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희한 한 일, 해괴한 일

2000년은 한반도의 4김씨(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김정일)에게는 희한한 해 였다. 2001년 새해는 어떨까. 적어도 남쪽의 3김씨에게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자 노동신문은 '정론'에서 "2000년을 '희한하게'만들어주신 역사의 주인공은 김정일 장군"이라고 썼다.

북의 사회과학원 언어학 연구소가 편찬한 현대 조선말 사전에는 '희한하다'의 뜻풀이가 "좋은 일이나 물건 또는 대상 등이 좀처럼 볼 수 없게 퍽 드물고 기이하다"로 나와 있다. 예문으로는 '희한한 보물', "병남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무릎을 쳤다. 신통히 생각이 들어맞을 게 희한했다"이다.

병남이를 김정일 위원장으로 바꾸면 지난해의 남북 관계 진전은 그에게 무릎을 칠 만큼 희한하게 들어 맞은 것이었던 게 틀림없다.

북쪽의 한 김씨에게 희한을 안겨 준 것은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폭넓은 햇볕정책이다.

이런 김 대통령은 새해 1월 4일 상생의 정치를 위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만났으나 서로 생산한 것은 이 총재의 '작태', '짓'이라는 평과 '준비된 대통령'의 "이 총재와는 경쟁자도 아니다. 그러나 야당이 협력보다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아직도 임기가 2년여 남은 대통령 의식의 저변에 '실패한 대통령'이 들어 있다는 것은 정말 '해괴한 일'이다.

한갑수씨가 감수한 '국어 대사전'에는 '해괴는 매우 이상하고 괴상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예문은 '해괴 망측한 처사'다.

'상생의 정치'를 말하고 난 후 그 평을 '작태'니 '짓'이라고 한 야당총재의 말이나 '준비된 대통령'이 '실패'를 들먹인 것은 '희한한 일'의 어두운 면인 '해괴한 일'임이 분명하다.

1992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을 당선시키고, 현역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낙선시킨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로스 페로 억만 장자였다. 그는 대통령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자동차 밑에 들어가 출발할 차를 점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 지도를 살피며 어떻게 목적지까지 갈 것인가를 연구하고 몰아가는 사람이다."

대통령직은 역사에 성공이나 실패의 성적표를 얻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 평가는 유권자와 역사가와 대통령학 학자들의 몫이다. 자동차가 망가 질 것을 생각하며, 아직도 남은 200리(재임 500리)를 걱정해야 할까. 이것은 희한한 일일까. 해괴한 일일까.

이런 와중에 8일간 부산에서 칩거중이던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1월 5일 기자회견에 나섰다. "우리 당은 적극적으로 세상을 엮어 나가는데 참여하겠다. 4월 선거 때 국민회의와 공조않는다고는 화가 나서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공조를 안 할 수가 없다."고 말을 꺼냈다. 강창희 부총재 문제에 대해 "좁다란 친구 같으니라구. 연말에 '조반역리(造反逆理)란 휘호를 쓴 것은 우리 당에 있을 일을 생각하고 쓴 것이다."

C일간지의 1월 6일자 사설은 이 해괴한 '역리'의 논리를 비판했다.

"현대사의 아픈 대목마다 JP가 묵묵한 채 있음으로 해서 그가 얼마나 밝은 '내일'을 그의 힘으로 보여 주었으며 또 그의 말 바꾸기와 원칙의 유보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노정치인 JP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이 사설은 주문했다.

그리고 "정치인의 말 바꾸기와 DJP공조의 모습은 그로테스크(괴기)하기 까지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한반도의 4김씨중 현역이 아닌 김영삼 전대통령은 새해들어 1994년 총선자금 수사가 시작되자 전 대통령으로서의 독설에 독을 더했다. 그에게 는 3김씨의 희한한 짓과 해괴한 행동이 예견되었던 탓인지 독설의 강도만 높아졌다.

"나는 재임 5년동안 어느 누구로 부터도 단 한푼의 돈을 받은 적 없다. 김대중씨는 부정축재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국민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대중씨는 정치보복의 화신이며 최후의 발악적 행위를 하고 있다" 전 대통령으로서는 해괴한 톤이다.

21세기의 첫해에 한반도의 4김씨는 제발 '해괴'가 빠진 희한한 일만 했으면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1/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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