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여론을 가장 두려워하는 정부의 모습

"김대중 대통령님이 입장하십니다." 지난 1월11일 오전 11시. 김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은 사회를 맡은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의 말로 시작됐다. 회견장에 들어온 김 대통령은 내ㆍ외신기자에게 목례를 한 뒤 곧바로 TV 카메라를 향해 모두(冒頭) 발언을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자리였다. 김 대통령은 지난해 말 꼬이기만 하는 국정난맥 현상을 타개할 획기적인 국정쇄신안을 1월중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연두 기자회견만큼 적절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 '강한 정부'만을 내세웠고 양호한 경제지표를 제시하며 "자신감을 가집시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는 표현을 대여섯 차례나 썼다. 증시대책에 대해서도 "왕도는 없다. 거시경제지표가 좋으니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 순간 S증권의 친구가 떠올랐다. 갑작스레 투자권유 전화를 해온 친구였다. 그는 단기간에 30-40%의 수익은 확실하다고 했다. 미국 증시에선 금리인하조치에 따른 '반짝 상승세'가 끝나가던 시점이었는데, 그는 자신감에 넘쳤다.

"연두 기자회견 전까지는 정부가 증시를 떠받치고, 미국 증시가 조금만 도와주면(오르면) 재미를 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기자회견 전날 주가는 이번 정권의 출범지수(1998년 2월25일, 516.38)를 훌쩍 넘긴 560.81이였다.

그리고 회견 전날 장재식 민주당 의원이 깜짝 쇼를 벌이듯 자민련으로 옮겨갔다. 김 대통령은 15대 총선후 여당의 야당의원 빼오기를 예로 들면서 장 의원의 이적을 변호하고 나섰다.

증시 상승과 장 의원의 이적, 그리고 연두 기자회견의 순서. 우연의 일치일까? 절묘한 각본에 의한 것일까. 게다가 국민은 이미 김 대통령의 국정쇄신 약속을 잊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잊어서는 안된다. 그게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여론을 가장 두려워하는 강한 정부의 모습이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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