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 (42)] 오차(お茶)①

어린 시절 고향의 초등학교에서는 뒷뜰에 결명차를 재배해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마셨다. 커다란 주전자에 결명차를 가득 끓여 나르는 일이 당번의 중요한 일과였다. 쌉쌀한 맛이 도는 결명차를 선생님들은 '오차'라고 불렀고 아이들도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그때만 해도 오차는 결명차의 다른 이름이려니 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가끔씩 찾은 동네 다방에서 단골 아저씨들은 아가씨들에게 연신 오차를 나르게 했다. 보리차나 옥수수차, 더러는 그냥 찬 물이 나오기도 했다. '오차'는 물을 뜻하는 모양이라고 여겼으나 국어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오차'(お茶)는 귀하고 소중한 것에 접두어 '오'(お)를 붙이는 일본인의 언어습관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냥 '차'라고도 하지만 '오차'라고 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찻나무나 그 이파리, 이를 가공한 다양한 형태의 차는 그냥 '차'라고 하고 차를 우리거나 녹여마실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을 '오차'라고 구별해 부르기도 한다.

동북아의 차문화는 중국이 발상지이다. 위난(雲南)성 일대에 널리 분포한 야생의 차를 약재나 음식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세기쯤에 이르면 벌써 장강(長江) 중하류 지역과 그 남쪽, 스촨(四川)성 일대에까지 차를 마시는 풍습이 번졌다.

유비(劉備)가 어머니에게 드릴 차를 사오다가 황건적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삼국지가 좋은 예다. 그러나 중국사의 중심무대인 황허(黃河)유역에서 일반인이 차를 음료로서 애용하기 시작한 것은 당(唐)에 들어서였다. 애초에 차(茶)라는 한자 자체가 8~9세기 이전에는 없었다.

일본에 차가 전해진 것도 견당사(遣唐使)에 의해서였다. 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815년 오미(近江ㆍ시가현) 본샤쿠지(梵釋寺)의 승려 에이추(永忠)가 절을 찾은 천황에게 차를 대접했다는 내용이 있다.

당시 천황은 차의 재배를 명하고 궁궐에도 차밭을 만들었으나 일부 의례와 행사에 사용됐을 뿐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당의 문화를 동경하던 지식층과 승려가 '단차'(덩어리차)를 불에 쬐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넣고 끓여 마시기를 즐겼을 뿐이었다.

본격적 차문화는 가마쿠라(鎌倉)시대 초기의 승려 에이사이(榮西)가 송(宋)의 차문화를 들여 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1191년에 '맛차'(抹茶ㆍ가루차)의 제조법과 함께 차 묘목을 들여 왔으며 차의 재배가 확산되면서 당시까지 주로 사찰에서 약용으로 쓰였던 차는 상류층은 물론 서민의 기호품으로 번져나갔다.

상류층에서는 차의 맛과 빛깔로 품종과 생산지를 알아맞추는 '도차'(鬪茶)라는 놀이가 성행하기도 했다. 맛차는 '센차'(煎茶ㆍ덖은차)가 나오기까지 일본 차문화의 본류를 이루었다. 지금도 일본의 전통 차모임에서 거의 예외없이 맛차를 쓴다. 옛 모습을 간직하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찻잎 전체를 절구로 곱게 갈아 섭취하는 맛차와 달리 센차는 찻잎의 핵심 성분만을 우려내 마신다는 점에서 보다 진보된 가공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 센차가 전해진 것은 17세기 들어서였으며 현재 전체 차소비의 80%를 센차가 차지하듯 센차의 보급으로 차는 일본의 국민 음료로 정착했다. 더욱이 에도(江戶) 시대에는 은과 함께 대표적 수출품이었으며 그런 연유로 구미에서는 녹차하면 으레 일본차라고 여긴다.

현재 일본의 차는 가고시마(鹿兒島)현을 비롯한 규슈(九州)의 여러 지역과 교토(京都) 주변, 사이타마(埼玉)현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전체의 50% 정도가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생산되고 있다. 시즈오카현의 차밭은 에도시대 들어 전쟁이 사라져 대량 실직한 무사들에게 구릉지 개간을 맡긴 바쿠후(幕府)의 실업 대책에서 나왔다.

일본 차재배 발상지로 유명한 교토 우지(宇治)에서 생산되는 이른바 '우지차'는 생산량은 얼마 안되지만 고급품으로 통한다. 햇빛을 차단하고 키운 찻잎으로 만든 최상급의 '쿄쿠로'(玉露)는 우지차를 최고급으로 친다.

차는 한때 서양 음료에 밀려 위기론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차의 성분과 효능에 대한 과학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국민의 건강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가 되살아났다.

자동판매기에서 캔음료로 널리 팔리고 있으며 맛차를 넣은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다양한 2차 제품이 인기를 끌고있다. <계속>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1/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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