의 김기남(41) 대표는 "생명을 걸고 일하는 라이더들이 교통사고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당국이 확실한 법을 제정해 이 업종을 양성화하고 업체들로 하여금 라이더들을 월급제로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오토바이 배송업'법제화 시급

서울시는 지난해 초 이런 문제점을 인식, 법제화에 착수했다가 건교부와 마찰을 빚고 포기한 적이 있다.

이때 문제점으로 지적된 퀵서비스의 문제점은 무질서 운행과 손상 화물 배상. 당시 건교부는 '무질서 운행은 현행 도로교통법으로도 충분히 단속할 수 있고, 손상 화물배상은 어차피 기존 화물운송사업법도 안 지켜지는 판에 오토바이라고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법제화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는 시정개발연구원의 올해 연구과제로 퀵서비스 법제안을 올려놓고 있지만 성사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리 높지 않다.

퀵서비스라는 소택배업은 우리가 흔히 활용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신종 사업이다.

그것을 '규제완화에 역행한다'는 대의명분에 얽매여 법제화를 미룬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명분이 실존을 앞선 수 없는 일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1/09 15:2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