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백두대간 구룡령

우리 나라 사람들은 동쪽으로 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백두대간의 진경과 동해의 푸른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고개를 넘기가 문제이다. 주말이면 영동고속도로는 어김없이 혼잡하다.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한 진부까지는 그런대로 소통이 되지만 병목구간(왕복 2차선)인 대관령 고갯길은 그대로 주차장이 된다.

그래서 새로 각광받는 길이 오대산 연봉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6번 국도이다. 고개 이름은 진고개. 고개를 넘어서면 주문진이다. 그런데 이 길도 꽤 알려져서인지 서서히 혼잡해져가고 있다. 다른 고개는 없을까. 요즘 떠오르는 고개가 구룡령(1,013㎙)이다.

오대산 서쪽 능선을 타고 올라가 설악산 남서쪽 계곡으로 빠져 양양에 이르는 구룡령길은 어엿한 국도(56번)이다. 그러나 1993년 포장공사가 마무리 되기 전까지는 백두대간 종주 산행자나 땅꾼들만이 드나들 정도의 오지 도로였다.

포장된 지 8년이 됐지만 여전히 인적은 뜸하다. 너무 돌아간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더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1 시간 여. 대관령에서 2~3시간을 빼앗기기 보다는 차라리 도는 것이 빠르다. 강원 첩첩산중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가슴을 확 트이게 만든다. 절대 후회는 없다.

구룡령길은 홍천군 내면 창촌리부터 양양군 서면 논화리에 이르는 50여 ㎞ 구간. 길을 따라 절경과 명소가 즐비하다. 한계령과 미시령이 아기자기한 설악산 기암과 벗한다면 구룡령은 장엄한 연봉과 함께 한다. 발아래 펼쳐지는 눈덮힌 산들의 파도. 입을 다물 수 없다.

구룡령길은 또한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있다. 공수전(용소골), 미천골, 명개리 계곡 등 설악과 오대의 맑은 골짜기들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이중 가장 이름이 난 곳은 미천골계곡. 휴양림이 개발돼 있지만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덜 탄 곳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고 자동차 월동장구를 갖췄다면 간단한 오지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미천골은 절에서 쌀을 씻은 물이 하얗게 계곡에 흘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선림원이라는 대 사찰이 골짜기에 있었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됐다가 고려말에 없어졌다고 한다.

이제는 빈 터에 석등, 삼층석탑, 홍각선사탑비, 부도 등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다.계곡물이 곳곳에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지금은 얼음 폭포이다.

용소골은 양양 남대천의 한 지류인 후천이 바위계곡을 굽이굽이 돌아 만들어놓은 절경.

조선시대 출장을 떠나는 관리들에게 출장비를 지급하던 관청 공수전이 있던 곳이라 하여 공수전계곡이라고도 불린다. 울창한 송림과 하얀 자갈밭이 펼쳐진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소와 폭포가 송림의 끝에 있다. 눈이 내렸다.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구룡령 정상에는 휴게소를 겸한 산림전시관이 있다. 우리 산림의 생태와 나무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정상의 길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여있다. 가장 높은 길 위로 또 무슨 다리? 사람이 다니는 다리가 아니다. 지난달 완공된 야생동물 이동통로이다.

지리산 시암재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동물 다리이다. 구룡령에는 노루, 고라니, 족제비, 너구리, 오소리 등 야생동물이 많지만 56번 도로의 포장화로 생태환경이 단절된 상태였다.

서울서 구룡령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두가지.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에서 빠져 31번 국도를 타고 운두령을 넘으면 창촌리에 닿는다. 양평-홍천을 거쳐 신내 4거리에서 우회전 56번 국도로 길을 잡아도 된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1/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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