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근의 사이언스카페(40)] 불로장생의 꿈이 현실로

인간게놈지도의 초안이 완성되면서, 점차 무병장수에 대한 꿈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지금껏 인간에 대한 연구는 다른 동물의 연구에 상당부분 의존해 왔다. 그렇듯이 무병장수의 꿈도 초파리의 유전자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싶다.

초파리는 썩은 과일을 먹고 사는 작은 파리다. 이 하찮은 초파리가 거의 100년동안 모든 동물의 연구를 대표하는 모델이었다.

과학자들은 2000년 3월에 완성된 초파리의 게놈지도를 통해 청각, 냄새, 수면, 노화, 파킨스씨병, 신장병, 알츠하이머, 암 등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과 질병을 이해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파리는 1만3,601개의 유전자를, 사람은 약 70,000개의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사람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중 289개를 초파리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177개(60%)의 유전자가 초파리에도 유사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초파리에 대한 최근의 연구결과는 적지 않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코네티컷대학 보건센터의 스티븐 헬팬더(Stephen L. Helfand) 박사팀은 초파리 염색체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평균수명을 37일에서 70일로 2배나 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12월 '사이언스'지 발표).

최고 110일까지 살아남는 초파리도 있었다고 한다. 이 유전자의 이름은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I am not dead yet)'라는 영화의 첫 글자를 따서 'Indy'라고 지었는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세포에서 칼로리 흡수가 억제돼 세포가 다이어트 상태에 들어가면서 수명은 연장된다.

특히 동물은 활동과 에너지의 소비가 줄면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져 있으나, 이 돌연변이 초파리의 경우는 생존 기간동안 아주 활동적이고 건강했다고 한다.

암컷의 경우, 전 생애에 걸쳐 복잡한 구애 의식과 생식을 할 정도의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죽기 전까지 2,000개(정상의 초파리는 평생 1,300개)의 알을 낳았다. 소위 '젊은 노인'의 꿈이 초파리 세계에선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헬팬더 박사는 이 같은 장수 유전자가 사람에게도 있으며, 수명연장과 체중조절이 동시에 가능한 약의 개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람의 수명이 2배 연장되면 120~150살까지 살 수 있게 된다.

헬팬더와 그의 동료는 이 장수유전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다른 연구를 위해 초파리 변종을 조사하고 있던 중에 정상적인 초파리보다 훨씬 오래 사는 변종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Indy 유전자가 너무 지나친 돌연변이를 겪게 되면 오히려 수명이 단축된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경우 이 장수 유전자는 두 개의 염색체에 들어 있는데, 이 중 하나의 유전자가 변하면 전체 유전자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초파리가 장수하게 되는 반면, 만약 두 개 유전자가 모두 없어지면 초파리는 식욕을 잃고 단명하고 만다는 것이다.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리"라는 중용의 미덕이 유전자의 세계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해 9월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결과다. 이 연구는 약요법으로도 수명연장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미ㆍ영 과학자팀은 인공효소를 사용해서 선충(1mm 미만의 작은 지렁이)의 수명을 30~120%까지 연장한 것이다.

물질대사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활성산소(세포와 DNA를 공격하여 세포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됨)를 무력화시켜 물과 비활성산소로 전환하는 효소(superoxide dismutase, catalase)를 사용한 실험이었다. 또한, 유사한 기능을 하는 항산화제의 생산이 촉진되도록 초파리를 돌연변이 시킨 경우에도 수명이

2배까지 연장되었으며, 쥐의 경우에도 유사한 유전자 변이를 통해 수명이 30%까지 연장되는 결과를 얻었다. 방사능 피폭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도 곧 실시될 예정이다. 방사능 피폭은 활성산소를 발생시키고 산화적 스트레스를 만들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불로장수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이제 긴 인생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고삐를 조금씩 당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01/0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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